서울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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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있는 공동체 학교

지난주(4/12, 금) 백북스 서울 사랑방 모임의 약속 장소인 "문턱없는밥집"에는... 
문턱이 있었다.
그럼 그렇지... 문턱이 없으면 문도 못 달고, 먼지도 들어오고, 쥐도 들어오고...
속세에 찌는 나같은 사람에게 그 집의 문턱은 있었다.

모임 약속시간에 왠일로 내가 일빠로 도착하다니...
붐비는 금요일 퇴근길, 다들 길 위에 계신 상황...
덕분에 식당 안을 이리 저리 둘러 보니, 여자 사장님은 어떤 분에게 요리비법을 전수하고 계시느라 바쁘시고, 새로 선출되셨다는 남자 이사장님(물론, 그 분이 사장님이고 그 분이 이사장님인 것은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은 음식재료를 열심히 다듬고 계셨다.
음, 전반적인 컨셉은 이해가 되는군...
손님이 와도, 다들 바쁘시다 이거지...
딱 내 스타일 ㅎㅎㅎ

음식은 박성일 원장님네 한약 재료로 써도 될 만큼, 정갈하고 청결한 유기농 재료로 만들어져 있어서, 맛도, 향도, 먹는 기분도 좋았다. 식재료의 원가가 비싸서 가게 운영이 힘드시다는 말이 이해가 된다.
평소에 유기농, 무농약, 친환경 재료 잘 안 사먹는 나 같은 불신자에게는 문턱이 있는 식당...
그래서 또 오고 싶은 식당...

식사 후에,
'문턱없는밥집'을 위해서 손으로 진딧물 잡아서 푸성귀들을 길러 보내는 '변산공동체'에 대해서 간략한 소개를 들을 수 있었다.
( '변산공동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 글의 맨 아래 링크들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문턱없는밥집"의 길 건너편에는 " 故최규하대통령의 사저"가 있었다.
담벼락이 하늘까지 높은 만지지상의 저택과 점심 때면 가격이 정해지지 않은 비빔밥을 모든 사람과 나눠 먹는 문턱없는 밥집이 서로 2인상으로 마주 보고 있다.
음양오행에 대해 잘 모름을 은근 내세우는 나같은 기독교인도, 왜 그 집과 이 집이 서로 마주보고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를...
왜 스마트폰 사이즈에 모든 역사와 문명이 갖혀 있는... 그 빽빽함이 중성자별 같은 21세기 초에
문턱없는밥집과 변산공동체같은 출구가 3차원과 4차원으로 나있는지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봐서 알겠다.

이번 서울 사랑방 모임의 선정도서인, 
윤구병 선생님의 <꿈이 있는 공동체 학교> 중에서
이병록 운영위원께서 추천하신 대목을 아래에 옮겨 본다.
글이나 책의 내용을 옮김에 있어, 정리하고 줄일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요약이나 정리가 불필요한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시를 요약할 수는 없는 것처럼 
윤구병 선생님의 글은 이미 다 줄이고 빼서, 더 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요약이나 정리가 불필요한 글과 말 그대로를 살려서 전달하는 것이 유일한 최선이었기에...
아래와 같이 책의 본문 중에, 총 6 페이지의 전문을 옮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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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 꿈이 있는 공동체 학교
저자 : 윤구병 (변산 공동체)

제3장. 콩나물 교실에 난쟁이 책걸상

  사회 변혁과 문체 혁명의 관계 

   한동안 삼국지가 대유행이었다. 옛날에는 나관중이 쓰고 박태원이 번역했던 《삼국지 연의》가 정음사에서 나와 사람들한테 사랑을 많이 받았다. 저도 그걸 읽고 자란 세대다. 그런데 지금 출판계는 삼국지 전쟁이라고
할 만큼 여기저기서 삼국지가 무더기로 나오고 있다. 이문열
삼국지, 황석영 삼국지, 장정일 삼국지, 김구용 삼국지…… 만화로 된 삼국지까지
합하면 수십 종의 삼국지가 있다. 심지어 ‘창천항로’라는 만화로도 나와 있다. 그런데 이 삼국지에 나오는 조조라는 인물을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왕조시대의
기득권자들이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유비를 내세우고, 조조를 깎아 내린 경향이 있다. 내가 본 자료 가운데 루쉰이 조조를 두고, “재능이 뛰어난 영웅”이라고
한 구절이 나온다. 모택동이나 다른 중국 혁명가들이 조조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찾아볼 필요가 있다.



  루쉰은 중국 지식인들이 민중의 관점에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도록 한 사람이다. 독일의 판화가 케테 콜비츠를 중국에 소개한 사람도 루쉰이다. 케테
콜비츠는 채색하지 않은 흑백 그림을 그리고, 판화 작업을 주로 했던 화가이다. 그이가 그리 한 것은 당시 일반 민중들이 그림 그릴 수 있는 도구는 연필이나 붓 같은 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이의 건강한 예술은 중국에 가장 먼저 소개되었다.



  루쉰은 처음엔 일본에 의학을 공부하러 갔다가 서양의 선진 문화를 만나고 혁명 사상에 눈을 떴다. 당시 지식인들의 어려운 관념에 맞서 민중이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글로 사회 개혁의 청사진을 제시한 사람이기도 하다. 루쉰이 중국에 끼친 영향은 엄청나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서 청년들의 의식을 일깨우는 데 가장 앞장섰던 리영희 선생님도 루쉰의 글쓰기를 본받으려고 무척 애쓰신 분이고, 그 사실을 여러 차례 밝히셨다.



  사회 변화가 일어나기 전에는 반드시 문체 혁명이 일어난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기득권층은 늘 정보를 자기들끼리만 독점하고, 나눌 마음이 없다. 학문 사투리(전문 용어, 학술
용어)를 쓰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 점에서는 우리 사회도
중병에 걸려 있는 상태다. 이를테면 요즘 배웠다는 사람들이 걸핏하면 ‘담론’이라는 말을 쓰는 걸 본다. 그 말이 이 땅에 들어온 것은 10년밖에 안 되었는데, 대학물깨나 먹었다는 사람들이 자기네들끼리만 알아듣는 어려운 말을 주고받으면서 울타리 쌓고 있다. 못 알아듣는 사람들은 아예 무식쟁이 취급을 하면서.



  사회 변혁은 기득권, 특권층을 배제하고 새로 판을 짜자는 것이다. 그러려면 많은 이에게 자기 생각과 느낌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건강한 세상을 만들려는 판을 키우려면 말보다는 글이 효과적일 때가 많다. 지금껏 소외받고 짓눌린 이들이, 늘 서로 주고받는 쉬운 말로 자기 뜻을 전달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조조를 보면서 나는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중국에 ‘건안문학’이라는 문학
조류가 있었다고 한다. 자기네들끼리만 서로 칭찬하고, 정직하지
않은 거짓 글을 써 오던 기성 문단의 풍토를 깨고 일곱 사람이 위진남북조시대에 건안문학으로 문체 혁명을 시도했다는데, 그 가운데 조조 집안 사람이 셋이나 끼어 있었다고 한다. 조조와
그이의 아들 조비, 조식이 그 사람들이다. 조조는 그 당시
위나라 국권을 좌우하는 집권자 자리에 있으면서 도로와 주택 문제를 해결했고, 군대가 군량미를 스스로
확보하도록 농사를 짓게 둔전 제도를 마련했고, 변방을 수시로 위협하는 이민족들과 탁월한 외교를 통해
나라 안정을 꾀했다고 한다. 조선 시대의 실학파들이 꿈꾼 일 가운데 조조가 이룬 것이 아주 많다는 느낌이
든다.



  유럽에는, “이탈리아에는 단테, 영국에는
셰익스피어, 밀턴, 독일에는 괴테가 있는데, 프랑스에는 이런 1급 문학가는 없고, 다만 2급으로 평가 받는 빅토르 위고만 있다.”고 평가하는 이들이 있다고 한다. 2급이라 말하는 빅토르 위고의
작품 《파리의 노트르담》《레미제라블》 같은 책이 프랑스 민중 사이에서 널리 읽혀서 나중에 프랑스 사회 변혁의 원동력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이들이 드물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작가는 민중의 시각에서 다시 평가해야 한다. 기득권층에서 우러러보는 단테나 괴테 말고 민중의 시각에서 빅토르 위고를 보면 평가가 아주 달라진다.



  프랑스 혁명 전야에는 빅토르 위고가, 러시아 혁명 전야에는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 푸쉬킨이 있었다. 그 가운데 혁명의 성공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 톨스토이이다. 레닌 등 러시아 혁명의 선봉에 선 이들이 전부 그이에게 신세를
졌다고 말하고 있다.



  혁명 당시 러시아는 초기 자본주의사회였고, 유럽에 대해 끊임없이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다고 한다. 사회 변혁이 한창 시작될 무렵까지도 기득권층은 프랑스 숭배 열풍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때 톨스토이는 이미《전쟁과 평화》,《안나 카레리나》,《부활》같은 작품으로 온 국민들에게 인기 작가로 떠올라 있던 상태였다.
무렵 톨스토이는 크게 깨우침을 얻는데, 자기 작품을 그 당시 지식층 일부가 읽을 뿐이고, 민중들은 아예 읽을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자기가
데리고 있던 농노를 해방하고 그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톨스토이는 아이들이 자기의 작품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쉬운 모파상의 단편들조차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뒤늦게야 러시아 민중 자신들의 옛이야기, 곧 민담으로 눈길을 돌린다. 농민의 아이들을 제대로 교육하려고 외국어를 뒤늦게 공부하고, 다른
나라의 옛이야기 자료를 찾기 시작한다. 민중들과 소통할 수 있는 가장 쉬운 통로는 옛이야기라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자기 문체를 완전히 바꾼다.
땅에서는 《바보 이반》같은 작품도 문체는 조금도 살아나지 않고 내용만 겨우 전달하고 있지만 톨스토이는 늘그막에 완전히 새로운 문체로 작품을 써내기
시작한다. 《톨스토이 인생 독본》,《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같은 책들이 의식을 일깨워 사람들의 삶을 바꾸기도 했지만, 이런 글들은 도덕 교과서에 가까운 가르침을
담고 있었는데, 민담을 소재로 한 이야기는 달랐다. 소비에트
병사와 농민들이 러시아 혁명의 주축인데, 그들에게 줄 제대로 된 쉬운 글을 진보적인 지식인이 쓸 수
있게 된 것도 톨스토이의 공이 크다. 그리고 그것이 혁명의 원동력이 된다.



  나중에 하나하나 다시 살펴봐야겠지만 ‘세종 임금의 한글 창제’ 과정을 다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나는 날이 갈수록 감동적인 글을 들라면 훈민정음 서문을 들 것이다. 사실
이 훈민정음 서문에 문체 혁명이 사회 변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가 다 드러나 있다.



  이성계가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고 새 왕조를 세웠지만, 옛 기득권자들은 구질서의 변화에 필사적으로 저항한다. 나라를 무너뜨리기는
했지만, 새로운 세력을 모아 구왕조의 제도까지 뒤집을 틈이 없었기 때문에 문체 혁명과 사회 변혁의 임무는
세종에게 넘어갔고, 세종이 왕이 되면서 무엇보다 힘을 기울였던 일은 훈민정음 창제였다고 할 수 있다.



  한글 창제에 왕이 앞장을 섰는데도 기득권의 반발은 대단했다. 한글로 공문서, 판결문을 쓰고 과거 시험을 보게 되면 사대부, 양반 계급의 특권은
하루아침에 무너질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일반 백성들은 생업에 바빠 한문을 배우는 데 긴 시간과
돈을 들일 겨를이 없었다. 10, 20, 30년 공부해서 자기들끼리만 의사 소통하는 것이 당시 지배 세력의 세태였다.
한문이 얼마나 어려운지 왕조 실록에도 조선식 한자가 등장할 지경이었다. 일생을 배워도 자유롭게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것이 남의 나라 글자인 한자였다.



  이런 식의 폐쇄된 정보 소통의 통로를 세종이 하루아침에 뒤집어엎자고 나선 것이다. 최무선이나
장영실 따위 온갖 상놈 떨거지를 뽑아 올려 여기저기 박아놓는가 하면, 한문도 쓰지 말자는 이 임금을 그냥 두면 큰일 날 상황이엇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위기 의식 때문에 기득권층은 목숨 걸고 저항한다. 세종의 한글 창제와 관련한 이야기는 여러분들이
더 잘 알 것이다.



  문체 혁명과 관련하여 함께 살펴보아야 할 사람들로는 《홍길동전》을 쓴 허균, 《구운몽》을 쓴 김만중, 《열하일기》를 쓴 연암 박지원, 《국어문법》을 쓴 주시경, 《임꺽정》을 쓴 홍명희 같은 분들이
있다. 현대에 와서는 함석헌, 문익환, 이오덕, 권정생 선생님을 들 수 있고, <뿌리깊은나무>를 만든 한창기 사장, ‘마주이야기’의 박문희 선생, 《살아 있는 글쓰기》를 쓴 이호철
선생, 《옛이야기 들려 주기》를 쓴 서정오
선생, 이런 분들의 글도 틈틈이 읽으면서, 지금 이 시점에서
문체 혁명이 왜 필요한 것인지,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상 본문의 p174 ~ 179 내용 전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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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공동체 관련 소개 : http://www.kbs.co.kr/1tv/sisa/3days/vod/1614913_22093.html

변산공동체 학교 facebook : https://www.facebook.com/bs0584

문턱없는밥집 : http://cafe.daum.net/bobjibngage

  • ?
    이병록 2013.04.15 10:51
    언젠가 같은 장소에서 윤구병 선생님을 직접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두 번 빵 터졌습니다. 농부가 힘들게 농사지으니 밥 한톨을 아껴먹으라는 아버지 말에 자식이 "농부는 바보다, 사서 먹으면 되지 왜 그렇게 힘들게 농사를 짓는냐"와 철학 전공을 택한 학생 중 한명이 "포항 제철에 가기 위해서 철학을 택했다"는 부분.....
  • ?
    김계현 2013.04.15 10:51
    문턱 없는 밥집, 회사가 근처라서 점심 때마다 간간이 들르는 곳인데, 이렇게 이야기가 넘치는 곳인줄은 몰랐네요. 만날 밥만 후루룩 먹고 나와서 말이죠.. ㅡ.,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