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백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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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미셸 푸꼬 <감시와 처벌>

 

<감시와 처벌>을 고른 이유는, 그래도 이게 그나마 번역이 나은 편이기 때문입니다. 말도 많고 소문이 무성한 현대 프랑스 철학에 대해 조금 알아 보려고 마음먹은 소심한 교양인은 이내 좌절에 빠질 수밖에 없는데 그 첫째 이유는 넘치는 건 알아먹기 힘든 2차 해설서 뿐이고 원전은 번역도 안된 저자들(예를 들어 라깡)에 대해 주워드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째 이유는 번역된 원전이라고 하더라도 이미 한국어라고 볼 수 없는 문장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인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본인의 무식함과 무지함을 탓하며 책을 그냥 꽂아 두고 입맛만 다시게 되죠.

 

물론 대부분의 철학 저술들이 "이전의 다른 철학 저술들에 대한 저술"의 형태로 씌어지기 때문에 어느 정도 지식이 없으면 읽기 어려운 것은 맞습니다(특히 들뢰즈의 경우가 그렇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러나 현대 프랑스 철학의 경우, 독해가 힘든 것은 그런 문제 이전에 번역 자체가 문제를 안고 있어서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가뜩이나 그다지 친절하지도 않은 책을 페이지마다, 심지어는 단락마다 오역으로 가득 찬 번역책으로 읽으면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건 당연한 거죠. 강유원씨 말처럼 "아직 어린애들"이니까 안 읽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게 차라리 속 편하실 겁니다.

 

아무튼 푸꼬는 중요한 철학자입니다. 지식, 권력, 주체의 문제를 고민할 때 푸꼬를 벗어날 수는 없어요. 물론 이 세 가지가 동떨어진 것이 아닙니다만, 어쩌면 우리 시대는 그 세 가지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 자체를 푸꼬를 통해서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죠.

 

* 들뢰즈가 비교적 간결하고 평이한 불어 문장을 사용하는 반면에 그의 글이 어려운 것은 그의 모든 단어 사용이 ( )를 생략한 인용이기 때문이에요. 철학사 혹은 과학에서 가져온 단어들을 사용할 때 그 원래의 출처와 맥락을 모르는 사람들에겐 정확한 진의를 이해하기 힘든 문장이 되니까요. 데리다의 경우 훗설이나 하이데거를 알아야 그를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너무 화려한 문장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어려운 편이구요. 그런 점에서 철학적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가까이 접하고 읽을 수 있는 현대 프랑스 철학자는 어쩌면 푸꼬 한 명 뿐인지도 모르겠어요 (단 <지식의 고고학>은 제외). 그렇다고 해도 쉬운 편은 아니지만요.

 

** 푸꼬의 영향을 받은 미국의 과학철학자 아이언 해킹에 대해 전해지는 일화 한 토막. 푸꼬에 대해 두툼한 연구서를 쓴 그는 그 원고를 그냥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제자들이 "왜?"라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해요. Don't study Foucault. Do Foucault! 이건 푸꼬 철학에 대한 멋진 코멘트이기도 해요. 푸꼬는 기존의 철학서에 대한 주석서나 해설서를 쓴 게 아니라 직접 역사적 자료와 맞짱을 뜬, 보기 드문 철학자거든요. 철학은 철학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으로 대상을 다루는 데 있는 것. 해킹도 푸코에 대해 말하기보다는 푸코식으로 자신의 연구를 하는 것이 더 생산적이라는 걸 알았던 거죠. 고전 인문 텍스트를 읽는 건 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을 써먹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좀 편해져요. 보고 이해한 만큼만 써먹으면 되거든요.

 

 

(8) 빠스깔, <빵세>

 

<빵세>는 여러 판본이 있는데 지금까지 번역된 일반적인 판본-영어권에서도 주로 읽히는 판본-은 브렁슈빅판이라고 해서 "기하학의 정신과 섬세의 정신"으로부터 시작해요. 하지만 그 외에도 두 개의 판본이 더 있죠. 뭐 불어를 모르시는 분들에게는 의미없는 이야기이고, 어쨌거나 최근에 서울대 출판부에서 번역한 판본이 더 정본에 가까운 것으로 여겨지고 있어요. 그걸 읽어보자, 뭐 그런 얘기죠. 어쩌면 제가 제안한 모든 책 중에서 이 책이 가장 말랑말랑한 것이 될 지도 모르겠어요.

 

흔히 실존주의 철학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태도'에 가까운데요. 야스퍼스가 "신 앞에 선 단독자"라고 했을 때 그 말에 가장 어울리는 건 확실히 빠스깔이긴 해요. 데까르뜨의 뻔뻔하고 자신만만하고 느끼한 태도와 비교해 보면 섬세하고 여린 빠스깔이 얼마나 상처를 많이 받고 살았을지 짐작이 가죠. 어쨌거나 도대체 혼자서 골방에서 무슨 말을 끄적이고 살았는지 확인해보자, 라는 거에요.

 

* 에세이, 혹은 자신에게 쓰는 글은 사실 생각만큼이나 진실하지 못한 경우가 많아요. <나 자신에게>라는 이름으로 씌어진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실은 자식 교육을 염두에 둔 텍스트였고, 몽떼뉴의 <에세이>, 아우구스티누스와 루소의 <고백록> 모두 남들에게 보라고 씌어진 책이고. <빵세>는 어떨까, 읽어 보고 싶지 않으신지요?

 

** 데까르뜨와 빠스깔 둘을 놓고 보면 정말 안 친했을 것 같아요. 둘의 철학적 태도가 너무나 다르기 때문인데요, 데까르뜨에게 있어서 세게의 해명, 체계의 완성이라는 거대한 목표가 있었다면 빠스깔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구원이었을 거라고, 그런 식으로 보면 둘은 서로 소 닭보듯 했을 테니까요. 원래 철학의 두 가지 모티프가 바로 거기에 있지 않나 싶어요. 주관이라는 세계와 객관이라는 세계, 이 두 개의 세계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거니까요. 편미분방정식을 암산으로 풀고 골드바흐의 추측을 증명(반증)하는 데 성공하고 양자역학과 일반상대성 이론을 통합하는 데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연애를 못해서 영혼이 외롭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라는 식의 문제제기에 공감하시는 분이라면 빠스깔적인 태도를 가지신 거죠 (에, 물론 빠스깔은 연애 대신에 영혼의 구원이라는 말을 쓰겠지만요).

 

*** 어쨌거나 내밀한 이야기를 해보자, 지식이 어떻고 권력이 어떻고 그런 이야기말고, 내 두려움과 떨림, 세계를 대한 나의 고독에 대해 말하고 싶다,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과 같이 읽고 싶어요. 키에르케고어의 <두려움과 떨림>을 읽을까 생각도 했지만, <정신은 관계다, 관계의 관계다>라는 식의 끔찍한 문장으로 시작했던 <죽음에 이르는 병>을 생각해내곤 빠스깔로 선회했습니다. 이의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9)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미리 말씀드리지만,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은 어렵지 않습니다. 후기 저작은 어렵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존재와 시간>은 어렵지 않아요.

 

종종 영화에서 폼잡는 백수애들이 나올 때 종종 책을 손에 쥐어주는 일이 있어요. <청춘스케치 Reality Bites>에서 이선 호크가 손에 쥐었던 게 바로 <존재와 시간>이었죠. 최근의 영국 드라마 <스킨스>에서 니콜라스 홀트는 릴케 책을 들고 있더군요. 그러고보니 월러스 앤 그로밋에는 <국가>와 <감시와 처벌>이 나왔군요.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손에 쥔다고 해서 그리 문제될 건 없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읽는다면 도대체 "기분" 같은 게 어떻게 철학적인 주제가 될 수 있는지, 그것만 알아도 충분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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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미경 2008.10.31 06:42
    그동안 너무나 멀리 하고 지낸 분야의 책들입니다...
    감히 읽어 볼 기회가 준어진다면 좋겠네요...
    기대가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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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혜정 2008.10.31 06:42
    푸코 <감시와 처벌>을 많은 분들과 함께 읽으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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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윤석 2008.10.31 06:42
    인문학 책을 접할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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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선희 2008.10.31 06:42
    인문고전이 뭔지도 모르면서 언젠가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 글들을 보니 '아! 내가 할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좌절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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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석희 2008.10.31 06:42
    존재와 시간.. 쉽다고 하시니.. 덜컥 손들어봅니다. 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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