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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 + 너머  박성관  


과학 = 놀라는 능력


 


무지개에 놀라다




7년전 어느날, 무심코 창문을 열다가 깜짝 놀랐다. 창문 너머 산허리에 걸린 무지개가 너무나 동그랬기 때문이다. 한동안 멍하니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비가 갠 뒤 우연히 생기는 무지개가 어쩌면 그리도 동그랄 수 있단 말인가! 누군가 하늘에다 컴퍼스를 대고 그린 것도 아닌데...... 무지개는 자연현상이니까 어딘가 불규칙해야 “자연”스러울 게 아닌가! 그렇게 넋놓고 무지개를 바라보다가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그리곤 그토록 동그란 것이 무지개만은 아니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아무렇게나 연못에 돌을 던져보라! 퐁당 소리와 함께 물은 동그란 무늬들을 수도 없이 만들어낸다. 몇 번을 던져도 물 무늬는 지극히 동그랗다. 바퀴나 구슬같은 건 사람이 동그랗게 만드니까 그렇다 쳐도 자연에 우연히 생기는 무지개나 물 무늬가 어쩌면 그렇게 동그랄 수 있는지! 이제 나는 세상 여기저기서 온갖 동그란 것들을 새로이 발견하기 시작했다.




세상의 온갖 동그란 것들



그리고 그날 이후 내게 세상은 전혀 다른 것이 되었다. 태양도 달도, 다른 별들도 모두 동그랗다. 천체가 운행하는 경로도 동그랗다. 자연은 불규칙한 게 아니라 동그랗고 또 운동도 동그랗게 하는 것일까. 어떻게 보면 네모랗거나 불규칙한 것보다는 동그란 게 어쩐지 더 완전하고 멋있어 보인다. 과학이 아직 발달하지 않았던 오래전 옛날, 어느 누군가도 나처럼 세상이 참으로 동그랗다는 걸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을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앎과 과학은 바로 그 순간에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과학은 놀라는 능력이다



과학이라고 하면 여러분은 먼저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혹시 두툼한 안경에 흰 가운을 걸치고 실험실에서 현미경을 뚫어지게 째려보는 모습? 아니면 양손에 빨간 액체와 잿빛 액체가 각각 담긴 유리관을 들고 조금씩 조금씩 섞어보는 모습? 물론 그런 것들도 과학적인 탐구의 모습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만일 누군가 내게 과학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말하리라, 과학은 무엇보다도 먼저 “놀라는 능력”이라고. 놀라는 게 무슨 능력이냐고 묻고싶으실 것이다. 당연히 능력이다. 그것도 인간이 가진 가장 큰 능력이다. 만일 인류가 날마다 보는 현상들을 늘 똑같은 눈과 마음으로 대했다면 과학은커녕 새로운 앎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겠는가?



도대체 왜 사과는 땅에 떨어지는가?



사과가 땅에 떨어지는 것을 바라본 사람들은 수만명 아니 수십만, 수백만명이 넘을 것이다. 심지어 온갖 들짐승, 날짐승들도 그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오직 한 사람, 17세기 영국의 과학자 뉴턴(Isaac Newton: 1642~1727)만이 그것을 신기해하고 놀라워했다. “도대체 왜 사과는 나무에 계속 매달려 있지 않고 땅바닥에 떨어지는 것일까” 궁금해했다. 그러고는 땅바닥에 뭔가 사과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지 않을까 상상했고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끝에 마침내 저 유명한 만유인력(萬有引力)을 발견하였다. 이렇듯 위대한 과학의 발견도 일상적인 현상에 대해 신기하게 여긴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침반에 신비한 힘이 있어요!



20세기의 천재 물리학자요 역사상 가장 위대하다고 칭송받는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의 어릴 적 일화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어릴적부터 내성적이고 순한 아이였으며 말을 배우는 것도 남보다 늦었다고 한다. 그런 아인슈타인이 어떻게 과학사에 길이 남을 과학자가 되었을까? 아인슈타인이 어린 시절 아파서 병석에 누워있을 때 아버지가 장난감으로 나침반을 주었다고 한다. 어린 아인슈타인은 나침반의 바늘이 이리저리 흔들리면서도 결국은 꼭 북쪽을 가리킨다는 사실에 신비로움을 느꼈다. 그리고 훗날 자서전에서 그것이야말로 평생토록 잊을 수 없는 기억이라고 썼다. 얼핏 보면 단순하기 그지없는 것에 놀랄 수 있었던 그의 능력. 아인슈타인은 이 능력을 바탕으로 뉴턴의 물리학을 혁명적으로 변화시켰고 시간과 공간에 대한 그때까지의 생각을 완전히 혁신하였다.



과학은 놀라운 세계



그럼 우리는 어디서 그런 놀라운 일들을 볼 수 있는 것일까? 대체 그런 신기한 일들은 모두 어디에 숨어있길래 내 눈에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것일까? 과학 시험도 잘 보고 위대한 과학자도 되고싶은 분들에게만 그 장소를 특별히 귀띔해 드리겠다. 그곳은 바로 과학이라는 세계다. 과학 속에는 신기하고도 재미있는 일들이 무궁무진하게 들어있다. 과학이란 놀라움을 먹고자라는 것이니 그 안에 놀라운 일들이 가득한 것도 당연하다. 특히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생물들에게는 신비한 비밀이 많이 들어있다.



박테리아를 아시나요?



박테리아는 언제나 나를 놀라게 한다. 한동안 질병을 일으키는 병균(病菌)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름으로 불리웠지만 지금은 사정이 180° 바뀌었다. 박테리아는 이 지구에서 가장 오래전에 나타난 생물이며 오늘날까지 살아있는, 가장 오래된 생물이다. 생겨난지 천만년도 못되는 인간의 처지에서 보면 박테리아의 생존 능력은 가히 기적에 가까울 정도다. 최근의 한 연구에 따르면 박테리아는 약 35억년 전부터 지구상에서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오래 산 것만이 박테리아의 자랑은 아니다. 박테리아는 억지로 죽이지 않는한 죽지 않는다. 신기하지 않은가? 다른 모든 생물들과는 달리 박테리아는 늙어서 죽는 일이 없다는 말이다. 세상에! 목숨가진 생물이 늙지 않는다니! 게다가 이들은 멀쩡히 있다가 몸이 반으로 쩍 갈라지면서 두 개가 되기도 한다. 다른 생물들처럼 짝짓기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박테리아가 길을 가다가 서로의 유전자를 멋대로 교환하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정말이지, 박테리아는 연구가 진행될수록 놀라운 사실들을 속속 드러내는 “경이로운” 생물이다.



바이러스도 있어요



박테리아도 놀랍지만 바이러스는 더하다. 바이러스는 생물인지 무생물인지부터가 분명치 않은 희한한 존재다. 평소에는 종이 쪼가리와 똑같은 무생물이지만, 생체 안에만 들어가면 살아움직이며 자신을 복제하기도 한다. 살아움직이며 자신을 복제하는 존재를 생물이라 부르지 않으면 뭐라 부르겠는가? 헌데 이런 바이러스가 우연한 일로 생체 바깥으로 나오면 다시 종이 쪼가리나 두부 껍질처럼 변해버린다. 이런 존재를 무생물이라고 부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결국 우리는 바이러스를 생물이라 해야할지, 무생물이라 해야할지 난감할 수밖에 없다. 생물과 무생물이라는 구분 자체가 바이러스 앞에만 서면 무능해지는 것이다. 이처럼 과학이 보여주는 생물들의 다양한 삶은 그 자체가 우리에겐 놀라움이다. 과학의 세계 안에서 마음껏 놀라고 상상력을 한껏 키워보시기 바란다.



일상 자체가 신비다



20세기 철학에 일대혁명을 가져온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1889~1951)은 어디선가 이런 멋진 말을 한 적이 있다. “이 세계에 신비스러운 것은 없다. 이 세계 자체가 신비다.” 그러니까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신기하거나 놀라운 현상이 어디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다. 이 세계가 없을 수도 있는데 그러지 않고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신비하고 놀랍다는 것이다. 철학의 천재다운 파격적인 발상이다. 결국 그의 눈에 이 세상 모든 것은 신비이며 신비들로 가득 차 있다. 이렇게 보면 앞서 말한 과학 안의 신비도 그 신비 중의 일부다. 하긴 이 지구 안에 그토록 다양한 생명체들이 수도 없이 존재한다는 사실, 또한 내 몸 안에 박테리아나 바이러스처럼 수많은 생명체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놀라운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도 그 자체로 신비로운 존재다. 지구는 모든 사물들을 끌어당긴다는 점에서 거대한 자석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엄청난 지구도 우주 전체로 보면 모래알보다도 작은 돌멩이에 불과하다. 그만큼 우주는 넓고도 크다. 그런 우주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신비 중의 신비다.



우리는 공중에서 살고 있다!



일상 자체에 놀랄 수 있다면 바로 오늘부터 세계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느껴질 것이다. 진화론에 따르면 우리의 아득히 먼 조상들은 나무 위에서 생활했다고 한다. 나는 책에서 그런 얘길 읽으면 잘 이해가 안되었다. 나무 위에서 살면 높은 데서 떨어지기도 하고 꽤나 위험했을텐데 왜 그런 데서 살았을까? 그렇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현재 인류의 삶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우리 집은 3층에 있으니까 하루의 반 정도는 공중에 떠서 살아가는 셈이다. 또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도 우리 몸은 유령처럼 공중에 떠다닌다.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 그리고 내가 공부하는 학교는 또 어떤가? 아니 우리가 땅 위에 발을 딛고 있을 때조차 실은 지구의 껍질 위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 아닌가? 광대한 우주의 바다 위에 외로이 떠있는 지구, 그것도 엄청난 속도로 자전하고 있는 돌멩이 위에서 튕겨나지 않고 멀쩡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진달래에 향기가 없는 이유



봄이 와 동네 뒷산에 꽃이 울긋불긋 피어나기 시작하면 산에 올라보시라. 그럼 우리의 눈을 유혹하는 진달래나 철쭉을 만날 수 있다. 진달래와 철쭉, 이들은 모양과 빛깔이 비슷해서 대충 보면 잘 구분이 안된다. 그런데 진달래는 일찍 피고 한달 뒤쯤에야 철쭉이 피어난다. 한 가지 신기한 건 진달래는 향기가 없고 철쭉은 향기가 매우 짙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여기에는 흥미로운 이유가 있다. 꽃들이 씨를 퍼뜨리기 위해서는 곤충이 놀러와 꽃가루를 잔뜩 묻히고 같은 종류의 다른 꽃으로 가줘야한다. 먼저 진달래는 다른 꽃들보다 앞서서 일찌감치 피어나기 때문에 애써 곤충들을 유혹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철쭉은 늦게 피기 때문에 이미 그 옆에는 수많은 다른 꽃들이 피어있다. 그러므로 자기 쪽으로 곤충을 끌어들이려면 갖은 방법으로 유혹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이때 철쭉에게서 풍겨나오는 매혹적인 향기는 눈이 나쁜 곤충들까지도 유혹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진달래와 철쭉이 연출하는 봄의 풍경에도 이토록 신기한 섭리가 숨어있는 것이다. 지구, 우주, 박테리아와 바이러스, 수많은 꽃들과 또 우리 자신, 이 모두가 놀라운 신비다.



이 글을 다 읽으면 창문을 활짝 열고 밖을 내다보라. 봄의 기운이 천지에 가득하여 이 세상 모든 생물들이, 아니 모든 분자와 원자들이 아지랑이를 타고 마구 아우성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가? 만일 그것이 느껴진다면 바로 그때 당신은 과학하기 시작한 것이다.



<함께 생각해 볼 것들>



식물이 동물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고착생활을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식물도 바람이나 곤충을 이용하여 수천 킬로미터까지 여행을 한다. 식물은 동물보다도 먼 여행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식물과 동물의 진정한 차이는 무엇일까?



따뜻한 손이 차가운 컵을 어루만지면 손은 차가워지고 컵은 따뜻해진다. 내 손이 컵의 차가움을 느낀 것처럼 컵은 손의 따뜻함을 느낀 것일까? 무생물도 느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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