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과학과철학

2013.03.11 22:29

의식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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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난 몇 년간의 나의 고민을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아직 결론은 아니다. 나는 나의 생각에 대해 관심있는 분들의 비판적 의견을 기다린다. 이 비판에 나의 생각을 폐기해야 할지도 모르고 반대로 좋은 아이디어라고 지지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경우나 상관없다. 나는 어쨌든 세상에 대한 이해를 향해 조금 더 나아갈 것이다.


어제 늦은 새벽까지 인천에서 철학을 잘 아시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많이 배웠다. 세상에는 현명하면서도 친절한 분들이 참 많은 것 같다. 그런 분들과의 만남과 조언에 감사하고 행복하다. 한편으로 늘 받기만 하는 것 같아 좀 죄송하기도 하지만...^^



의식이란 무엇인가?


서론


의식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내가 꽤 오래 고심해왔던 의문이고 물음이다. 아마 다른 많은 사람들도 이 문제로 고민해왔고 지금도 고민하고 있으리라. 이제 이 글을 통해 내가 그동안 고민해왔던 이 물음에 대해 답을 적어보려 한다.
의식과 관련하여 내가 고민하고 있는 부분은 의식의 물리주의에 대한 불만족 해소와 인간의 고유성(자율성)을 회복하는 문제이다. 현재 많은 과학자와 철학자들은 의식 문제의 해답은 신경세포나 신경망을 연구해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인간은 다른 동물이나 로봇과 마찬가지로 단순히 자극에 반응하여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자율성이 없는 존재라 생각한다. 나는 이 설명이 불만족스럽다. 지금 이런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한 경험과 조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단순히 자극에 반응하여 이 글을 쓰고 있단 말인가? 아무런 자율성도 없이...


본론


1. 의식은 의미다


우리의 생각을 생각해보자. 생각은 언어를 통해 이루어지며 언어는 후천적으로 획득된다. 다른 한편 언어를 획득할 때까지 사람은 발달과정에서 서로 다른 뇌 신경구조를 갖게 된다. 따라서 동일한 생각이 동일한 뇌 신경활동에 의해 야기될 수는 없다. 더구나 언어는 나라마다 다르지 않은가!
그럼 서로 다른 뇌 신경활동이 어떻게 동일한 생각과 연관되는가?
생각은 “내적 말하기”이다. “코끼리”라고 적은 글자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더라도 같은 의미를 가지는 것처럼 사람마다 뇌 신경활동이 조금씩 다르더라도 같은 생각이 연관될 수 있다.
다른 한편  “코끼리”라는 글자가 코끼리를 가리키게 된 것은 사회문화적 약속에 따른 것이다. 그럼 특정 뇌 신경활동이 코끼리를 표상하게 된 근거는 무엇인가?
뇌 신경활동 N1이 생각 M1과 반드시 연관되어야 하는 필연성은 없다. 뇌 신경활동 N2가 M1과 연관되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 물론 어느 정도의 신경해부학적인 제약이 있겠지만 그 범위 안에라면 어떤 뇌 신경세포망의 활동도 M1과 연관되어질 수 있다. 이런 현상은 뇌 가소성의 일면이며  에델만이 degeneracy라 표현한 것이다.
한 개인에게 있어서 생각 M1이 특정 뇌 신경활동과 연관되는 것은 그 시점에서의 신경생리학 및 신경해부학에 의존하며 따라서 모든 사람의 뇌에 M1에 대응하는 공통적인 N1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M1의 실현자로 N1이 선택되는 것은 그것이 M1을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 더 적절하게 위치시키기 때문이다. 
나는 위에서 생각이란 언어를 사용하는 내적 말하기라 표현했다. 에델만의 표현을 빌리자면 생각은 “고차의식”이다. 결국 생각 즉 고차의식은 언어의 “의미”와 같다. 고차의식은 사회문화적 필요(압력)와 신경생물학적 제약에 의해 규정되는 “의미”이며 규약이기도 하다.


의식은 물리적 실체가 아니다.
의식은 속성도 아니다.
의식은 과정도 아니다.
의식은 흐름도 아니다.
의식은 의미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식은 물리적 실체와 필연적 연관성도 없고 특정 물리적 실체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고차의식은 물리적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2. 감각경험(감각질)과 기본감정은 진화사적 의미다


의식의 다른 한부분을 차지하는 감각경험과 기본감정(느낌)은 생각과는 좀 다르다.
감각경험과 기본감정(느낌)은 우선 언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또한 고차의식에 비해 보다 오래된 기원을 가지고 있으며 사회문화적 필요가 아닌 기본 생물학적 필요 즉 생존과 번식에 대한 적합성에 의해 형성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각경험과 기본감정(느낌) 또한 고차의식과 마찬가지로 특정 뇌 신경활동과의 연관에 필연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즉 뇌 신경활동 N1에 감각경험/기본감정 Q1이 반드시 수반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고차의식과 달리 Q1과 연관된 N1에 대한 신경생물학적 제약은 더 강하다. 그 이유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Q1이 M1에 비해 오랜 진화사적 기원을 가지고 있으며 생존과 번식이라는 원초적 기능에 보다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의식의 일부인 감각경험과 기본감정 또한 의미이다. 그러나 고차의식과 달리 사회문화적 필요(압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진화사적 필요에 따른다는 점이 다르다.
감각경험과 기본감정은 진화사적 의미이다.


3. 감각경험(감각질)과 기본감정만이 환원되어질 수 있다


김재권 박사는 의식적 경험(마음이라 표현)을 지향적 속성과 현상적 속성으로 구분하였다(차머스의 구분을 인용하여). 여기서 마음의 지향적 속성이란 믿음, 욕구, 의도 등과 같은 것이고 현상적 속성은 감감질과 같은 질적인 의식 경험이다. 김재권 박사는 마음을 이와 같이 구분한 후 마음의 지향적 속성은 기본적으로 기능적 정의가 가능하며 언젠가 물리적으로 환원될 수 있지만 감각경험과 같은 현상적 속성은 기능적으로 정의될 수 없으므로 물리적으로 환원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감각경험은 인과적으로 무능하기 때문에 그와 같은 심성적 찌꺼기가 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아도(환원되지 않아도) 그리 큰 문제는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나는 김재권 박사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감각질이야말로 물리적으로 환원될 수 있는 의식적 경험이다. 기본감정도 마찬가지이다. 즉 감각질이나 기본감정에 대응하는 공통적인 "물리적 실현자"를 찾아낼 수 있고 그 실현자를 물리적으로 측정함으로써 감각 경험을 재현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감각질/기본감정 Q1이 신경생물학에 강하게 구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모든 뇌에서 공통적인 물리적 실현자를 도출해낼 수 있다. 실제로 아직 미흡하긴 하지만 우리의 시각 경험을 모니터 상에 재현해내는 실험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바 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한가지 중요한 사실를 언급해야겠다. 설혹 언젠가 우리가 어떤 사람이 경험하는 감각 경험을 정확하게 재현해낸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떤 물리 법칙의 해석에 의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감각질을 포함한 의식은 물리적 실체와 필연성에 의해 연관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물리적 실체의 물리적 속성으로부터 의식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감각 경험이 물리적으로 재현된다면 그것은 오직 경험적으로 시행착오를 반복한 연구의 성과일 것이다.


4. 인간의 자율성 설명-자유의지는 있다


현대신경과학 연구 결과는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임을 부정한다. 이 주제와 관련한 유명한 연구 결과는 1983년 리벳에 의한 것이다. 그는 우리가 손가락을 움직이기로 마음먹기 0.5초 전에 이미 이 운동을 예측할 수 있는 뇌 신경활동(readiness potential, RP)이 진행되고 있음을 증명했다고 주장한다(참고로 2011년 연구에 의하면 RP 발생 시점이 마음먹기 최대 7초 전으로 앞당겨졌다). 그의 주장이 옳다면 우리의 행위 의지는 이미 진행 중인 무의식적이고 물리적인 뇌 신경활동에 대해 사후에 부가되는 무능한 그림자에 불과하게 되고 우리는 물리적 자극에 물리법칙에 따라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로봇과 별반 다를 것이 없게 된다. 이런 상황은 나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에게는 결코 이해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니. 그리고 이러한 논리를 바탕으로 어떤 철학자들은 자유의지가 없는 뇌가 시키는데로 한 것 뿐인 범죄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지 의문을 던지기도 한다. 우리는 이 난감한 문제에 답을 제시해야 한다.


리벳의 예측은 가능한 이야기다. RP를 검출하여 손가락으로 버튼을 누를지 누르지 않을지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RP로부터 특정 근육의 움직임까지의 과정이 일의적으로 결정되어 있다는 것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 실험에서는 선택할 수 있는 행동이 두가지로 제한되어 있다. 즉 의미가 두가지로 제한되어 있다. 버튼을 누르거나 누르지 않거나.
하지만 실제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다. 선택은 더 다양하다. 버튼을 누르려는 의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양한 생각들이 존재한다. 이것이 관여하게 된다면 RP는 무의미해진다. 더구나 실제 세계에서는 RP를 유발하는 신경활동이 다른 의미의 실현에 관여할 수도 있다. 따라서 RP가 버튼을 누르는 행위를 예측할 수 있는 것은 특별한 실험 조건에서만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나는 앞서 의식은 의미라 규정하며 고차의식과 감각질/기본감정 간 차이를 설명했다. 여기에서 두 부류의 의식간에 존재하는 차이점을 추가로 언급해야겠다. 이 차이점은 내가 찾으려는 우리의 자유의지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고등동물(예, 개, 소, 원숭이, 침팬지 등)도 의식이 있다. 그런데 그 의식은 감각질과 기본감정과 같은 것이다. 감각질/기본감정이라는 의미(설명의 편이를 위해 이것에 이제 이름을 부여해야겠다. 나는 감각질/기본감정을 의미와 연관시킬 때 이를 일차의미라 부르겠다. 한편 고차의식은 고차의미라 부르겠다. 이 둘은 같은 말이지만 설명과 이해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정의하는 용어이다) 즉 일차의미는 감각에 밀착되어 있다. 감각 경험은 일차의미이다. 단순한 지각 경험도 일차의미이다. 일차의미는 즉각적으로 반응 즉 행동을 일으킨다. 하지만 고차의미는 다르다. 고차의미는 언어 사용에 의해 생기므로 감각 또는 지각과 분리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성냥개비를 사람이라고 또는 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사과를 먹는 것이 아니라 돌이라고 가정할 수도 있다. 언어를 사용할 때 형성되는 고차의미는 지각 뿐 아니라 반응(행동)과도 분리될 수 있다. 발을 구르며 말을 타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고 밥을 먹는 것을 복종이라 생각할 수 있다. 의미가 지각과 행동으로부터 분리될 때 우리는 추상의 세계로 들어가고  “의지”가 등장하게 된다.
어떤 행동에 특정 의미를 부가하는 것이 바로  “의지”이며 “선택”이다.
고차의식에서는 지각도 행동도 의미에 종속되며 이제 우리는 의미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며 비로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의지를 가지게 된다. 자유의지는 언어사용을 통해 펼쳐지는 의미의 세계에 존재하며 그 세계에서만 가능하다. 어떤 고차의식도 즉 어떤 고차의미도 현실적으로 특정 뇌 신경활동과 연관되어 있지만 이제 의식은 신경생물학적 활동에 수반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뇌 신경활동이 의식에 수반되는 것이라 말해야 한다.


언급한 바와 같이 언어를 사용하게 되면 고차의미가 형성되는데 고차의미는 일차의미에 덧씌워지거나 지각과 상관없이 특정 뇌 신경활동에 칠해질 수 있다. 고차의미는 유연하다. 예를 들어 사과를 볼 때 경험하는 일차의미는 하나밖에 없지만 사과가 돌이 될 수 있고 굴복이 될 수도 있다. 일차의미는 그 자체가 동기요 욕구가 된다. 따라서 즉각적이고 자동적으로 특정 반응/행동을 야기한다. 그러나 일차의미에 덧씌워지거나 특정 뇌 신경활동에 칠해지는 고차의미는 다양할 수 있고 이에 따라 야기되는 행동도 다양해진다. 우리는 고차의미를 선택함으로써 행동을 선택할 수 있고 "의지"를 발휘할 수 있다. 사과를 보고 먹을 수도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 던질 수도 있고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거나 사과를 치워버릴 수도 있다. 의지는 의미의 세계에서 생기는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언급할 것은 의미가 김재권 박사가 그렇게 강조하는 물리적 인과의 폐쇄성을 결코 손상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리적 인과의 사슬은 연속되고 끊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인과의 연속은 물리법칙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의미의 법칙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 한가지 유념해야 할 것은 의미의 세계가 영혼과 같이 물리적 실체와 분리된 독리된 무엇이 아니라는 것이다. 의미는 유연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물리적 실체에 칠해져 있다. 따라서 물리적 세계가 사라지면 의미의 세계도 사라진다. 의미의 세계는 물리적 세계에 대해 독립적이지도 종속적이지도 않고 물리적 세계를 통해 발현된다. 김재권 박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의미의 세계는 물리적 세계를 수반한다.


우리 인간은 생물학적 존재지만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의미의 세계를 갖게 되었고 자유의지를 갖게 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생물학적 제약(구속)에서 인간은 해방되었다. 우리는 외부 또는 내부 자극에 대해 물리법칙에 따라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기계가 아니다. 우리는 다른 동물들과 달리 상당히 자유롭게 행동을 선택할 수 있다. 이런 존재는 40억년의 생물진화사 속에서 우리가 유일하다. 137억년의 우주 역사 속에서 우리 인간은 특별하며 자존감을 가져도 된다. 하지만 우리는 자존감과 동일한 무게의 책임감도 가져야 하지 않을까? 물론 우리 밖에 의식할 수 없는 책임감이겠지만 말이다.



결론


1. 자연과학이 말할 수 없는 것


나는 의식과 자유의지에 대한 현대과학의 설명에 대한 불만족으로 이 글을 시작했다. 환원주의를 신봉하는 현대과학은 물리적 세계의 이해와 활용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 성공을 근거로 하여 현대의 자연과학은 그것의 설명(가능하다고 주장하는) 범위와 영향력을 꾸준히 그리고 비약적으로 증대시키고 있다. 내가 좀 안다고 생각하는 생물학과 신경과학 분야만 하더라도 진화심리학, 사회생물학, 신경윤리학, 신경교육학, 신경경제학 등 그 영향력은 자연과학을 넘어 인문학과 사회과학 분야로 뻗어가고 있다. 분명 우리 인간도 동물이고 특히 사회성 유인원으로부터 진화해 온 이상 생물학과 신경과학은 인간에 대한 이해에 일정 부분 기여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다른 동물에게는 유래를 찾을 수 없는 고유성이 있다. 그리고 그와 같은 특성은 언어 사용과 고차의식의 출현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고차의식은 물리적으로 환원되지 않으며 물리 세계가 아닌 의미의 세계에 존재한다. 따라서 이를 다룰 수 있는 학문 분야에서 논의하는 것이 타당하며 이 세계에 물리주의가 들어설 여지는 거의 없다. 자연과학의 기초라 할 수 있는 물리학에서는 어떤 현상을 설명하는데 보다 단순한 수식이 있다면 그것이 진리라 보는 믿음이 있다고 들었다. 이것에 비유하여 사랑을 설명하기 위해 방대한 내분비학 및 신경생리학 교과서가 동원되어야 한다면 사랑을 노래하여 수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는 시 한편이 더 진리에 가까울 수 있다.
반복하건데 고차의식, 자유의지, 고차의미의 세계는 자연과학이 말할 수 없는 세계이고 겸손하게 뒤로 물러서야 할 세계이다. 물론 이 세계에 대해서도 자연과학은 연구할 수 있고 실용적 성과를 창출해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본질적 이해와는 먼거리에 있다.


2.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을 제자리에 돌려놓기  


의미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인문학과 사회과학이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한다. 의미의 세계에서 물리법칙은 극히 제한적인 힘 밖에 발휘할 수 없으며 오히려 세상을 이해하는데 방해가 되기도 한다. 의미의 세계에서 인문학과 사회과학은 그 분야가 전통적으로 다루었던 주제들을 편히 다룰 수 있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많은 경험들을 설명하는데에는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법칙들이 물리법칙보다 훨씬 이해가 쉽고 단순하고 아름답다. 내 이야기는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을 다시 반복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연과학의 놀라운 실용적 성공에 압도되어 맣은 사람들이 상식적인 이 이야기를 망각하였거나 감히 입 밖에 꺼낼 엄두도 못내고 있는 것 같기에 이 글을 적어본다. 우리 인간에게만 존재하는 고차의미의 세계는 물리법칙으로 온전히 이해될 수 없다. 오히려 자연과학이 아닌 다른 학문 분야의 지혜가 절실하다.


부연


의식을 의미로 대체하면 특히 고차의식을 고차의미로 대체하면 이 주제에서 환원적 물리주의를 걷어낼 수 있을 것 같고 자유의지의 존재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와 같은 목표가 잘 실현된다 하더라도 한가지 문제는 남는다. 내가 의미란 뇌 신경활동에 칠해지는 것이라고 표현한 그것 즉 의식이 어떻게 생기는가 하는 의문은 설명되지 않은 채로 남는다. 다른 한편 고민해서 쓰긴 했지만 다시 읽어보니 내 의도가 잘 전달될까 하는 의문이 드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내 논리의 문제와 함께 이것도 관심있는 분들의 지적을 기다려보기로 했다. 내가 더 붙잡고 있는 것 보다 그게 더 나을 것 같다. 

  • ?
    임석희 2013.03.11 22:29
    안그래도 궁금하던 부분에 대해 긁어 주셨네요.. ^^

    제가 다른 부분은 문외안이라 감히 왈가왈부 못하겠고...
    세계사 기준에서 볼 때 환원주의는 근대의 산물이고, 현대에서는 환원주의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철학적으로 밝혀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나라가 근대화 및 산업화가 늦다보니, 현대로 잘못 오해 되고 있는 것 같아요.
  • ?
    엄준호 2013.03.11 22:29
    관심에 감사^^

    1. 일차의식이든 고차의식이든 모두 물리적 실현자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의식 M1에 대응하는 물리적 실현자가 반드시 N1이어야 한다는 필연성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2. 환원을 저는 어떤 현상에 대한 물리적 실현자를 찾아내고 그것을 관찰 또는 측정함으로써 관련 현상을 재현하거나 예측할 수 있다면 환원되었다고 정의했습니다.

    3. 환원을 위와 같은 의미로 사용할 때,
    비록 필연성은 없지만 일차의식은 오랜 생물진화사를 통해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대응하는 특정 뇌 신경활동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특정 뇌 신경활동을 관찰/측정 함으로써 일차의식은 예측 또는 재현될 수 있습니다. 반면 고차의식은 모든 시점에서 대응하는 물리적 실현자를 갖기는 하지만 공통적인 뇌 신경활동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환원될 수 없는 것입니다.
  • ?
    엄준호 2013.03.11 22:29
    1.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일차의식이든 고차의식이든 대응하는 물리적 존재가 필요합니다.
    다만 물리적 연관성을 가질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니라 특정 물리적 존재와 연관되어야 한다는 필연성이 근본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견해입니다.


    2. 미선님이 이해하신 바와 같이 어떤 의식에 대응하는 공통적인 뇌 신경활동을 찾을 수 있느냐를 환원의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고차의식의 경우 특정 의식에 특정 뇌 신경활동이 대응하는(선택되는) 것은 그와 같은 대응(선택)이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얼마나 적절하게 위치지워질 수 있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에 동일한 정도의 적절성을 보장한다면 어떤 뇌 신경활동도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 ?
    한정규 2013.03.11 22:29
    잘 읽었습니다.

    여러 가지가 궁금하지만 위에 미선님께서 관념론으로 흐를 위험이 있다는데 동의하고요,

    "
    의식은 물리적 실체가 아니다.
    의식은 속성도 아니다.
    의식은 과정도 아니다.
    의식은 흐름도 아니다.
    의식은 의미이다.
    "

    위의 명제를 부정하고 가장 마지막을 주장하려면 부정의 근거를 알려주셔야 이해가 갈 것 같습니다. 특히 의식이 흐름이다라는 명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리고 자연과학과 인문학 제자리 돌려놓기라는 제목에도 의문점이 있는 데, 제자리라는 게 어떤 것일까요? 애당초 두 분야가 다뤄야하는 넘지 말아야하는 선이 정해져있던 것일까요?
  • ?
    엄준호 2013.03.11 22:29
    글을 올리길 잘 했네요. 댓글을 읽다보니 금방 제 논리의 허점과 부족한 부분이 눈에 띄네요. 더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한정규님께
    1. 제가 부정한 명제들에 전혀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는 지적은 적절합니다. 좀 길어질테니 별도로 댓글을 달도록 하겠습니다.
    2. 자연과학과 인문학 제자리 돌려놓기라는 제목으로 글을 쓴 것은 두 영역이 절대 불가침인 별도의 영역이니 서로 침범하면 안된다는 취지는 분명 아닙니다. 환원주의와 물리주의가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식으로 모든 영역을 제단하려 드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고 본다는 뜻입니다.

    미선님께
    1. 댓글 앞부분은 제 생각과 일치하니 부연할 것이 없습니다.
    2. 마지막 부분에 대해서는 제 생각은 이런 것입니다.

    "적어도 의식 경험 특히 고등한 의식 경험의 사례라도 어느 정도 최소한의 특정한 물리적 조건들을 만족시켜야만 가능한 것 아닌가요?"

    정도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 즉 의식이 분명 어떤 뇌 신경활동과 연관되어 있겠지만 일차의식과 고차의식은 연관성의 정도가 다르지 않을까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이런 뜻에서 저는 고차의식에 대응하는 뇌 신경활동이 보다 유연하다고 적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지적하신데로 특정 뇌 부분이 손상되면 그곳과 관련이 있는 뇌 기능이 손상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저도 분명 "어느 정도의 신경해부학적 제약"이 필요하다고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일차의식과 고차의식은 그것에 대응하는 뇌 신경활동의 "대응 유연성(?)"에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
    엄준호 2013.03.11 22:29
    감사합니다. 말씀하신대로 다음글에서 논의를 이어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한마디만 부연하자면...
    말씀하신대로 제가 생각하는 환원의 경계는 사실 모호한 것 같습니다. 저는 분명 윗글에서 감각경험/기본감정과 같은 일차의식은 물리적 상관자를 찾을 수 있고 따라서 환원되어질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언어의 상당부분이 몸을 통한 감각경험과 우리의 행동에 연관되어 있는 이상 언어 사용을 통해 형성되는 고차의식 역시 이러한 연관성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고차의식이라면 일차의식과 상당히 중첩되어 있을 것입니다.
  • profile
    주민수 2013.03.11 22:29
    의식은 인식이고,
    인식은 해석이며,
    해석의 결과는 의미다.

    ∴ 의식은 의미다?
  • ?
    엄준호 2013.03.11 22:29
    역시 주 박사님의 논리는 명쾌하시네요.
    제가 의식을 의미다라고 표현한 이유를 박사님 글을 보고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습니다.
    하지만 박사님이 적으신 그런 논리 전개로 쓴 표현은 아닙니다.
    제 생각에 의식은 본문에 적은데로 실체나 속성 등은 아닌 것 같고
    서로 다른 글자가 같은 의미를 규정할 수 있고 본질적으로 특정 글자가 특정 의미를 가져야 할 필연성이 없는 것이 마치 뇌 신경활동과 의식의 관계와 유사한 듯 하여 "의식은 의미다"라고 규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규정하게 되면 행동과의 관계도 설명하기 편한 것 같습니다. 즉 모든 행동은 우리가 이해하든 못하든 어떤 의미 속에서 행해지는데 그 의미가 감각경험 나아가 이에 의해 야기되는 뇌 신경활동에 의해 자동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처해있는 사회문화적 맥락에 의해 다양하게 규정될 수 있고(즉 의미가 우리의 감각경험으로부터 분리될 수 있고) 그 다양한 규정들 중 하나가 행동과 연결되는 것이라면 그것이 곧 의지요 선택이 아닐까하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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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첫모임(2월 17일)주제 4 엄준호 2012.01.15 2299
89 첫모임 후기 및 3월 주제도서 알림 8 엄준호 2012.02.22 2477
88 철학의 목적과 한계 그러나 안할 수도 없는 필연 3 미선 2013.07.01 2218
87 철학사상에 관한 자료 공유 6 우현종 2012.02.11 2649
86 철학과 과학의 차이 (Metaphysics & Physics) 1 미선 2013.06.21 3274
85 참여 가능한가요? 2 허당왕 2015.11.07 1870
84 참고도서 소개 3 엄준호 2012.02.06 2443
83 진화하는 우리 몸(Momm)의 홀아키 구조 9 미선 2013.03.18 3203
82 지난번 모임 정리글을 아직도 못올리고.. 4 엄준호 2012.02.28 2295
81 지각과정 김홍재 2014.01.04 2347
80 주민수 박사님께 6 file 엄준호 2014.08.20 2597
79 자연 법칙 자체도 진화한다! 질서와 무질서의 변주곡 미선 2013.08.07 2127
78 인천토요모임(7월20)에서 <뇌와 도덕성> 강의 장철순 2013.07.18 2029
77 인간존재의 의미는 있는가 없는가? 1 김봉영 2012.06.18 2243
» 의식이란 무엇인가? 8 엄준호 2013.03.11 2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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