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과학과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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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헤드의 과학철학 노트]


* 매주 토욜 대전백북스홀에서 공부하는 화이트헤드의 과학철학 노트입니다..







철학과 과학의 차이

혹은 ‘physics’와 ‘Meta-physics’와의 차이와 경계

 


"사상의 역사는 관찰된 사실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
 그 관찰 기록 속에 끼어든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PR 9)


"나는 (상상적) 추측이 없이는 뛰어난 관찰도
 독창적인 관찰도 없다는 것을 굳게 믿네!"  - 찰스 다윈


"우리가 뭔가를 증명할 때는 논리를 가지고 한다.
 그러나 뭔가를 발견할 때는 직관을 가지고 한다."   - 앙리 푸앵카레


 

화이트헤드는 왜 수학(초기)과 물리학(중기)의 연구에서
다시 나중에는 철학(형이상학)으로까지 나아가게 된 것인가?


당시에는 논리실증주의가 유행하여 형이상학은 헛소리라고 치부되던 시절이었는데,
왜 백두는 당대의 그러한 유행을 거스르고 오히려
사멸된 줄로만 알고 있던 철학(형이상학)에 대한 추구로 나아가게 된 것인가?


오늘날에도 철학의 불필요성을 주장하는 분들도 없잖아 있는데, 게 중에는 그 옛날 비엔나 학파의 실증주의자들과 비슷하게 과학에 대한 맹신적 성향을 지니고서 차라리 구체적 사실을 추구하는 과학적 언명을 추구해야 한다고 보기도 한다. 예컨대, 철학의 불필요성을 주장하는 몇몇 과학지상주의자들에 따르면, 철학은 과학만큼이나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사실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매우 추상적인 생각들을 나누는 이론일 따름이며, 또한 철학(형이상학)은 과학의 수학방정식만큼이나 그렇게 확실한 것 같지도 않다는 점을 들곤 한다. 혹자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언제어디서나 확실하지만 철학의 온갖 이론들은 시대의 흐름을 타기에 그렇지 않다는 점을 언급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언급은 철학에 대한 몰이해적인 무지의 발언으로서, 정작 수학과 물리학을 연구했던 화이트헤드 자신이 봤을 때는 철학이라는 학문이 어떤 성격의 학문인지를 전적으로 전혀 이해하지 못했음을 드러내는 언급일 뿐인 것으로 본다. 물론 인간의 본성 중에는 근원적으로 불확실성을 싫어하는 측면도 있기에 아무래도 세부적 사실에 대한 구체성과 확고한 수학방정식으로도 기술되는 과학에 대한 옹호와 지지가 어쩌면 매우 자연스러울 수도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이미 인류의 지성사에도 이와 비슷하게 철학의 무익함을 주장하는 사상가가 있었는데, 대표적으로는 16세기 근대 사상가 중의 한 명인 프랜시스 베이컨을 들 수 있겠다. 흔히 우리에겐 귀납적 사유의 사상가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베이컨에 따르면, “철학적 사변이란 무익하다는 것이다. 그 같은 입장에서 볼 때, 우리는 무엇보다도 세밀한 사실에 대한 기술(description)에 힘써야 하며, 이렇게 기술된 세부의 체계화에만 엄밀히 한정되는 그런 일반성을 띤 확고한 법칙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PR 14)


과연 정말 그럴까? 철학은 정말 무익한 것일까?


사실 이에 대한 반론은 이미 현대의 과학철학 진영에서도 나와 있긴 하다. 참고로 굳이 한 가지를 추천한다면 구체적으로는 노우드 러셀 핸슨(Norwood Russell Hanson)의 <과학적 발견의 패턴의 논리>를 추천하지만, 여기서는 먼저 나온 화이트헤드 철학의 노트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노우드 러셀 핸슨의 작업은 귀납법적인 과학적 탐구 방식의 한계에 보다 초점을 맞춘 사이언스 클래스에 속하는 명저로 평가받는다).


화이트헤드가 보는 베이컨의 그 같은 주장에 대한 반론은 다음과 같다. “일정한 체계의 한 요소로서 해석되지 않고서도 이해될 수 있는 맹목적이고 자족적인 사태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직접 경험의 사태를 표현하려고 할 때마다 발견하게 되는 것은, 그 사태에 대한 이해가 그 사태 자체를 넘어서, 그것과 동시적인 것에, 그것의 과거에, 그것의 미래에, 그리고 그것의 한정성을 나타내는 여러 보편적인 것에로 우리를 이끌어간다는 사실이다.”(PR 14)


예컨대, 우리가 꽃이 핀 사건에 대해 논의한다고 했을 때, 과연 어디까지가 꽃이며 어디까지가 꽃이 아닌지 경계를 확정하기가 매우 힘들다. 태양과 공기 그리고 들판의 흙이 꽃이라는 사건과 존재론적으로 분리된 독립적 사건으로 결코 볼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 유기적인 전체 관계망 속에서 다루어질 수밖에 없다. “어디까지가 꽃이야”라고 경계를 긋는 것도 실은 알고 보면 그저 인위적인 언어와 개념일 뿐이다. 실재하는 존재 자체를 확정짓는 경계가 아닌 것이다.


“모든 언어는 생략된 형태의 것일 수밖에 없으며, 직접 경험과 연관시켜서 그 의미를 이해하려면 상상력의 비약이 요구되는 것이다.”(PR 13). 화이트헤드는 철학의 작업을 <상상적 일반화>imaginative generalization이라고 언급한다. “모든 사실에 적용되는 유적(類的)인 개념을 점치기 위하여 한정된 사실들의 무리에 적용되는 종(種的)인 개념들을 이용한다”(PR 5)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언어의 한계를 분명하게 넘어설 필요가 있다. 우리가 “빨간 꽃”이라고만 했을 때, 그때의 언어는 “빨간 꽃”에만 한정되어 있을 뿐이지, 태양과 공기와 들판의 흙 등등 다른 요소들은 이미 제거되어 있는 것이다. 그럴 경우 앞서 말한 대로, 태양도 공기도 들판의 흙도 없는 꽃을 떠올려보라. 그런 꽃은 분명 <꽃>이라는 존재의 정체성을 온전히 확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실재(reality)로서의 <꽃>이라는 정체성은 근원적으로 <꽃>으로불리는 그것에만 머물러 있지 않으며 전우주적 지평과 관계적으로 확장되어 있는 것이다(*혹자는 여기서 노자 <도덕경> 제1장 1절의 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 구절을 떠올리기도 한다.)


문장의 단어도 마찬가지다. 그냥 ‘빨간 꽃’이라고만 썼을 경우, 그것이 정말 식물의 빨간 꽃을 말한 것인지 어떤 그림을 두고 빨간 꽃이라고 한 것인지 혹은 그 어떤 여인의 이미지를 빨간 꽃이라고 말한 것인지 전혀 알 길이 없다. 따라서 그 어떤 존재든지 근본적으로는 전체적인 관계 맥락 속에서만 온전히 파악될 뿐이다.


철학은 바로 이 지점에서 필요하게 되는데 바로 그 전체적인 관계 맥락이라는 <상상적 도식으로서의 전체 그림을 그려보는 작업>이 곧 일종의 철학을 세우는 작업인 것이다. 보다 정확히 얘기하면 이는 제일성의 철학이라 불리는 <형이상학>에 해당한다. 영어의 Meta-physics(형이상학)이라는 단어그대로 Physics(자연과학) 너머의 궁극적 배경까지 탐색해보고자 하는 것이 바로 철학이다.


즉, 알고 보면 철학은 과학뿐만 아니라 종교와 예술 등등 인간의 모든 온갖 경험들을 철학의 자료로 삼아서 가장 <궁극적인 일반성>에 대한 탐색을 수행하는 작업인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철학과 과학에는 서로 간에도 분명한 차이가 있음을 인지할 필요가 있겠다. 과학은 적어도 인간의 측정 범주 안에 들어올 수 있는 데이터들을 기본적으로 유의미하게 다루고자 하는 학문이라면, 철학은 인간의 측정 범주 넘어서까지도 가장 궁극적인 일반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상상적 일반화>imaginative  generalization의 작업을 펴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철학은 과학과는 다른 목적을 지니고 있는 학문 체계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물론 철학이 추구하는 상상적 일반화는 아무렇게나 상상하는 그런 상상의 비행이 아니다. 오히려
“프랜시스 베이컨조차도 간과했던 것은 정합성(coherence)과 논리(logic)라는 요건에 의한 상상적 비행이었다(PR 54).” 철학이 신화라는 뮈토스의 시대에서 결국 합리적 이성이 요청되는 로고스의 시대로 넘어올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점에서다. 인류 학문의 역사는 철학으로부터 본격적인 사유의 모험을 수행하게 된 것이다.


인류사에서 철학이 그토록 막강한 영향력을 지닐 수 있었던 이유는 그것이 가장 궁극적인 일반성에 대한 탐험이었기 때문이다. 철학에서는 그것이 측정 범주 안에 있든 밖에 있든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우리가 직접적으로 의식하는 이 세계 전체가 곧 철학의 자료인 셈이다."(RM 82). 철학은 그 점에서 당대의 모든 경험들을 끌어안고서 일반화를 시도한다는 점에서 불완전하지만 어느 한 시대의 문명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도 하는 위력이 있다.


예컨대, 불교의 문명은 붓다의 철학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 붓다의 철학은 붓다 자신만의 경험뿐만 아니라 거기에다 다양한 특수 경험들을 <하나의 일반성>으로 꿰어내려는 그의 상상적인 비행을 통해서 마련된 것이었다. 그로 인해 그는 세계 안의 만물에 대한 근원적인 통찰에까지 이를 수 있었던 것이다. 보리수 나무 아래의 깨달음이 그냥 나온 게 아닌 것이다. 이러한 붓다의 철학이 문명사에 끼친 영향력은 어마어마하다. 유교 문명에서의 주자의 철학은 또 어떠한가? 기(氣)와 리(理), 무극과 태극 등등 이러한 사상 역시 동아시아 역사와 문명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쳤던가.


알다시피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사상은 서양 문명 전체에 걸쳐 있으며, 데카르트의 철학이 몇 백 년 동안 서구 근대인들의 뇌리에 뿌리 깊은 영향을 끼쳤음은 말할나위 없는 사실이다. 유교의 형이상학이 조선 왕조 5백년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우리 삶에 뿌리 깊게 남아 있음은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것은 알게 모르게 우리의 삶의 기초 토대로서 기능하며 많은 영향을 끼쳐 왔던 것이다.

철학(형이상학)은 죠지 레이코프와 마크 존슨이 <몸의 철학>에서도 밝힌 것처럼, 우리의 몸 안에 
<무의식적 인지>unconsciousness cognition층에서 작동되는 점이 있다. 철학은 때로 불편한 학문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일상에선 지극히 당연시했던 생각들의 밑바닥을 그 심층 기반이 되는 기초 전제에서부터 뒤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인간의 사유 밑바닥에는 항상 근원을 탐색하고자 하는 궁극적 사유에 대한 갈증과 목마름이 있는 것이다. 철학은 어떤 면에서 생각들 중의 가장 기초 전제로 자리하는 생각을 위해 온갖 사유의 실험들을 감행하는 그러한 영역에 해당한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리하여
온갖 다양한 경험들에 대한 설명력 확보가 높은 철학 이론일수록 우리의 사유를 보다 건강하고 튼튼하게 해줄 뿐더러 그것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미지의 사실에 대한 발견에까지 더욱 예리하게 접근하도록 이끌어주는 조명의 역할을 한다.

즉, 우리 안에 알게 모르게 해석학적으로도 작동되는 <무의식적인 인지>가 자칫 모순투성이의 반합리적일 수 있는 위험성을 항상 예방하도록 견지하는 것이 바로 철학의 임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런 점에서 철학은 곧 모든 학문의 기초로서도 자리매김 되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계속)


* 내일 토욜 대전백북스홀에서 뵙는 수강분들께서도 혹시 궁금한 점 있으시면
언제든지 주중에라도 문의해주시면 되겠습니다. 한 주가 금방 훌쩍 지나가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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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준호 2013.06.21 21:53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철학의 작업들을 상상적 일반화라 하신 위 글을 읽어보니 지난번 강의에서 제가 철학을 "큰 과학"이라 느낀 것이 크게 어긋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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