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과학과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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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란, 내가 이해하는 한에 있어서는, 신학과 과학의 중간에 위치하는 어떤 것이다. 신학과 마찬가지로 철학은 여태껏 명확한 지식으로 단정을 내릴 수 없었던 여러 문제에 관한 사색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 과학과 같이 철학은 인간 이성에 호소하며, 전통의 권위이든 계시의 권위이든 간에 권위에 호소하지 않는다. 명확한 지식은 전부 과학에 속한다. 그리고 명확한 지식을 초월하는 모든 교의는 신학에 속한다. 이것이 나의 주장이다. (러셀의 <서양 철학사> 서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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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경박한 비유를 허용한다면, 일반 교양인은 "밑져야 본전!"인 사람들을 뜻하고 이른바 전문가는 "잘해야 본전!"인 사람들을 뜻합니다. 전문가는 잘해야 본전이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저자거리'에서 얘기하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전문가의 견해를 마냥 기다릴 수만도 없는 것이 일반 교양인의 입장이다 보니 때로는 일반 교양인끼리라도 문제를 규정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과학과 철학에 대해 얘기하면서도 과학이 무엇이고 철학이 무엇인지 규정하지 않은 채 얘기를 진행한다면 아마도 오해가 계속 쌓일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과학과 철학에 대해 제 나름대로 어떤 식으로든 정의하고 얘기를 계속하는 것이 불필요한 오해나 마찰을 줄이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과학은 자연을 대상으로 하고 철학은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합니다.?'철학'이란 단어의 어원은 '지(知)를 사랑함-philosophy'이니 쉽게 풀어 말한다면 '알고 싶어 함'일 것입니다. 그런데 대체 뭘 알고 싶어 한다는 말일까요? 처음에는 학문이래 봐야 철학 한 가지 밖에는 없었을 테니 초기 철학의 대상은 자연히 인간을 포함하여 인간의 주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개념과 통하는 철학의 시작점이?'형이상학-metaphysics'임을 기억한다면?이는 자연-physis을 뜻하는 '물리학-physics'과 대비되는 개념이었음에 유의해야 합니다. 또한 초기의 물리학이 사실상 오늘날의 과학을 의미한다고 볼 때 결국 철학과 과학은 인간이 자연을 이해하는 두 가지 방식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초기에 물리학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과학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세부 자연학으로의 분화를 거치면서 오늘날에 이릅니다. 이렇게 진화를 거듭한 과학에 비해 철학은 인문학의 배아로서의 역할을 잊은 채 진화를 멈춘 듯이 보입니다. 그런데 진화를 멈춘 덕분(?)임을 잊고 아직도 철학의 대상이 여전히 모든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철학이란 실로 탐욕스러운 학문이거나 아니면 무책임한 학문이라는 생각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는 과학과 마찬가지로 철학도 더이상 특정한 대상에 대한 탐구가 아니라 하나의 방법론이라는?큰 틀로 다시 돌려 놓아야 할 때가 아닌가?하는?생각이 듭니다.?왜냐하면 오늘날 과학 그 자체가 하나의 전공 과목일수 없듯이 철학 또한 그 자체가 하나의 전공 과목이기에는 무한에 가까운 스펙트럼이?버거워(?) 보이기 때문인데 과연?지나친 생각일까요??

기왕에 방법론이라는 관점을 고려한다면?과학은 자연을 하드웨어적 입장에서 이해하려는 노력이고 철학은 자연을 소프트웨어적 입장에서 이해하려는 노력이라는 해석을?제안하고 싶습니다. 하드웨어적 입장이란 원자를 기반으로 하는 물질적 관점을 뜻하는데 하드웨어 상에서는 '에너지'가 동력을 제공하지만 소프트웨어 상에서는 '도깨비(?)'가 동력을 제공한다는 점을 또한 사족으로 덧붙여 두고 싶습니다. 제가 보기로 <의식>이라는 존재의 물리학적 설명을 위해서는 '생명이라는 도깨비(?)'를 이용하는 모형이 필요해 보이기 때문인데 이 문제는 나중에 자세히 얘기할 기회가 있으리라 기대해 봅니다.?

찍이 소크라테스는 진정한 앎이란 인간이 무엇을 위해 사는가를 탐구하는 가치의 문제임을 설파한 바 있습니다. 따라서 철학은 가치의 원천인 실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철학의 역사에서 지나친 객관성의 강조로 말미암아 진정으로 가치있는 존재의 확인을 위한 실재성의 문제는 본질에 대한 환상을 낳고 말았습니다. 철학이 초심을 망각한다면 '현대판 소피스트'에 불과하다는 말을 듣는 날이 오게 될지도 모릅니다. 한편 과학은 현상을 바탕으로 이루어집니다. 현상은 사실에 근거하고 사실은 진실에 기초하므로 과학은 당연히 진실을 함축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해서 과학은 진실이라는 허상을 끌어안게 됩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한다면 과학은 '관찰에 대한 해석'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과학 또한, 반성이 없는 자부심은 독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과학에서 사용하는 '현상'이라는 용어를 살펴보면 외양적이라는 의미를 갖는데 반해 철학에서 사용하는 '현상'이라는 같은 용어는 본질적이라는 오히려 상반된 의미를 갖습니다. 이렇듯 철학과 과학은 용어의 사용에서 차이가 큽니다만 특히 과학에 비해 철학에서 사용하고 있는 용어들의 정의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철학책을 읽기가 불편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철학의 대상이 과학과 달리 객관적인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용어 정의를 위한 철학의 노력이 지금까지 그렇게 크지 않았다는 점과 용어의 명확한 정의가 없이는 진정한 학문의 발전을 기대하기가 어렵지 않은가 하는 점을 지적해 두고 싶습니다.?

의미의 문제로 고민하던 비트겐슈타인은 <의미의 의미>라는 수렁에 빠지게 되고 개념의 문제로 고민하던 프레게는 <개념의 개념>이라는 늪에 빠지고 맙니다. 한편 관념의 문제로 고민하던 칸트는 <관념의 관념>이라는 악순환에 부딪치게 되고 데카르트는 <심신 문제>로 고민합니다. 이렇게 철학은 묻는 법을?보여줍니다.

참고삼아 이
들의 철학적 문제를 다소 희화적으로 예화해 봅니다.
(1) 비트겐슈타인의 고민:
? ① (흄: 인상이 현상이다!) vs (칸트: 현상이 인상이다!)
? ② (포퍼: 진리가 승자다!) vs (쿤: 승자가 진리다!)
(2) 프레게의 고민:
? ① (A→B) & (B→C) ∴ (A→C)
? ②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 사과는 바나나?
(3) 칸트의 고민:?
? ① 2원 x 3명 = 6원?/6명?
? ② 2원 x 3명 = 6원명?
(4) 데카르트의 고민:
? ① (혜가: 마음이 괴롭습니다!) & (달마: 마음을 가져와 보렴!)
? ② (혜가: 마음을 찾을수 없습니다!) & (달마: 없다는 마음이 어찌?괴로울꼬?)?

이들의 고민은 언어철학/과학철학/심리철학 등의 주제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칸트의 고민으로 든 예는 철학의 논리적 구조에 대한 그의 수학적/물리학적 고민을 나타내고자 한 것인데 어쩌면 '형식의 타당성'과 '내용의 진실성'이라는 문제로 고민한 비트겐슈타인에게 더 어울리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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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정규 2012.03.18 19:22
    과학, 철학의 개념 규정을 해야 논의가 진행된다고 생각하는 사고 방식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적 사유를 따르는 것 같습니다. 헌데, 명확한 규정이 가능할까요? 전문가와 일반교양인의 비유에서 '밑져야 본전' 맥락에서 위와 같은 이유로 전문가의 견해를 기다릴 수 없으니 논의를 위해 정의를 내린다고 했는데, 명확한 정의가 필요한지 의문입니다. 소위 전문가들이 정의하기에는 어렵기 때문에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요? 아니면 그 자체 속성이 정의하기에 어려운...? 과학은 철학에서 시작하여 자연학 그리고 물리학 등 계속 변화를 겪어 왔죠. 변화하면서 그 성질도 바뀔 수 있었던 것이죠. 지금 연구소나 학교에서 하는 '과학'이라는 것도 그 성질이 계속 바뀌는 것은 아닐까요? 서양적 사유의 테두리에서 계속 사고한다면 새로운 과학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상황이 오지 않을까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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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준호 2012.03.18 19:22
    정말 재미있습니다. 글을 참 잘 쓰시네요. 예로 드신 4명의 철학자들이 고민한 문제들에 대해 더 듣고 싶네요. 시간이 되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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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형빈 2012.03.18 19:22
    저도 재밌게 읽었습니다. 이어질 글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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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신철 2012.03.18 19:22
    이런 글들이 백북스 홈페이지에 자주 등장하기를 기대해봅니다. 독서산방에 들어가 밤새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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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민수 2012.03.18 19:22
    제가 '전문가'에 대해 다소 경박한(?) 비유를 사용한 이유는 전문가들의 지나친 조심성을 꼬집기 위해서지만 사실 전문가들은 진지함과 책임감이 대단합니다. 어쩌면 지나치다 싶은 조심성도 강한 책임감의 발로일지 모릅니다. 가끔 '벌거벗은 임금님'으로 하여금 벌거벗은 줄도 모르고 춤을 추게 만드는 '재단사'들이 문제이긴 하지만 진정한 전문가는 유혹이나 선동 따위와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한정규님/ 잠깐, 의사소통의 전제조건은 우선 사용하는 언어가 같아야 한다는 점이 아닐까요? 더군다나 전문적인 대화라면 더더욱 그러 하리라 생각합니다만... 특히 용어의 정의와 관련해서, 자기 책의 앞부분을 책에서 사용할 용어의 정의로 채웠다는 하이덱거의 태도야말로 눈여겨 볼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물론 모든 것은 변합니다. 그러나 '변화를 위한 변화'가 아니라 '필요에 따른 변화'라는 의미에서 케케묵은(?) 공자의 조언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온고지신(溫故知新)' & '군자표변(君子豹變)'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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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민수 2012.03.18 19:22
    독서의 한 가지 요령은 책에 나오는 의문문의 형태인 질문들을 한데 모아서 정리해 보는 방법입니다.
    특히 전문성을 가진 책이라면 저자의 의도와 전체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철학의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 제가 읽었던 책들 중에서 정리한 질문의 일부를 적어 봅니다.

    :러셀의 <철학의 문제들>에서
    01.누구라도 의심의 여지가 없이 확신할 수 있는 지식이 이 세상에 있을 수 있는가?
    02.육안으로 보는 책상 표면과 현미경을 통해 보는 책상 표면 중에서 어느 것이 "실제적인" 책상 표면인가?
    03.우리가 육안으로 본 것은 신뢰할 수 없다고 한다면 현미경을 통해 본 것은 왜 우리가 신뢰해야만 하는가?
    04.실제적인 책상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05.실제적인 책상이 존재한다고 가정한다면 감각소여는 그러한 실제적인 책상과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06.물질과 같은 것이 존재하는가? 만약 존재한다면 그것의 본성은 무엇인가?
    07.만약 실재가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과 다르다면 실재가 존재한다는 것을 어떤 방식으로 알 수 있겠는가?

    :데넷의 <마음의 진화>에서
    01.다른 사람의 마음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 수 있을까?
    02.태아가 엄마의 뱃속에서 경험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어떤 경험일까?
    03.왜 대머리독수리는 동물의 썩은 시체를 먹으면서도 구역질을 느끼지 않을까?
    04.물고기 주둥이를 관통한 낚시 바늘은 내 입술을 관통했을 때와 똑같은 아픔을 물고기에게 줄까?
    05.거미는 아무 생각없이 근사한 거미집을 짓고 있는 작은 로봇에 지나지 않을까?
    06.로봇과 마음을 가진 동물 사이에는 넘어설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하는 것일까?
    07.사람만이 마음을 갖는다는 데카르트의 생각은 완전히 잘못된 것일까?
    08.모든 동물, 심지어는 식물 - 심지어는 박테리아까지 -도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일까?
    09.만일 우리가 다른 마음들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안다면 우리는 그 사실을 어떻게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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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세상에는 어떤 종류의 마음들이 있는가? --> (사실은 이 부분이 이 책의 "원제목"입니다.)
    B.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아는가?

    :써얼의 <마인드>에서
    01.심신문제
    02.다른 사람의 마음
    03.외부 세계의 존재에 대한 회의론
    04.지각
    05.자유의지
    06.자아와 인간적 동일성
    07.동물도 마음을 가지는가?
    08.수면의 문제
    09.지향성의 문제
    10.심적인과와 부수현상론
    11.무의식
    12.심리적 설명과 사회적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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