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과학과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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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론 - 화이트헤드의 과학철학 노트]




"모든 경험적 지식에는 피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 토대가 있으며, 그 어떤 형이상학도 
 현실세계의 실재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고 입증되지 못하면 고려할 만한 가치가 없다." 
 
- 임마누엘 윌러스틴 (사회학자)




(* 아래의 내용은 화이트헤드의 주저인 <과정과 실재>Process and Reality에 실린 내용으로 좀 더 분명하게 나와 있어서 퍼온 것입니다.)

"철학(형이상학)의 연구는 보다 광범한 일반성을 향해 나아가는 항해(航海)이다. 이런 이유에서 과학의 요람기, 즉 당면의 주제에 유효하게 적용될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인 관념의 발견에 치중하고 있었던 시기에는 철학과 과학이 예리하게 구별되지 않았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관념들이 어떤 실질적인 참신성을 갖는 새로운 과학은 어떻게든지 특별히 철학적인 데가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 대부분의 과학이, 일시적인 혼란을 별 문제로 한다면, 후기의 단계에서는 자신을 전개시키는 데 사용하고 있는 일반적 관념들을 이의 없이 받아들인다.

주된 관심은 보다 특수한 진술들을 조정하고 직접적으로 확증하는 데에 쏠리게 된다. 이러한 시기에는 과학자들이 철학을 거부한다. 뉴턴은 자신의 물리학의 원리에 전적으로 만족한 나머지 형이상학을 거절하였다.

뉴턴 물리학의 운명이 우리에게 경고해 주는 바는, 과학의 제1원리(the scientific first principles)에도 발전이 있다는 것, 그리고 이 제1원리의 원형(原形)은 오직 의미의 해석과 그 적용 영역의 제한―즉, 성공리에 사용되던 초기에는 의문시되지 않았던 해석과 제한―에 의해서만 보존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문화사의 한 장(章)은 일반성의 성장을 문제삼는다. 이러한 장에서 낡은 일반성은 오래된 언덕처럼 마멸되어 그 높이가 낮아지다가 급기야 새로운 경쟁자에 의해 대치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따라서 철학의 목적 가운데 하나는 과학의 제1원리을 구성하고 있는 반쪽짜리 진리half-truths에 도전하는 일이다. 지식의 체계화는 선박의 방수격실(防水隔室) 같은 곳에서 이루어질 수 없다. 모든 일반적 진리들은 상호간에 제약하고 있어서, 그 적용 범위는 보다 광범위한 일반성을 토대로 하는 그들 상호간의 관계를 떠나서는 적절히 규정될 수 없다. " (PR 10/63)

 *방수격실(防水隔室) - 배에 물이 들어오는 것을 막으려고 사방으로 격벽을 둘러치고 위아래는 철 갑판을 대어 따로 만들어 놓은 방. 
 

화이트헤드는 궁극적으로는 자연과학의 원리나 법칙들마저도 진화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서 "지식의 체계화 작업이 선박의 방수격실 같은 곳에서 이루어질 수 없다"는 문장은 결국 어느 누구나 예외 없이 모든 현실 존재들이 관계적으로 연결된 몸삶이라는 총체적 지평 속에 놓여 있기에 궁극적으로 우리는 이러한 영향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까지도 말해주는 것이라고 본다.

오늘날 각자의 다양한 전문 연구 분야들이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자기만의 탐구 세계라는 각각의 전문적 틀 안에 갇혀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럴 경우 화이트헤드가 보기에 그러한 다양한 전문성들조차도 그것이 놓여지게 되는 보다 광범위한 일반성으로서의 종합적인 형이상학적 그림과 비전을 그려보는 가운데 각자의 세부적인 구체성과 전문성을 실현해나가는 것이 그나마 더 나은 최선이라는 본 것이다.
 
쉽게 말해
전체 숲의 그림을 최대한 (정합적인 상상적 일반화의 작업으로) 가늠해보면서
즉각적으로 내 앞에 놓여 있는 구체적 사태로서의 나무를 가급적 올바로 알아가자는 것
이다.
 
오늘날 세부적 전문성들은 무수히 많은 다양한 분화를 일으키면서 파편화된 사태로 남아 있다. 그럴 경우 서로 간의 대화는 고사하고, 심지어 같은 분야 안에서도 같은 단어를 쓰면서도 서로 간의 궁극적인 개념 이해가 저마다 달라지는 불통의 현실을 겪기가 다반사인 것이다.


화이트헤드가 보기에 바로 그러한 점에 있어 철학(형이상학)은 필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록 인간 인식의 범주적 한계가 있음에도 끊임없이 수정 보완을 겪는 것으로 볼 수 있는 열린 사고 체계라면 그나마 최선의 추론으로 가질 수 있는 철학은 전체 문명을 이끌어가는 데에 있어 다양한 전문 분야들에 스며들 수 있는 최선의 비전이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다양한 전문 분야라고 했을 때 과학도 여기선 예외일 수 없을 것이다. 화이트헤드가 보기에
뉴턴의 처사와 달리 과학과 형이상학은 서로 도움을 분명하게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과학을 비롯한 다양한 삶의 현장에서 탐구되는 모든 실용적인 학문들을 <형이하학>이라고 명명할 경우, 모든 형이하학의 탐구 영역들은 그 어떤 형이상학적인 토대에 기반된 채로 해석되어지고 있는 것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형이상학을 마련하는 작업은 결코 형이하학적인 현실을 떠날 수 없으며, 모든 실제적 형이하학 속에서 그 정당화의 근거와 사례를 구해야만 할 것이다.
 

철학의 병폐는 그 자신의 이론이 완고한 독단적 원리로 굳어져만 갈 때 심각한 폐해가 되고 만다. 그 어떤 튼튼한 이론이라도 언제나 실험과 검증이라는 열린 모험의 과정 속에 놓여 있어야만 하며, 결코 이를 피해갈 수 없다. 그러한 가운데 설득력 있게 자리하면서 합리적인 성취를 마련하고 있는 보다 성공적인 형이상학이라면 그 형이상학(철학)은 그야말로 불확실한 시대를 선도하는 예언자적 통찰을 지닌 지혜와 비전으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오늘날 우왕좌왕 하는 현재의 사태 한 가운데서 그것은 설득력을 발휘하기 위해 전체를 아우르는 통합적인 비전이 될 것이며, 또한 그것은 더욱 합리적으로 해명된 세계로 우리를 이끄는 매우 유익한 상상적 자극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형이하학적 지평>과 <형이상학적 지평>이라는 이 두 기둥은 영속적인 모험을 겪는 가운데, 상호 수정적인 발전과 변화 과정 속에 놓여 있다고 보면 되겠다.

이미 형이상학은 20세초에 일찍부터 무가치한 것으로 취급받았었다. 당시 논리실증주의가 유행하면서
형이상학의 언명들은 전혀 쓸모 없는 것으로 취급받던 시기였다. 하지만 화이트헤드는 오히려
형이상학의 역할과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그의 대표작인 <과정과 실재>에서도
형이상학(사변철학)에 대한 불신이야말로 첫번째 타켓이 되는 오류라고 봤을만큼 매우 강조했던 것이다.
 
흥미롭게도 오늘날 철학 진영에서 논리실증주의를 지지하는 이들은 거의 없을 정도인데, 시대가 바뀌어 오히려 형이상학을 경멸하던 그들이야말로 거의 사망선고를 받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물론 여기에는 논리실증주의자들의 주장에 맞섰던 과학철학자 칼 포퍼(K. Poper)나 콰인(W. V. O. Quine)의 공적도 함께 포함될 것이다. 여튼 형이상학은 지금도 궁극적 일반성을 구하기 위한 상상적 사유라는 형태로 당당하게 부활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문명사에서 갖는 매우 유익한 역할과 기능도 함께 있다는 점만큼은 분명하게 인지할 필요가 있겠다..
 
다시 말해, 화이트헤드는 철학(형이상학)이 갖는 범주적 한계 및 병폐까지도 이를 인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단히 철학(형이상학)을 추구해야만 하는 분명한 이유를
그의 주저인 <과정과 실재>에서 이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화이트헤드의 주장은 오늘날 놀랍게도 실증적인 현실사회 연구를 다루는 분야에서
그것도 세계적인 사회과학자인 임마누엘 윌러스틴(Immanuel Wallerstein)의
다음과 같은 언급을 통해 간결하게 요약된 채로 사회학에서조차 통용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모든 경험적 지식에는 피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 토대가 있으며, 그 어떤 형이상학도
현실세계의 실재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고 입증되지 못하면 고려할 만한 가치가 없다."



.............


P.S - 본래 물질과 정신에 대해 다루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형이상학(철학)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마지막 보론이 될 것 같아서 올려놓습니다. 혹시라도 비판과 반론이 있다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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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준호 2013.07.04 17:55
    현대 과학의 한계를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과학자들 조차도. 물론 과학의 설명력은 앞으로도 계속 확장되어 나갈 것입니다만.
    이런 상황에서 형이상학이든 무엇이든 과학적 사실은 물론 과학의 한계 너머까지 포괄하여 설명해주는 어떤 것이 있다면...더구나 그 형이상학이 현대 과학에선 미지의 영역인 부분에 대한 신선한 통찰력까지 준다면...
    이런 형이상학을 마다할 사람이 누가있겠습니까. 아마 모르긴해도 물리학에서 말하는 "대통일이론" 보다 더 사람들은 이런 형이상학을 갈망할 것입니다.
    문제는 화이트헤드 철학의 설득력일 것 같습니다.
    기존 우리의 경험들-과학적 또는 미지의-을 얼마다 아우러서 그럴듯하게 설명할 수 있는가 말입니다.
  • ?
    김제원 2013.07.04 17:55
    엄박사님 글을 보니, 문득 궁금해집니다.

    백두 선생은 평론가입니까, 선수입니까?

    형이상학이란 이러 이러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평론을 하신 분인지,
    그러한 형이상학 한 세트를 만들어서 보여주신 분인지,

    갑자기 궁금합니다.

    (기대하기로는 '백두님은 정합적이고 치밀한 형이상학을 펼쳐 보여주었다.' 였으면 합니다.)
  • ?
    장철순 2013.07.04 17:55
    미선님의 항상 좋은 글에 감사합니다.
    저도 미선님 글에 전적으로 동의 합니다.

    그런데 제가 아직은 확실하게 이해를 못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철학적 형이상학적 대상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합니까?

    무식한 제가 알고 있기엔 형이상학이란 아리스토델레스가 주장을 한 것으로 “존재의 의미”에 대하여 탐구를 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을 <형이하학적>이라고 보면 미지(未知)에 대한 것은 <형이상학적>인 것으로 대비하여 표현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올바로 알고 있는 것인지요?
    이와 같이 보면 현재의 과학적 탐구방법은 기본적으로 옳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미선님의 이번 글에 동의 합니다.

    그런데 그동안 미선님의 글들을 읽으면서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철학은 우리의 삶에 대한 것으로 우리의 삶은 물리적인 신체적인 것과 이를 관장하는 정신적인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면서, 정신적인 것은 비 물리적인 것으로 우리의 현재의 지식사고(사유)로는 알 수가 없으므로 이러한 미지적(未知的) 인 것을 철학적 형이상학이라고 보며, 이러한 철학적 형이상학은 종교적 신의 의지(신의 지식 또는 신의 지혜)와 같은 것에 의하여 주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견해로 글을 쓰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으로 저는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이는 과거에 지식이 적었으므로 당시에 형이상학적인 것은 신의 영역으로 다루어왔던 것과 같이, 불확실성과 같은 것에 따른 것이나 우리의 정신, 의지와 같은 것에서 형이상학적인 것은 종교적 신의 의지나 또는 우리가 상상할 수가 없는 어떠한 의지에 의하여 주어지거나 또는 작용을 하는 것으로 설명이 되어지는 것으로 이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무식한 제가 미선님의 글을 잘못 이해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만약에 그렇다면 철학적 형이상학적 대상은 무엇인지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습니다.
    예를 들면 정신, 마음, 알고자 하는 의지, 근원적 윤리, 종교적 믿음 등과 같은 것은 철학적 형이상학의 대상이라고 보아도 되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제가 미선님의 글을 잘못 이해를 하고 잘못 질문을 한 것이라면 무시를 하여도 상관이 없습니다.
    항상 미선님의 글을 읽고 많은 공부를 하고 있으므로 항상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 ?
    장철순 2013.07.04 17:55
    미선님 성실히 답 해주신 것에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또 궁금한 것이 있는데요
    철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종교적 믿음도 중요한 논의적 대상이라고 할 수가 있는데
    종교적 형이상학이라는 것도 있을까요?
    있다면 이는 신의 마음(의도, 또는 의지)을 알고자 하는 것이 되고,
    또한 이는 신의 마음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 되므로
    신앙적 지식(믿음)은 기복(祈福)적 믿음이 되는 것이 되는 것이 아닐까요?
    개인적 기복이나 집단적 기복, 또는 인류적 기복과 같이 기복적 신앙이 되지 않을 까요?

    그리고 미선님은 인간의 정신, 마음, 의지 등과 같은 것은 “비 물리적”인 현상으로 보거나 또는 외부에서 주어진 것으로 보고 있나요
    아니면 신체적으로 살아가면서 가지는 경험적 지식(언어에 따른 지식정보포함)에 의한 인식적 사고에 의하여 발현이 되는 것으로 보고 있나요?
    아니면 이에 대하여는 불확실성과 불완정성에 의하여 우리는 알 수가 없다는 것으로 보거나, 확률성에 의하여 일부밖에 알 수밖에 없다고 보고 계신지요?

    이러한 궁금증은 제가 여러 철학서나 과학서를 읽으면서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해서 가지게 되는 궁금증일지 모르나, 대체로 이와 같은 궁금증을 유발하기 때문에 문의를 하는 것입니다.
    미선님의 고견을 듣고 공부하고 싶습니다.
  • ?
    장철순 2013.07.04 17:55
    무덥고 바쁘신 가운데도 성실히 답을 하여 주신 것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항상 함께 고민하며 찾아가길 희망할 따름이라고 하시는 미선님의 겸혀한 말씀에 존경합니다.

    그리고 조만간 올리실 화이트헤드 철학의 존재론에 대하여 기대를 하여 봅니다.
    저도 화이트헤드의 존재론에 대하여 대체로 동의를 하고 있는 편이기 때문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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