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과학과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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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헤드의 과학철학 노트]


철학의 목적과 한계 그러나 안할 수도 없는 필연..


"<본다>는 것은 안구 활동 그 이상의 차원이다“

- 노우드 러셀 핸슨



앞서 말했듯이 철학은 일종의 <상상적 일반화>imaginative generalization를 추구하는 작업에 속한다. “프랜시스 베이컨조차도 간과했던 것은 정합성(coherence)과 논리(logic)라는 요건에 의한 상상적 비행이었다(PR 54).” 하지만 이 <상상력에 의한 구성>imaginative construction이 성공하기 위한 조건들은 엄격히 지켜져야 한다고 화이트헤드는 말한다.


“첫째는 인간 경험의 보고로 여겨지는 언어에서 인정되는 특정한 경험 요소들에 대한 일반화에 그 기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여기에는 물리학, 생리학, 심리학, 미학, 윤리적 신념, 사회학 등등 여러 가지 경험의 보고들이 포함될 수 있다(PR 5)”.


“둘째는 정합성과 논리적 완전성을 단호하게 추구하는 일이다”(PR 6). 수학과 논리학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개념들 간에는 가능한 모순이 없어야 할 것이며 제시된 모든 개념들과 명제들은 서로 연관되어지는 가운데 일관성이 확보될 수 있어야만 한다는 얘기다.


즉, 이는 1)적용가능성(applicability)2)충분성(adequacy)(그 적용들이 충분해야 한다는 의미) 그리고 3)정합성(coherence)4)논리적 완전성(logical perfection)이 실현되는 것이 형이상학의 이상이라고 말한다. 앞의 두 가지는 경험적 실천의 영역에 속한다면, 뒤에 두 가지는 이론적 사유의 영역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데, 화이트헤드에게서는 이 두 가지가 긴장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었다.


이러한 철학의 작업은 기존 자연과학이 수행하는
1) 개별적 관찰 2) 새로운 가설 수립 3) 적용 실험 검증
이라는 작업과도 유사한 것에 속한다.


실제로 화이트헤드 철학 작업의 경우는 이미 이에 대한 평가들이 나와 있다. 화이트헤드의 캠브리지 대학의 수리논리학 시절부터 그는 맥스웰의 "전기와 자기에 관한 논고"(Treatise on Electricity and Magnetism)를 연구함으로써 거기에 깊은 인상을 받게 되었고, 이에 대한 화이트헤드 철학의 작업이 당시의 자연과학 연구에 쓰이던 학문적 방법론과 유사한 것임을 밝힌 바가 있다. 이에 대해서는 Hurley, P. (1986). "Time in the Earlier and later Whitehead" In Griffin, D. R. (ed.), Physics and the Ultimate Significance of Time, New York: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pp.87-109.


따라서 화이트헤드가 보는 형이상학(철학)의 작업은 자명한 것에 대한 독단적 진술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궁극적 일반성에 대한 시론적 정식화>의 범주를 넘어서지 않는다. 하지만 그러한 시도만으로도 우리는 새로운 사실에 대한 발견을 탐험할 때 최선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철학(형이상학)과 과학의 차이도 있지만, 굳이 공통점도 있다면 그것은 철학과 과학이 지닌 <담론의 소통 방식>에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즉, 그것은 온갖 경험들에 적용되지 못하는 가설 또는 이론이라면 언제든지 수정 또는 폐기처분 될 수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온갖 다양한 경험들을 잘 설명하고 있는 경우라면 그 <상상적 일반화>를 매우 유용하게 써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철학의 목적은 과학에 있어선 아직 조명되지 않은 미지의 새로운 발견에 대한 <추측>에 있어서도 그 사유하는 방식에 대해서만큼은 건전한 기초 토대를 제공하려는 데에 있는 것이다. 미지의 영역이라 해서 그저 '모른다'라고만 남겨둘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인류는 지금까지 그러한 불가지의 영역에 대해서도 항상 사유의 실험적 탐구와 시도 그리고 열정적 작업들을 부단히 멈추지 않고 계속 해왔었다. 아마 앞으로도 인류의 지성적 사유는 계속 모험을 겪으며 진행해나갈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과학뿐만이 아니다. 철학은 사유의 궁극적 일반성을 추구하는 터라 기본적으로 인간의 모든 경험들(여기에는 심리학적, 종교적, 예술적 경험들 모두 포함)에 대해서도 거대한 통합적 전망에서 내다볼 수 있도록 사유의 빛을 던져준다는 점에서 유용한 것이다. 철학이라는 학문이 모든 학문의 기초 베이스로 자리하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점에서다.


"<실천>practice속에서 발견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형이상학적 기술metaphysical description 범위 안에 있어야 한다. 형이상학적 기술이 <실천>practice을 포섭하지 못할 때 그 형이상학은 불충분한 것이고 수정을 요하는 것이 된다. 우리들이 자기의 형이상학적 학설에 계속 만족하고 있는 한, 형이상학을 보완하기 위해서 실천에 호소하는 일은 있을 수 없게 된다. 형이상학은 실천의 모든 세부에 적합한 일반성의 기술일 뿐이다(Metaphysics is nothing but the description of the generalities which apply to all the details of practice)."


어떠한 형이상학적 체계도 이런 실제적인 테스트를 전적으로 만족시켜 주지는 못한다. 잘해야 형이상학적 체계는 탐구되고 있는 일반적 진리의 근사치에 머물고 있을 뿐이다."(PR 13/65)

 

철학과 과학의 차이에 대해서는
우리가 인류 학문의 역사를 보면
금방 캐치할 수 있는 지점에 속한다.


예컨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이 세계가 물로 이루어졌다느니 혹은 불로 이루어졌다느니 혹은 원자로 이루어졌느니 하는 주장을 폈던 적이 있다. 잘 알다시피 플라톤은 실재하는 이데아와 그로부터 파생된 현상세계를 언급했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질료와 형상 그리고 작용인과 목적인으로 이 세계를 설명한 바 있다. 이는 그들 나름대로 연구한 <상상적 일반화> 작업을 통해 나온 주장이었다.


만일 이들이 고도로 발달된 측정 장비나 기술을 갖고서 유의미한 데이터를 확보한 후에 저러한 주장을 폈다면 그것은 당연히 철학이 아닌 과학의 범주로 포섭되게 될 것이다. 철학은 인간의 감각 측정 범주 안에 들어오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수행 가능한 <상상적 일반화>의 작업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 특히 이론물리학의 최전선에서는 왜 그토록 철학의 형이상학적 주제들과도 친숙한 얘기들을 꺼내는지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짐작할만한 것이다. 다중우주론, 인류지향원리, 신의 창조, 목적인의 출현 등등 이러한 것들은 거의 과학에서는 아직 가설일 뿐이지 이론의 자리에 들어설 수 없다. 학문을 탐구하는 이들 가운데는 자신이 탐구하는 학문적인 연구가 <가치중립적인 순수 탐구>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혹은 <과학>이란 학문을 순도 백퍼센트의 순수 사실에 대한 기록이지 자신의 <상상적 일반화>와는 전혀 무관한 것이라고 은연중에 여기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인간이 전지전능한 신적 존재가 아닌 한에 있어 우리의 경험은 언제나 제약된 경험일 수밖에 없고 인간의 측정 범주는 항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과학이 발달한다고 해도 과학의 측정 범주를 넘어서는 지점은 항상 우리의 인지 속에 알게모르게 개입되어진다는 것이며 이것은 자신도 모르는 편향을 낳기도 한다는 것이다. 최근 읽은 <편향-나도 모르게 빠지는 생각의 함정>(이남석, 옥당)이라는 책을 보더라도 편향에 대한 실로 매우 다양한 경험 사례들이 나온다.

우리는 어느 누구 예외 없이 참으로 <편향>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쿨하게 인정하는 가운데 이를 극복하기 위한 온갖 시도로서의 학문적 탐구를 경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학문의 순수성과 가치중립을 부르짖긴 하나 현실에서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바램과 전체의 이상일 뿐이다. 어떤 고고한 도인이나 성인 혹은 유명 과학자라고 하더라도, (물론 그 자신은 볼멘 소리로 세속을 떠난 순수 절대 자유를 추구한다고 부르짖긴 하지만), 그가 지닌 입장(立場) 역시 여러 다양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맥락 속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최근 나온
<경제학은 과학을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대한 사례도 여러 사례들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무(無) 속에 떠도는 자족적 사태란 불가능한 것이다”. 어떤 특정한 경우라도 필연적으로 그것은 세계와 관계되어져 있다. 그러한 관련성의 통합적 전망을 내다볼 수 있는 자각을 인간으로서 확보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이미 세계 속에 놓여 있는 존재가 어찌 세계를 객관화할 수 있겠는가. 바로 그렇기에 그 같은 한계를 알고서 추구하는 그러한 형이상학에 대한 부단한 시도야말로 진정한 의미가 있다는 얘기다. 그럼으로써 형이상학은 궁극적 지평의 사유의 온갖 실험들이 난무하는 장(場)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왜 세계는 존재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논의들은 결국 형이상학에까지 이를 수 밖에 없다. 


관계론적인 철학 패러다임에서 볼 때, 뉴턴 물리학의 절대 시공간 좌표는 그야말로 파편화된 추상에 해당할 뿐이다. 하지만 근대인들은 수백 년 동안 이를 아무 의심없는 사실로서 전제해왔었다. 오늘날에도 데카르트-뉴턴 패러다임을 암암리에 받아들이고 있는 이들은 여전히 많은 것 같다. 존재를 개체 분리적으로 이해하고 타자를 객체화하는 것을 매우 당연한 듯이 받아들이기도 하는 것이다.

 

철학적 훈련이란, 자신의 사유방식(Modes of Thought)의 칼날을 더욱 날카롭고 예리하게 다듬는 작업에 다름 아니다. 저도 모르게 이 세계를 해석하고 있는 나름대로의 준거틀은 작동되고 있으면서도 이를 부지불식간에 완전무결한 전제로서 깔고 있다면 이는 그야말로 무지몽매한 것으로 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알다시피 철학사에서 관념론이냐 유물론이냐 물활론이냐 혹은 실재론이냐 반실재론이냐 등등 이러한 논의들은 사유의 궁극적 일반성에 대한 논의들이며, 이는 우리가 수행하는 여러 인지들 중에서도 가장 생각의 기초를 형성하고 있는 가장 심층적인 인지 영역에 속한다.


예컨대, <유물론> 혹은 <물리주의>라는 입장도 궁극적으로는 철학적 입장에 속할 뿐이지
그 자체가 곧바로 정당성을 확보하는 입장인 것도 결코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몇몇 과학주의자들은 유물론이나 물리주의 입장을 마치 당연한 사실인 양 전제하기도 하는데
알고 보면 이것은 그야말로 별로 과학적이지도 못한 태도이며, 되려 반합리적인 처사에 속할 따름이다.
자칫 과학도 독단적인 종교화로 전락될 수 있다는 위험성도 올곧게 고찰될 필요가 있겠다.

철학의 역할은 직접으로 사실을 탐구하는 학문이라기보다 오히려 그러한 사실 탐구에 암암리에 관여될 수 있는 사유의 추상에 대한 엄격한 실험과 비판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는 데에 있다. 그런 점에서 철학은 가장 뿌리 깊은 무의식층의 인지 교정 작업에 속한다. 인지과학연구소 교수이자 철학자인 죠지 레이코프와 마크 존슨이 철학(형이상학)을 <무의식적 인지>unconsciousness cognition라고 부른 이유도 결코 이와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철학적 훈련을 쌓는 것과 철학을 훈련을 쌓지 않는 것의 차이는 크다고 여겨진다.


철학은 실용적 목적을 직접적으로 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온갖 다양한 삶의 기반이 될 수 있는 생각의 기초를 터놓는 작업에 속한다. 그리고 그것이 여러 다양한 학문들(물론 예술, 종교 영역까지 포함해)의 밑변에 자리한 사유의 전제를 탐색하도록 돕는 것이다.


그럴 경우 철학적 훈련을 위해서는 자기 안에 자동화되고 습관화된 개별 경험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도록 온갖 사유의 실험들이 감행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저마다 각자의 경험들이 있을 테지만, 철학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경험과 반대되는 경험까지도 찾아서 합리적으로 고찰되어야만 한다.


행여라도 “당신은 그런 경험을 해보질 못해서 모르는 것이야”라는 말로서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하려 한다거나 상대의 비판과 반론을 무마하려 드는 것은 오히려 그 반대의 경험을 했던 상대방의 경험 세계를 배제하거나 무시하게 되는 전적인 독단적 처사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주로 이상한 종교 교주들이 자신의 고고한  체험을 정당화할 때 내뱉는 수법이자 주장이기도 하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기본적으로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경험과 함께 반대되는 온갖 다양한 경험들도 통합적으로 포섭해내서 이를 일관된 정합적 관점에서 설명해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체험주의>와 <경험주의>를 잘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흥미롭게도 아직까지도 이를 잘 구분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는 것 같다. <체험주의>는 되려 주관주의적인 유아론에도 빠질 수 있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진정한 <경험주의자>라면 나의 경험뿐만이 아니라 그와 반대되는 세계 안의 온갖 다양한 경험들도 경험의 자료로서 설득력 있게 포섭해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사유의 예리한 상상력의 비행>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 다시 세계 안의 다양한 경험 사례들에 견줘 볼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결국 온갖 학설들의 레이스와 경합들은 결국 온갖 다양한 경험들에 대한 <설명력 확보 싸움>에 다름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합리주의의 모험은 끝이 없는 영속적 과정으로서의 모험이다. 화이트헤드는 <합리주의적 경험론자>였다. 그는 합리주의에 대한 신념과 이상은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합리주의는 결코 완전하게 도달할 수 없는 이상과 희망으로서 함께 할 뿐이며 그 과정에서 부분적으로만 성취할 따름이다. 만에 하나 합리주의에 대한 가능성 자체마저도 부정된다면 그것 역시 문제가 되는데, 왜냐하면 이는 과학적 탐구의 동기마저도 거세되어지기 때문이다. 합리주의 가능성 마저도 없다면, 우리는 학문을 탐구할 이유가 없으며, 기껏해야 그것은 자기밥그릇 정당성에 머물뿐, 결코 그 이상으로 나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상대주의라는 우물에 빠져 그저 허우적대기만 할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절대주의>와 <상대주의>라는 두 가지 입장 모두 다 지혜롭게 극복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


다음번엔 이번 대전 강좌 때 뜻밖에 논란이 되기도 했던 <물질성>과 <정신성> 혹은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물질의 꿈>이라고 표현되는 사안에 대해서 언급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 ?
    김제원 2013.07.01 17:40
    백두하면 어렵다더라만 떠올리곤 했는데, 이렇게 풀어주시니 백두님이 이해될것만 같네요.
    매번 잘 보고 있습니다.

    철학이 과학의 첨단에서 상상적 일반화로 새로운 합리적인 가설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과학작가 철학이란 도구로 그렇게 해야한다는 것인지요?
    아니면, 실제로 철학자가 과학의 첨단에 서서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인지요?

    (후자의 경우는 본 적도 없고, 현실적으로도 어렵지 않을까 해서요...)
  • ?
    엄준호 2013.07.01 17:40
    좋은 글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번주 강의를 기대하겠습니다^^
  • ?
    김제원 2013.07.01 17:40
    과학작가 -> 과학자가 (오타네요^^)

    상세한 답변 감사드립니다.

    백두 철학의 매력에 점점 끌립니다. 뼈 없는 닭갈비처럼 뭐 버릴게 없네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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