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눈물 - 배우 김명민의 눈물

by 김용전 posted Oct 27,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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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배우 김명민이 20킬로그램의 체중을 감량하며 찍은 영화 ‘내 사랑 내 곁에’가 개봉되었다는 보도를 많이 접한다. 인터뷰 내용을 보니 김명민은 그런 초감량을 단 기간에 해 내면서 ‘이대로 자면 내일 아침에는 꼭 죽을 것만 같다’는 느낌을 열 번 씩이나 경험했다고 한다. 그렇게 배우 자신이 캐릭터 창조를 극한까지 밀어붙여서 철저하게 극중 인물로 변하는 연기를 ‘메소드(method) 연기’라고 하는데 이미 2005년에 크리스찬 베일이 영화 ‘머시니스트’의 주인공 캐릭터를 소화하기 위해 30킬로그램의 감량을 단행한 바 있다. 그러나 사실상 ‘메소드 연기’는 체중 감량을 하는 외면적 변신보다도 내면의 변신을 위주로 하는 것이다. 영화 ‘대부’에서의 말론 브란도나 ‘데드 맨 워킹’에서의 숀 펜 등이 그런 경우들인데 하나 같이 배우의 연기력만으로 완벽하게 주인공의 캐릭터를 재현해내고 있다. 분장이나 감량 등도 중요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배우가 영화 속에서 그 주인공으로 완전히 변신해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의 우리는 지나치게 ‘보이는 것에 매달리는 경향’이 있다. 요즘 세상이 너나없이, 남녀구분 없이, 또 나이 구분 없이 다이어트 열풍과 성형 열풍에 휩싸여 있는 것도 어찌 보면 ‘보이는 것에 매달리는 시대 조류’와 무관하지는 않다고 본다. 그러다 보니 메소드 연기에 있어서도 놀랄 정도의 감량이 먼저 화제가 된다. 혼신의 힘을 다하는 내면의 연기보다 자칫 눈에 보이는 감량이 메소드 연기의 잣대가 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이다.


물론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는 말처럼 외양도 중요하다. 그러나 내면은 더욱 중요하다. 배우 김명민을 생각하면 올해 초에 방영되었던 한 방송에서의 특집 ‘김명민은 거기에 없었다’를 잊을 수가 없다. ‘베토벤 바이러스’를 막 마치고 나서 ‘내 사랑 내 곁에’ 촬영을 시작한 시점에 제작된 것인데 배우 김명민의 연기 세계와 그가 살아온 길을 조명하는 프로였다. 필자는 그 방송을 보다가 한 대목에서 나도 모르는 전율을 느꼈다.


김명민이 탤런트로 데뷔해서 무명으로 시간을 보내던 6년여의 시절을 이야기하는 대목이었다. 탤런트가 되고 나서 배역을 얻고자 하루도 빠지지 않고 감독이나 PD를 찾아다니면서 ‘김명민입니다. 잘 부탁합니다.’라고 인사를 했는데 아주 조그만 단역조차도 잘 돌아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던 중 한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 제의가 들어왔는데 얼마나 기뻤는지 의상실에 가서 무려 두 시간을 들여서 배역에 맞는 옷을 고른 뒤 촬영장으로 갔다. 그런데 감독이 그를 스윽 보고는 ‘아 자네.... 그 배역이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어!’하고는 다시 돌아보지도 않더라는 것이다. 이 대목을 회상하면서 갑자기 김명민이 눈물을 흘린 것이다. 상당히 침착하게 과거를 이야기하던 중이라 자신도 모르게 흘린 눈물에 스스로도 어색하고 놀란 듯 ‘어? 내가 왜 이러지?’라며 당황해 했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필자는 그 눈물을 보면서 ‘저것이 바로 김명민 표 메소드 연기의 원천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메소드 연기의 대표 배우라고 칭송받고 있지만 결코 처음부터 그가 그랬던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런 굴욕감을 느낄 정도의, 어찌 보면 배우로서 치욕스런 극한까지를 경험하면서, 오히려 연기에 영혼을 불어넣는 집념과 정신이 생긴 것이라고 본다. 그런 무명의 설움을 견디다 못해 ‘나는 배우 자질이 없나 보다’라고 포기하고 뉴질랜드로 이민을 가려고 수속을 다 밟은 상태에서 ‘불멸의 이순신’ 주인공 제의가 들어온다. 여러분들은 기억하는가? 이순신이 노량 해전 출정을 앞두고 병사들에게 외치던 그 목소리를. ‘살려고 하는 자는 죽을 것이요, 죽으려고 하는 자는 살 것이다(必生卽死 必死卽生)!’


이순신 장군이 외친 그 소리는 그야말로 배우로서 김명민이 자신의 연기를 위하여 외치는 내면의 소리와 일치되는 것이다. 밑바닥의 극한을 경험한 그로서는 정말 죽을 각오로 연기를 하는 것이다. 그러자 그 대사 그대로 그는 완전히 살아났고 이제는 메소드 연기의 대표 배우가 되었다. 그야말로 작품 속에 주인공은 있지만 ‘김명민은 없는 것’이다. 나는 그의 연기력보다도 젊은 나이에 도달한 그 정신세계가 놀랍게 느껴졌다.


그 이후, 나는 배우 김명민을 생각하면서, 과연 나도 작가로서 필사즉생의 정신으로 글을 쓰고 있는가를 반성하곤 한다. 필자가 죽어야 글은 살아나는 것이다. 셀러를 먼저 생각하고, 인기를 먼저 생각하면 글은 기교가 되어 버린다. 마찬가지로 ‘메소드 연기’는 배우의 것만이 아니다. 직장을 다니든, 사업을 하든, 예술을 하든, 가게를 하든 필사즉생의 자세로 집중하면 성공하지 못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세상에 누워 떡 먹듯 이루어진 성공이 어디 있을까? 남자들이여, 자신의 역할에 몰입하자! 내가 맡은 일을 하는 순간만큼은 나를 죽이고 그 역할에 완전히 빠져 들 때 성공은 찾아 올 것이다. 그리고 나서는 힘들었던 과거를 당당하게 회상해보자. 그러면 그 때 자신도 모르게 ‘내가 왜 이러지?’라면 진한 눈물이 저절로 흐를 것이다.

'행복한 동행' 11월호 게재

** 무엇이 그리 바쁜지 정말 오랜만에 들어와 보는군요. 올해는 '아버지'에 관한 
책을 내기 위해서 작업을 했는데 출판사와의 착오가 생겨서 출간을 못했습니다. 

 출판사 두 곳에서 책 작업 제의가 왔었는데 거절하고 쉬고 있습니다. 올해 초에
'샘터'와 '행복한 동행' 두 곳에서 고정 칼럼을 써달라고 해서 그 글쓰기에 집중
했습니다.  위 글은 '행복한 동행'에 쓰는 글 중에 11월호 분입니다. 계속 연재를 한다 그러니까 나중에 책 한 권으로 묶을 예정입니다.  

 그리고 KBS 1 라디오(97.3 MHZ) '성공예감' 이라는 프로에서 고정 출연 제의가
와서 내일 첫 방송이 나갑니다. 매주 수요일 아침 8시 50분부터 10분간 '직장인
성공학'이라는 코너에 나갑니다. 산골에 있어도 전화로 인터뷰가 가능하니까
그런 점은 좋군요. 많은 청취 바랍니다.

 백북스 클럽 여러분들의 건강과 행운을 항상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