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감독들과 함께 한 8시간

by 전광준 posted May 19, 2009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워낭소리'와 '똥파리'의 잇단 대성공에도 불구하고 독립영화는 여전히 우울하다. 워낭소리 제작자와 똥파리 감독은 흥행 이후 여기저기서 곤란한 일을 많이 당해 극도로 언행에 신중을 보이거나 잠행 중이다.

인간사가 그렇다. 너무 못난 이유로 심지어 너무 잘난 이유로도 서글퍼지는 존재다. 마치 자신은 영원히 사는 존재인냥 누군가가 누군가를 슬프게 만드는, 참 '코믹한 촌극'스럽게 인생을 산다. 대체 세상 얼마나 살겠다고 그럴까.

독립영화 두 편이 흥행해서 서로 질투인거다. 기뻐하고 고무되어야 마땅한 독립영화계는 그래서 더욱 우울하다.

오월의 신록도 제법 짙어지기 시작한 봄의 끝자락에 인디피크닉이 열리는 KAIST를 찾았다. 현장에는 네 명의 지역독립영화 감독들이 자원활동을 하고 있었다.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요, 자신들의 산더미 같은 할 일을 뒤에 두고 현장에 나와 일을 도와가며 오손도손 이야기하는 모습이 아직은 순전하여, 나 역시 자리를 뜨지 못했다.

결국 동료감독들이 하나 둘 나오더니 저녁 무렵 9명이 됐다. 누가 나오라고 재촉하지도 않았다. 나도 그들도 모두 제 발로 걸어왔다. 인디피크닉 첫날의 뒷정리를 함께 하고 어은동의 한 구석진 커피숍에서 밤12시까지 서로를 위로했다. 게중에 부산HD영화제와 인디포럼에 본선진출하여 대전을 잠시 떴던, 올해 대학졸업반인 여류감독은 자신의 연출작이 여느 경쟁작들보다 못하다는 자괴감에다, 졸업작품의 섭외가 잘 안돼 평소보다 말수가 줄었고, 고3짜리 최연소 감독은 믿었던 사람들에게 비판이 아닌 비난에 시달려 넋풀이를 그칠 줄 몰랐다. 

어제 눈 부시게 맑았던 낮 하늘 아래 잠시 그늘이 드리워졌던 내 의식의 한 공간은 밤이 되자 별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은 그들이지만, 나를 바라봐주던 그들의 따뜻한 눈은 암흑 속 별빛이 되어 주었다. 작년 12월초 겨울 밤하늘에 지구별 사람들에게 행복한 미소를 머금었던 초생달, 목성 그리고 금성의 조화가 아직은 우리 사이에 있었다. 주어진 생명에 해피엔딩이 있을 순 없지만, 지구별에 우리 잠시 함께 숨 쉬는 동안은 그러한 별빛 미소가 서로의 눈을 통해 들여다 볼 수 있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