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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흰눈이 왔어요!

by 김용전 posted Jan 25,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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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라는 선입견 때문에 눈이 많이 오면 서울에서 전화가 많이 온다. 특히 산간 마을이 폭설로 고립되었다는 뉴스가 나가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동촌리는 산간오지마을이지만 눈이 오면 군청에서 즉각 제설 작업을 해주어서 길 자체가 완전히 막히는 일은 거의 없다. 그리고 그렇게 춥지도 않다. 올 겨울 눈내린 동촌리를 찍어 봤다. (재작년 여름에는 폭우로 동촌리가 고립되었다는 자막 뉴스가 잘못 나가서 피서 숙박 예약을 했던 손님들의 문의전화로 마을 전체가 진땀을 뺐었다. 방송의 힘이란 정말.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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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우골 산방 마당에서 바라본 새우골 설경.
       장독대 너머 지붕이 보이는 집은 세철네집. 칠순 넘으신 어르신 내외분이 사신다. 우리집
       농사일은 전담해서 가르쳐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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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말쪽에서 바라본 파로호 설경.
      간밤 큰 눈에 놀랬는지 배가 뭍으로 올라왔다. 산으로 가시게? '구절양장이 물도곤 어려웨라'
      는 옛 시조도 있는데.... 서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삶의 기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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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촌리에는 파로호와 접한 축구장이 있다. 아직 잔듸 구장으로 조성이 되지 않았는데 물이 차
      오르자 수면에 뜬 축구장 처럼 보인다. 공을 차다가 물에 빠지면 어떻게 주워 올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여름에는 수면이 내려가서 축구장과 호수 사이에 공터가 생긴다. 수면에 첫사랑의
      추억처럼 아스라이 물안개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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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좌골에서 바라본 파로호 설경. 호숫가에 있는 버드나무들이 물에 잠겼는데 가지에 눈이
      소복히 내려 앉자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 연출되었다. 더구나 나무 그림자가 물에 비치니
      세상 모든 호흡이 멎은 듯 하다. 미워하지 말자. 사랑하며 살자. 화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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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회 총무 대배네 집이다. 굴뚝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솟으니 옛 시절이 생각난다. 아이들은
      눈을 뭉쳐 눈사람을 만들고, 어머니는 부엌에서 고구마를 삶으셨다. 방문을 열면 뜨끈뜨끈한
      구들바닥이 언 손들을 맞이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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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

속의 새우골 산방.
      새로 지은 집이라 아직 어딘지 낯설다. 생자필멸. 새우골 산방도 세월이 가면 주위 풍경과
      자연스레 어울릴 것이다. 적당히 낡아가면서 말이다. 아주 스스럼 없이 자연과 어울릴 때
      쯤 되면 저 밤나무 밑에 내 무덤이 자리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아내는 파파머리가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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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이 그쳐도 다니는 차 한 대, 사람 그림자도 없어 동촌리는 그야말로 눈 속에 외로이 있다.
        왕왕거리는 도시의 소음에 익숙했을 때는 이런 숨 막힐 듯한 정적이 답답하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이 고요함이 좋다. 도시는 너무 만원이다. 그러나, 그러나  돈은 그곳에서 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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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촌건강 장수마을 간판과 녹색 체험관 전경. 오른쪽 둥근 간판은 팜스테이 마을 간판이다.
      저 녹색 체험관 1층 대회의실에서 겨우내 부녀회원들의 사물놀이 연습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것이 고요하기만 한 풍경이다. 눈이 징소리, 북소리, 장구소리, 꽹과리 소
      리를 먹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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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말 종선네 밭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표고 하우스와 복사나무 설경. 저 나무는 봄이면
      분홍으로 흐드러진다. 그러나 그 때는 이상하게 감흥이 적다. 왜 그럴까? 밭일이 바쁠 때
      라 그렇다.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꽃도 보인다. 겨울엔 한가하기 때문에 감흥이 일어난다.

      도시사람과 시골 사람의 차이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비극의 출발. 시골 사람들이 흙을
      보며 일에 바쁠 때 도시 사람들은 꽃을 보며 감상에 바쁘다. 그래서 감정이 어긋난다. 이
      바쁠 때 유람이냐고 시골 마음이 불편할 때, 이 좋은 꽃도 감상할 줄 모르느냐고 도시 마음
      은 나무란다. 그러나 실은 둘 다 죄없다. 저마다의 삶이 다르기 때문에. 다만 한날 한시에
      같은 것을 느끼기가 어려울 뿐이다.

      이런 눈 덮인 날,  막걸리와 김치쪽에 삶은 고구마를 곁들여서 아랫목에 앉아 한 잔 기울이면
      그 때는 틀림없이 시골이고 도시고 모든 마음이 아름다운 감상에 젖어 들텐데. 아쉽다. 도시
      사람은 이 눈 속에는 시골로 길을 나서지 않는다. 그들은 꽃피는 봄과 잎과 더위 무성한 여름,
      그리고  단풍 붉은 가을을 기다릴 뿐이다. 세월이 흘러도 이 틈은 메워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