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2011.07.09 11:53

독서 노마드

조회 수 2053 추천 수 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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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 유목주의 또는 노마디즘이라는 말이 우리 주변에 자주 들린다. 노마드(nomad)는 ‘유목민’ 또는 ‘유랑자’를 뜻하는 용어로 프랑스의 철학자 들뢰즈(Gilles Deleuze)가 그의 저서 ‘차이와 반복’(1968)에서 사용하기 시작하여 현대 철학의 개념으로 자리 잡은 말이다. 노마디즘은 기존의 가치와 삶의 방식을 부정하고 미지의 세계로 옮겨 다니며 새로운 것을 찾아내고 만들어 가는 일체의 행동과 사고방식을 의미하며, 철학적 개념뿐만 아니라 현대사회의 문화·심리 현상을 설명하는 말로도 자주 쓰인다. 노마드란 공간적인 이동뿐 아니라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매달리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바꾸어 가는 창조적인 지적 활동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독서는 노마드의 대표적인 행동양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독서 노마드를 시작한 것은 2002년 6월부터이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까지만 해도 문학이니 철학이니 소위 교양필독서들을 제법 뒤적인 적이 있었지만, 대학을 졸업하고부터는 다른 분야의 책은 거의 읽지 않은 채 20여 년을 살아왔다. 직장을 다닐 때도 그랬고, 대학원에서 논문을 쓸 때도 그랬고, 교수가 되어서도 전공서적 읽기에 바빠 다른 분야의 책을 읽을 정신적 여유도 없었을뿐더러, 한 가지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이것저것 집적대는 것은 학자다운 태도가 아니라는 좋은 핑계를 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시작한 100권독서클럽(100books.kr)은 내게 새로운 시야를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대학생들에게 교양을 넓히고 문제해결 능력을 키워주기 위해, 교수들이 솔선수범하여 먼저 책을 읽고 학생들과 함께 토론하자고 시작한 터라 전공서적만을 고집할 수는 없었다. 경영학은 물론 역사, 철학, 예술, 건축, 문학, 의학, 과학 등 다양한 책을 선정해서 읽다 보니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그동안 전공영역에만 갇혀 있던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게다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모시고 토론을 거듭하는 동안 인적교류의 폭도 넓어졌다. 책을 통하면 생면부지의 사람도 쉽게 친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간관계는 결국 상호이해의 정도만큼 발전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실감한 것이다. 이때부터 독서는 문자텍스트만 읽는 것이 아니라는 새로운 사실도 발견하게 되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 것만큼 좋은 교과서도 없다. 인간을 읽는 것뿐만 아니라, 마음만 먹으면 세상이 다 텍스트다. 책을 읽다 보면 길가에 말없이 돋아난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가 말을 걸어온다. 밤하늘에 무심히 떠 있던 달과 별이 새로운 깨달음을 준다. 세상이 온통 책으로 덮여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독서의 편식에서 벗어나서 얻게 된 가장 큰 소득이 아닌가 한다. 어느 한 분야의 책만 읽지 않고 다양한 분야의 책을 고루 읽는 독서를 우리는 ‘균형독서’라고 부른다. 균형독서를 하면서 얻게 된 또 하나의 소득은 자신의 전공분야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어지고, 같은 이론도 새로운 시각에서 재해석하는 능력이 저절로 발달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타 학문분야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노마드 행각을 벌이다 보면 공부의 재미에 푹 빠지게 된다. 이를 일러 누구는 ‘호모쿵푸스’라 했던가. 새로운 고원을 넘을 때마다 언덕 너머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기대로 가슴이 설레고 새로운 세계에서 진탕 놀다가 지루해질 만하면, 미련 없이 앉았던 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나 다시 새로운 세계로 배낭을 메고 길을 떠난다.

다른 취미 활동은 나이가 들면 대부분 시들해지기 쉽고 육체가 따라주지 못해 계속하기가 힘들어지지만, 독서야말로 목숨이 붙어 있는 한 혼자서도 언제 어디서나 계속할 수 있는 최고의 지적유희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책 속에서 시공을 초월하여 다양한 인물들과 친구가 되어 대화를 나누게 되니 마음이 정화되고 정신수양이 된다. 그리고 지식이 축적이 되면 이야깃거리도 풍부해지고 서적을 집필함으로써 지식을 생산하는 단계로 발전하여 효용성도 매우 높은 활동이다. 독서 노마드만큼 확실한 노후대책이 또 뭐가 있을까? 난 그 대답이 얼른 생각나지 않는다.

2009.07.03
  • ?
    이지효 2011.07.09 11:53
    저도 학문의 편식을 범할까봐 늘 조마조마 했습니다. 하지만 백북스를 통해 비전공 분야에 대한 책도 읽고 공부도 하게 됨을 진심으로 감사하며 하루 하루를 보냅니다. 그리고 교수님 말씀처럼 독서를 통해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또 하나의 포기 할 수 없는 장점을 얻게 된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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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록 2011.07.09 11:53
    가장 확실한 노후대비책에 한표를 던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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