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2008.11.18 15:17

나는 왜 책을 읽는가?

조회 수 4920 추천 수 0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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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경 써모임에서 끄적였던 글을 이제야 타이핑해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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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책을 읽는 목적은 계속 바뀌어 왔고 앞으로도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딱히 독서라고 할만큼 책을 읽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금 생각나는 것은 주로 만화책들이다. 이정문의 공상과학만화, 백산의 무협만화, 정애리의 순정만화... 이런 것들이 생각난다. 내가 살던 시골마을에는 소문난 만화수집광 서너명이 있었는데 나도 그중의 하나였다.

 


내가 보유하고 있던 만화책이 가장 많을 때는 150권 가까이 되었다. 만화책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뿌듯한 물적 포만감도 있지만, 그 보다도 만화유통의 중심(HUB)으로 부각되어 새로 출판된 만화는 거의 내손을 거쳐가기 때문에 나는 항상 최신 만화의 출판동향을 저절로 파악하게 되고, 만화의 전문가 행세를 할 수 있다는 잇점이 있었다.


 

나는 만화를 밥먹는 일보다 즐겨했다. 내일 기말시험이 닥쳐도 새로운 만화가 입수되는 날은 밤을 꼬박 새워서라도 완독을 해야 직성이 풀릴 정도로 만화에 빠졌었다. 만화도 책으로 친다면, 이 당시 내가 책을 읽은 목적은 흥미와 호기심이 우선이었고, 그렇게 많은 만화를 읽으려고 욕심을 부린 이유는 친구들 사이에서 만화전문가로 인정을 받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한 마디로 잘난체 하려고 책을 읽었던 것이다.


 

어렸을 적에 독서라고 할만한 행위가 또 한 번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때 다리 수술을 하게 되어 학교 기숙사에서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서울에서 오신 선생님들이 살던 기숙사였는데, 체육선생님과 국어선생님과 같은 방을 쓰게 되었다. 통학을 하지 않고 기숙사에 있으니 여유시간이 상당히 많이 생겼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학교 도서관에 있는 책들을 빌려보기 시작했다. 이때 읽은 책들은 주로 괴테전집, 러시아문학전집, 일본문학전집, 미국문학전집 등 주로 세계문학 종류였다. 수업준비 이외에는 할 일이 없어서 열두권짜리 전집도 한 달만에 읽어버릴 정도로 저절로 속독을 하게 되었다. 같은 방을 쓰던 선생님들도 내가 독서를 많이 한다고 칭찬을 했고,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나를 본받으라고 이야기들을 하시는 바람에 독서광이라고 소문이 난 적도 있었다. 이때 내가 책을 읽은 목적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것이었다. 물론 친구들에게 세계문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뽐내는 재미도 있었다. 이때는 무협지도 엄청나게 읽었는데, 이는 내가 다리를 앓아서 자유롭게 운동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보상심리로 상상 속에서나마 경공술을 펼치고 장풍을 날리며 축지법을 쓰는 무협인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공업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나의 독서편력은 침체기를 맞는다. 전자공학과를 다니면서 전자회로를 암기하고 세운상가에서 전자부품을 사다가 납땜질을 하며 진공관과 트랜지스터로 라디오와 전축을 만드는 재미에 빠져 책을 멀리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고등학교 2학년 1학기까지 교과서 이외에 내가 사서 본 책이라고는 [전자회로집]과 [과학동아] 등 주로 전공관련 서적이나 잡지였고, 이따금 통기타 반주를 위해 [가요대전집]이나 [팝송백과]와 같은 노래책 몇 권을 사볼 뿐이었다. 2학년 2학기가 가까워 오자 대학입시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입시지옥에 빠져야 했다. 안현필 저 [기초오력일체], [영어실력기초], [기초영문법], [영어 삼위일체], 송성문의 [성문종합영어], 김열함의 [영어의 왕도], 홍성대 [공통수학의 정석], [수학I,II의 정석]...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한 입시서적들 뿐이었다. 이때 책은 내가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었고 가장 혐오스럽고 비참한 독서 시기였다.


 

독학을 하다시피 해서 겨우 대학에 입학은 했지만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나로서는 인문계 과목들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댓가로 공연한 지적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대학 초년에는 지적 열등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독서를 다시 시작했다. 이때는 주로 철학서적과 역사서적을 읽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교과서에 등장하는 유명 철학자들의 책은 닥치는대로 읽었다. 칸트나 니체의 난해한 책들을 대할 때면 나의 독해력에 많은 회의를 느끼기도 했지만 이때 독서는 나의 정체성을 찾고 인생관을 정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비록 처음에는 지적열등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독서를 시작했지만, 그제서야 독서의 참맛을 보게 되었다.


 

졸업이 가까워지면서 나는 다시 독서침체기로 접어 들었고, 이로부터 근 이십여년간 나에게 독서라고 할만한 것은 거의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취업을 해서 유학을 가기 위해 아침저녁으로 영어학원에 다녔고 유학중에는 전공공부에 매달릴 수 밖에 없었고 대학 교수가 되고 나서도 전공서적에서 한 발치도 벗어나지 못한 채 십수년을 보냈다.


 

잃어버린 20년을 메우기 위한 나의 독서인생은 2002년6월 경영학과 현영석 교수님과 함께 100권독서클럽을 결성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때는 책을 읽는 목적이,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취미생활도 아니요, 잘난체 하기 위함도 아니요, 먹고살기 위함도 아니요, 지적열등감에서 벗어나기 위함도 아니요, 생존을 위한 수단도 아니었다. 비로서 순수한 목적을 가지고 책을 책으로 대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전공과 상관없는 자연과학 서적이나 역사서, 인문철학 책들은 내 삶을 돌아보고 생각을 정리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하루하루 깨달음을 얻는 재미를 선사했다. 공감능력이 향상되고, 삶의 태도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성격조차 바뀌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세상을 관조하는 통찰력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제 내게 독서는 매일 먹는 밥과 같은 일상이 되었고 항상 마시고 사는 공기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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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석범 2008.11.18 15:17
    교수님 글 잘 읽었습니다. 백북스 가입한 후 책을 읽는다는 것의 의미와 힘에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을 때는 다른 여러 분야의 책읽기가 나름 의미가 있다고 보고 열심히 읽게 되는데, 문제는 같이 읽을 때인데, 예를 들면 직장등에서 책을 권할 때 가장 큰 고민은 어떤 이유에서 책을 읽어야 하는 지 자신이 없습니다. 이런 고민들 때문에 우리 병원의 도서관장으로서 더 진전을 못하고 있습니다.
    책읽는다는 것이 그냥,실전에 도움이 되니까, 그런 것도 아닌 것 같고. 삶의 의미을 깨닫게 될 것야, 그건 너무 추상적인 것 같고. 아는 것을 넓혀 줄것이야. 이건 말그대로 폼잡기 위해 읽는 행위 같습니다.
    그래서, 100권 독서 클럽을 창설할 때 이야기를 더 듣고 싶습니다. 만들었던 분들이 더 많은 고민을 했을 것 같고, 그 내용이 독서 운동을 계획하는 데 많으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책은 균형있게 읽어야 하는 생각에 도달했는 지도 개인적으로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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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주현 2008.11.18 15:17
    고석범 회원님. 강신철교수님께서 방송 등에서 말씀하신 내용 등을 참고해 1년 전, 정리했습니다. 이 글도 참고하시고 교수님의 말씀을 들으면 더 좋으실 것 같습니다. http://ublog.sbs.co.kr/love84?targetBlog=52078

    교수님. 저는 요즘 살기위해서 책을 읽고 있습니다. 삼일회계법인에 보낼 경영경제 책 10권 오늘 마감했습니다. 뿌듯합니다. 저도 많은 독서과정을 통해 훗날 교수님과 같은 진정한 독서인으로 거듭나고 싶습니다. 교수님의 진솔한 독서에 대한 삶의 이야기 너무 아름답습니다.

    비로서 순수한 목적을 가지고 책을 책으로 대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전공과 상관없는 자연과학 서적이나 역사서, 인문철학 책들은 내 삶을 돌아보고 생각을 정리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하루하루 깨달음을 얻는 재미를 선사했다. 공감능력이 향상되고, 삶의 태도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성격조차 바뀌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세상을 관조하는 통찰력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제 내게 독서는 매일 먹는 밥과 같은 일상이 되었고 항상 마시고 사는 공기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오늘 작업한 책 중 '탁상공론이 아니라, 체험이야 말로 최대의 노하우'라는 글귀가 생각납니다.
    역시 체험한 것에는 설득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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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석범 2008.11.18 15:17
    김주현 회원님 감사합니다. 정독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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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희 2008.11.18 15:17
    1960-1970년대 일인당 국민소득 변화를 참고하면, 아이들에게 주어진 열악한 독서환경이 어쩌면 당연하지요. 전쟁후 겨우 십년 십몇년 지난셈이니까.. 휴.. 몇개만 뽑아봐도
    1970년: 249달러 1974년: 540달러 1976년: 799달러
    저도 어렸을때 만화방에 아이들이 바글바글 하던 기억납니다. 그때는 읽을 수 있는 종이자체가 별로 없었어요. 초딩때 어머니가 사주신 계몽사백과사전과 인상파 화집을 마르고 닳도록 보았는데, 책이 너덜너덜해지면, 요즘의 가전제품처럼 A/S를 받을 수 있던 그런 시대였지요.
    강교수님은 시대상황을 감안하면, 독서 많이 하신 셈인데요. 만화책 150권을 소장하셨다니, 중학교때 읽으셨다던 책들도 대단하고, 고등학교때 영어책도 많이 보셨네요.
    북콘서트에서 이야기 듣고, 책은 많지만 읽지 않는 요즘 대학생들을 위해서 백권읽기 운동 시작하신 거에 깊은 감동 받았습니다. 6년동안, 사람이 오던 안오던, 모이던 안모이던, 꾸준히해오신 거 존경합니다. 비가 억수같이 퍼붓던 날, 정말 아무도 안와서 토론자와 둘이서 토론했던 이야기, 토론자가 펑크낸 날 이후 (그 토론자 분은 집에서 주무시고 계셨다는...^^;; + ㅠㅠ)로는 토론자가 안올경우에 대비해서 책을 다 읽고와서 언제나 토론자 대타를 뛸 준비를 하셨다는 이야기, 지금이야 재미있는 에피소드지만, 참 난감한 상황들이고 보통 이들이면 이거 해야되나 말아야 되나 했을 상황들이었을 텐데요.
    한결같은 마음으로 백북스 해주신거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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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영택 2008.11.18 15:17
    저는 지금도 만화책을 무척 좋아합니다.
    강교수님도 만화책을 좋아하셨다니 무척 반갑네요^^
    백북스로 시작된 새로운 독서인생..
    이 모임에 대한 의미가 남 다를것 같습니다.
    강교수님에게는 백북스가 자식같고 또는 부모같은 곳이 아닐까하는
    상상을 해봅니다.
    포근하고 따뜻하고 때로는 매섭기도 하고..
    아득한 사랑으로 백북스를 가꾸고 지켜오신 그 마음에
    고개숙여집니다.
    고맙습니다.
  • ?
    윤현식 2008.11.18 15:17
    전에 경영경제모임에서 설명들었을때와 같은 느낌입니다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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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영석 2008.11.18 15:17
    보이지 않고, 알지 못하면 한 발자국도 나갈수 없다. 아는 것이 힘이다. 알아야 보인다. 보여야 관리/경영/대응 할수 있다. 책을 읽어야 알 수 있다. 알게하는 책이 진정한 책이다. 알게하는 책을 써야 한다.

    요즘 이런 생각이 많이 듭니다.
  • ?
    김영이 2008.11.18 15:17
    강교수님 이런 사연이 있었군요 강교수님 너무 좋아요 제가 완전 존경합니다
  • ?
    김미경 2008.11.18 15:17
    ""독서는 매일 먹는 밥과 같은 일상이 되었고 항상 마시고 사는 공기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

    너무 부러운 이야기네요...
    저는 요즘 들어서야 겨우 책을 읽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는데.....
    '왜 내가 책을 읽으려 하는지'에 대해 그 목적을 찾을 수가 없어서
    생각이 많았답니다..
    교수님의 말씀을 보고나니 힘이 나네요...
    감사합니다..
  • ?
    임석희 2008.11.18 15:17
    나는 왜 책을 읽는가.. .... 잠시 생각해보니, "알고 싶어서" 라는게 제일 먼저 떠오르네요.
    sonething 무언가를 왜 알고 싶은걸까....?
    오늘 밤 좀 더 깊숙히 생각해 봐야 겠습니다.
    생각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 ?
    신경상 2008.11.18 15:17
    먼가를 해야만 되고 정체되 있는것이 못 견디겠어서 책을 읽기 시작한지 2년남짓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 백북스클럽에 대해서 듣고 홈피만 들어오고 있는데 요즘 제가 고민하고
    있는 많은것들에 대해서 얘기해 주는것 같아서 감사합니다. 교수님의 말씀은 너무 맘에
    와 닿네요. 책을 읽으면서 가끔 글짜가 아닌 세상이 그려지는 느낌이 들때 희열이 생기는데
    그런것이 신기루가 아닌 일상이 될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해주어서 감사합니다
  • ?
    강혜정 2008.11.18 15:17
    전 요즘 허영으로 지식을 쌓아선 안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서 백북스를 제 삶의 어느 정도까지 들어오게 할까 고민도 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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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록 2008.11.18 15:17
    어렸을 때는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그냥 읽었던 책도 많았고, 단어의 정확한 의미도 몰르고 읽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 ?
    조태윤 2008.11.18 15:17
    간접경험 아닐까요? 직접적으로 경험하기엔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잘 차려진 책을 고를 줄 아는 능력만 있으면 본인이 원하는 경험을 짧지만 정말 긴 시간 걸리지 않고 지름길로 훌륭한 나만의 여행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거기다 자기과 공감가는 글귀라도 보는 날엔 참 행복해지죠... 그러면서 또 다른 여행을 계획하고...ㅎㅎ
    전 요즘 우주로 여행을 하고 있읍니다. 우주의 모든 것을 알고 싶다라는 허황된 꿈 ?을 꾸고 있죠. 언제 또 다른 꿈을 꿀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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