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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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24 17:24

편지.

조회 수 5050 추천 수 0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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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엄마가 질투를 했을 만큼 나와 아버지는 특별했다. 아버지와 가까웠음을 특별했다는 말 밖에 표현하기가 어렵다. 아버지께서 출근하시기 전, 나는 아버지에게 쪽지를 썼다. 정확한 문구가 생각나지는 않지만 대부분이 먹고 싶은 과자였던 것 같다. 쪽지를 잘 접어 아버지 담배의 바깥포장인 비닐 사이에 넣어두면 아버지께서는 항상 그 과자들과 함께 집에 돌아오셨다.


 


그 쪽지 이후 내가 아버지에게 쓴 편지는 2004년 여름, 처음으로 한달 동안 가족들과 떨어져 있을 때 쓴 것이었다. 대학교 4학년 여름방학, 한 달여 동안 미국에 머물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 아버지에게 고맙다는 내용과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면서 한 생각들을 썼다. 그리고 건축경기의 불황으로 인한 고생과 힘든 시간, 이제는 다 지나갔다고, 누구보다 바르게 튼튼한 집을 지으며 살아오신 아버지게 드리는 용기와 희망을 표현하고 싶었다.


 


난 아버지께 많이 맞고 자랐다. 잘못한 일이 있을 때는 어김없이 회초리를 들으셨고, 난 울면서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었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내 결심에 한번도 반대한 적이 없으셨다. 아니 딱 한번 있었다. 졸업을 앞두고 대학원 진학을 하겠다고 했을 때였다. 그것도 지금 생각해 보면 반대가 아니라 우려였던 것 같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고가 되기 위해 공부에 매진할 수 있겠느냐고 다짐을 받으시고는 어느 때 보다 날 자랑스럽게 생각해 주셨다.


 


학교 생활을 계속 했더라면 3년이 지난 지금은 졸업하고서 새로운 회사를 찾았거나 학교생활을 더 하고 있거나 둘 중 한가지 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난 회사생활 2년 차를 넘어섰다. 대학원 생활을 시작할 시기에 아버지께서는 담도 암이라는 큰 병을 발견하게 되셨고, 난 왠지 모를 자책감에 공부를 더 할 수 없었다. 아버지께는 비밀로 하고 휴학 계를 내고 취업을 하였다. 내가 첫 출근을 하기 전 아버지는 두 번의 고비를 넘기시고 첫 출근을 하던 날, 전화 목소리를 들려주셨다. 아침에 왜 들르지 않았느냐고, 밥은 먹었냐고…… 그리고 일주일을 더 기다려 주시고 눈을 감으셨다.

 

누구에게든 슬럼프라는 것이 있다. 현재 나에게 주어진 상황을 진행시키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맴도는 듯한 어려움. 그런 때가 올 때 난 아버지에게서 힘을 얻는다. 지금이 해결될 것 같지 않아도, 내가 넘기엔 너무나 큰 산인 듯 해도 언제나 나를 믿어 주시고 용기를 주셨던 아버지께서 마음속에 계시기에 난 오늘도 다시 시작한다.

 

아빠!

몇 해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아빠를 찾아가는 일이 뜸해지네요. 미안해요.

기쁘고 좋은 일 보다는 힘든 일에 아빠를 더 많이 찾네요. 미안해요.

힘들었어요. 열정이라고 생각하고 했던 일들이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어줍잖은 생각들에 하찮게 느껴짐에……

오늘따라 귓가에 맴도네요.

우리 큰딸! 그래, 한번 해봐!

다시 해 볼게요. 아빠.

불러보고 싶었어요. 아빠.

고마워요. 아빠.

Who's 이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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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느것도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단지 이해의 대상이 될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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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나리 2008.04.24 17:24
    찌~잉!
    가슴이 애잔해지기도 하고 다시 시작한다는 그 말처럼 최선을 다해 살고있는 소연이가 대견스럽기도 하고..
    슬럼프는 아무한테나 찾아오는게 아니래요~ 그것을 열심히 살아온 증거
    힘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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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원 2008.04.24 17:24
    슬럼프를 이미 극복했길 바랍니다.
  • ?
    김찬현 2008.04.24 17:24
    가슴이 징해집니다.. 슬럼프 멋지게 극복하셨으리라 믿습니다.
  • ?
    박제윤 2008.04.24 17:24
    슬럼프, 우울감 이런 것들이 우리를 찾아오면 아주 힘들어 하게 되지요. 그런데 이런 것들은 아무에게나 오지 않습니다. 가장 고등동물인 인간에게만 오며, 인간들 중에서도 열정을 가진 사람들에게 특히 많이 옵니다. 그런 감정이 생존에 유리함이 있어 자연의 선택을 받았겠지요.
    슬럼프에 빠져 우울해하는 사람들이여, 그대들은 열정이 있는 이들이고, 꿈이 큰 사람들입니다. 그 기대가 크기에 지금 하는 일이 작아보이는 것이지요. 그래서 힘들어 하기에 노력을 하는 것이고, 마침내 그 힘겨운 날들이 모여 그대의 큰 모습을 보여줄 것입니다.
    이럴 때는 여유를 가지고 소리 없이 미소지어 봅시다. ㅎㅎㅎ
    - 역시 힘들어하며 지내는 사람이 -
  • ?
    이소연 2008.04.24 17:24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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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혜로 2008.04.24 17:24
    소연씨, 보고싶어요~^^* 한동안 본 뵌듯.
  • ?
    이호준 2008.04.24 17:24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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