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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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여인은 혼자서 전 세계를 걸어서 여행하고 여행기를 쓴다. 도보여행가 김남희씨는 전세보증금을 빼어 전 세계 50여 개국을 돌아다녔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기행문을 써서 책을 내고 그 책의 수익금으로 또 여행을 한다. 정말 멋진 일이다. 여자의 몸으로도 많은 위험이 있는 각국을 돌아다녔는데, 나는 무엇 하나 제대로 저지르지 못하고 남과 비슷한 삶을 살아간다.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비슷한 생활을 하며 타성에 젖어 살아간다.
 
송광사의 여름 수련회에 다녀 온 적이 있다. 들어가자마자 자동차 키와 지갑을 비롯한 모든 돈과 통신수단도 반납하고 승복으로 갈아입는다. 그 순간부터 며칠간은 무언의 수행으로 접어든다. 어느 누구하고도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밤 9시에 자고 새벽 3시에 일어나 예불과 108배를 한다. 그리고 하루 종일 강연 듣는 일과 참선이 반복된다. 하루 종일 앉아있는 일조차도 매우 고통스럽다. 참선시간에는 다리가 아파서 오직 다리 아프다는 생각 밖에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다. 그러나 누워있다고 편할 것 같은가? 꼼짝 말고 한 시간만 누워있어 보라고 또는 서 있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아무 것도 안하고 움직이지 않고 그 자세를 유지하는 일은 모두 쉬운 일이 아니다.
 
참선시간이든 강좌 듣는 시간이든 잠자는 시간이든 옆에 앉아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신분이 무엇인지 알 필요도 없고 물어볼 수도 없다. 식사는 철저하게 선방에서 하는 식으로 한다. 김치조각 하나 밥 한 톨도 남기면 안 된다. 삶이 단순화 된다. 기름진 음식은 거부반응이 날 것 같고, 아무리 미인이 유혹해도 별로 관심이 없을 것 같다. 시끄러운 세상이 아래쪽으로 내려다보이기 시작한다. 아 드디어 무욕의 경지를 얻었구나. 마지막 날에는 1080 배를 한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몇 시간 동안 납작 엎드렸다가 일어나기를 반복하다보면 무릎이 후들거리고 온몸은 땀에 젖는다. 나름대로 독한 맘먹고 시작한 사람들이 하나 둘 포기하기 시작하고 끝까지 해내는 사람은 반도 안 된다.
 
다시 세상으로 내려온다.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그러나 삶의 진흙 밭에서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면 선방에서의 생활이 그 생각이 잠시 누구에게 홀렸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주지스님은 당시에 가장 비싼 승용차인 그랜저를 타고 다니셨다. 많은 스님들이 TV를 원하는데 당시 큰 스님께서 결사반대를 하셔서 놓지 못한다고 들었다. 세상에 도를 깨달은 사람에게도 TV가 필요하다니. 구산스님의 제자였던 스님은 구산스님께서 말년에 고독감을 많이 느끼시는 것 같았다고 술회하였다. 스님들 간에도 수행방법론 등으로 서로 갈등이 느껴지는 대목도 있었다. 하긴 깨달음도 완벽하지 않을 것이다. 깨달음에도 차이가 있고 격이 있는 것 같다. 어차피 인간 세상에 발을 붙이고 살아야 하는 것이 인간이다.
 
내가 가정의 평화(?)를 위해 다니는 전원교회 목사님은 나이 오십이 다 되어 모든 사회생활을 접고, 목사 안수를 받으셨다. 지금은 시골의 작은 교회에서 10여 가정의 소규모의 신도들과 함께하며 목회생활을 열심히 한다. 정말 그 분의 기도와 영적인 헌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실제로 영적인 능력도 있으시다. 그러나 목사님 말씀대로 세상의 지식을 너무 많이 알아버린 나는 그 믿음이 신실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일 년에 교양서적 한권도 읽지 못하는 신도들에게 세상의 지식이 쓸모없다는 설교를 하시는 것을 듣거나, 항상 돈에 쫒기며 미래가 불안한 사람들에게 너무 경제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지 말라는 설교를 들으면 좀 비아냥거리고 싶어질 때도 있다. 나도 제발 제대로 믿기만 하면 돈 걱정, 집 걱정이 필요 없는 정의와 만능의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셨으면 좋겠다. 내 말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식의 얘기가 아니라, 혹시나 신앙의 이름으로 무식과 게으름 속으로 도망가지 말라는 의미이다. 어차피 신앙생활도 죄와 선, 현실적인 삶과 영적인 삶의 경계선의 날 위에서 계속해서 균형을 잡아가는 끝없는 고행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들은 산에 들어가 고독을 즐기며 지낸다. 쌀 한말을 지고 들어가 산사람이 되어 혼자 몇 개월씩 지내곤 한다. 어떤 사람들은 에팔레치아 산맥 종주등반을 한다. 6 개월 동안 3 천 킬로미터가 넘는 산길을 걷는다. 숲만 보며 오직 걷는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중도에 포기하고 내려오지만, 어떤 이들은 끝까지 해내고 반쯤 미치광이가 되어 돌아온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한적한 농촌에 들어가 소박한 전원생활을 즐긴다. 어떤 욕심도 부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실재로는 간단하지 않은 모양이다.
 
어떤 사람은 청량한 시인이 되고자 한다. 그리고 [폐허]와 [백조]의 동인들처럼 살아 보고자 한다. 이태백처럼 말술을 마시고 맑은 강물에 가서 빈 낚시대를 드리우고 싶어질 때가 있다.
 
“몽골바람에서 길을 찾다”라는 책을 낸 한성호씨는 7 년 동안 몽고에 거주 하면서 자동차, 도보, 자전거 등을 이용하여 몽고 각지를 유랑민처럼 돌아다녔다. 책을 읽다보면 목숨을 건 무모하고 치열한 여행의 고달픈 숨소리가 느껴진다.
 
나는 어떤 극단의 치열한 삶을 꿈꾸어볼까. 어쩌면 꿈만 꾸고 말 것이다. 이미 거미줄처럼 얽힌 생활과 인연의 끈들이 쉽게 나를 놓아주지는 않을 것이다. 이따금씩 솟아나는 아득한 조상, 유목민 시절의 DNA의 기억이 주체할 수 없는 힘으로 밀어낸다 할지라도 나는 끝내 도망가지 못할 것이다.
 
어차피 이제 세상에 숨을 곳은 없다.중국의 황사가 태백산 중턱의 산중이라고 피해갈리 없으며, 온난화의 비와 눈이 내리지 않은 골짜기도 없다. 아프리카 발 기아의 소식과 이라크 전쟁의 소식이 산속 깊은 곳까지 눈에 보이지 않은 전파로 날아다니며 은둔자의 깊은 휴식을 방해한다.
 
도망갈 생각일랑 하지 말라. 차라리 숨 막히는 현실에 땀 흘려가며 온몸으로 부딪혀라. 다시 말하지만 이제 세상에 숨을 곳은 없다. 그 곳이 남극의 얼음구덩이든, 설악의 바위 동굴이든, 막걸리 한잔의 낭만이 흐르는 전원주택이든, 수행자의 고독한 방이든, 숨을 곳은 더 이상 없다.
 
우리가 이 땅에 숨 쉬는 한, 전 지구적 원유 값의 급격한 상승과 기아 난민촌 아이들의 슬픈 동공과 온난화 시대의 후덥지근한 바람이 공과금청구서와 카드대금청구서, 휴대폰 미납영수증 등을 주렁주렁 걸치고 당신의 뒤를 졸졸 따라 다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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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록 2009.12.02 19:18
    이 세상은 씨줄 날줄같이 얽혀있고, 원인이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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