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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을 다시 만나다.

by 김홍섭 posted Nov 05,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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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게는 두 살 터울의 형이 있었다. 중학교 3학년때 형은 나의 곁을 떠나갔다. 그러나 백권 독서클럽을 통해 나는 다시 형을 만날 수 있었다.


 


  어려서 책을 좋아했던 형은 돈이 생기면 책을 샀고 시간이 나면 책만 보았다. 그래서 인지 주위에 친구들 보다는 책장에 책들만 가득했다.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했고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 반면 나는 책과는 담을 쌓고 친구들과 산으로 바다로 들로 열심히 뛰어다녔다. 참 서로 다른 패턴의 형제 였다. 형은 책은 물론 글로 쓰여있는 모든 것들을 다 좋아했다. 아버지께서는 신문을 구독하지 않으셨는데 신문이 보고 싶었던 형은 매일같이 옆집에 가서 하루가 지난 신문을 얻어다가 읽기도 했다. 책을 좋아해서 인지 공부도 잘했다. 집이 시골이어서 학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지만 고등학교에 들어 가서도 줄곧 일등만 했다. 부모님은 형을 자랑스럽게 생각 하셨고 많은 기대도 하고 계셨다. 그래서 인지 나에게는 공부하란 소리를 많이 안 하셨던 것 같다.

 

  난 공부대신 내가 하고 싶은 대로만 하고 살았다. 그 하고 싶은 것에는 창피하지만 독서는 없었다. 형은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었다. 보통의 사람들은 소설책들을 많이 읽는데 철학, 문학, 과학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책을 보았다. 그 중 철학책과 소설책을 주로 읽었던 것 같다. 정말 똑똑하고 아는 것이 많은 형이었다. 내가 뭘 물어보면 모르는 것이 없었다.

 

  이런 형이 고등학교 2학년 때 세상살이에 비관한 나머지 두꺼운 노트한권 분량의 글만 남기고 떠나갔다. 나는 형이 왜 떠나갔는지 이유는 알지 못한다. 주위에서는 우울증 때문이다. 철학에 너무 빠져서 그렇다.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다. 무튼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지만 난 아직도 이유를 모르겠다. 여기까지가 형의 이야기다.


 


  앞서 내가 형 이야기를 한 것은 이곳 백권 독서클럽에 와서 먼저 떠나간 형을 다시 만났기 때문이다.

 

  우리 클럽의 회원이신 이정환 사장님의 소개로 이 클럽을 알게 되었다. 학교에 강의를 하러 오셨다가 학생들에게 백권 독서클럽에 대해 소개해 주셨다. 그 때 나는 많은 자극을 받았고 그동안 책을 너무 많이 안 읽었구나 하는 생각에 반성도 하게 되었다. 공감은 했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같은 과 선배인 문경목회원이 그때 이정환 사장님의 이야기를 듣고 모임에 나가고 있었고 그걸 안 나도 혼자서 가기 뭐 했는데 잘 되었다 하면서 문경목 회원을 따라 이 클럽에 나오게 되었다. 이곳에 왔을 때의 처음 느낌은 “감동 그 자체” 였다. 내가 처음 이곳에 참석한 것은 산행이었고 산행 이후에 조용진 박사님의 ‘얼굴 한국인의 낯’ 강의를 들었다. 그때 처음 그 감동은 아직도 잊혀 지지가 않는다. 우선은 빠지지 않고 열심히 나왔다. 차츰 차츰 이곳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독서산방에서 호주 탐사팀들의 발표가 있을때 였다. 박문호 박사님께서 우리가 왜 시아노박테리아에 대해서 배우고 미토콘드리아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신 것이 생각이 난다. 바로 조상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것이라고... 학문에 있어 동기부여는 정말 중요한 사항 이다. 보통학교에서 강의를 들을때도 내가 왜 이 강의를 듣고 있지 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데 이 곳 백권 독서클럽은 달랐다. 학습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편식하지 않는 독서의 중요성 까지... 이런 것들에서 나는 많은 것들에 공감 하고 이 곳에 점점더 빠져들었다.

 

  나를 책으로 인도해 준 것이다. 정말 독서와는 친하지 않았던 아니 담을 쌓고 살았던 내가 어느 순간 책을 읽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면 너무나 신기하고 뿌듯하다. 취미도 음악감상에서 독서로 바뀌었다. 이제는 전에 형이 했던 것 처럼 돈이 생기면 책부터 산다. 어렸을적 형의 마음을 이제야 알 것 같다. 형이 그렇게 되고 아버지는 형이 보던 책들을 모두 태워 버리셨다. 내가 쭈구리고 앉아 다 태웠지만 그때는 잘 몰랐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 책이 너무 너무 아깝다. 너무 아깝다. 그 책들이 집에 남아 있었더라면 더 빨리 형을 만났을 텐데...

 

  형이 보고 싶다. 전에는 부모님보다 먼저 떠난 형이 너무나 미웠지만 이제는 형이 너무 보고 싶다. 내가 읽은 책도 같이 이야기 하고 싶고 또 형은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듣고도 싶다. 만약 형이 살아있었다면 같이 이 독서클럽에 나왔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도 해본다.


 


  나는 책으로 형을 다시 만났다. 아니 이 백권 독서클럽을 통해 형을 다시 만난 것이다. 실제로 형과 책 이야기를 나눌 수 는 없지만 새로운 나의 형들이 이곳 백권 독서클럽에 있다. 이곳은 나의 삶에 패턴을 180도 바꾸어 놓았고 책이라는 종교를 나에게 주었다. 이제 이곳을 떠날 수가 없다. 계속 이곳에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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