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2009.11.13 11:34

이해의 선물

조회 수 2465 추천 수 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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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모르겠지만, 4차 교육과정 중1 국어 교과서에는 이해의 선물이라는 단편소설이 실려 있었습니다. 주인공이 철모르던 유아시절 위그든씨의 사탕가게에 가서 조막만한 한 손으로 사탕을 집어들고 앙증맞은 다른 한 손으론 금박지로 싼 위조화폐? ㅎㅎ 를 위그든씨에게 내밀었을 때, 위그든씨는 어린아이가 혹시 상처라도 받을까 싶어 거스름돈까지 거슬러주었던 일을 어른이 된 주인공이 똑같은 일을 겪은 뒤 상기하면서, 위그든씨의 사려깊음을 되새기며 감동하는 줄거리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위그든씨 이야기와는 뜬금없는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우리 말에 열 번 잘해도 한 번 잘못하면 욕먹는다는 말이 있잖아요. 대부분의 자기계발이나 처세관련 책에서는 보통 사람들의 이러한 세태에 대하여 한 번 잘못은 입밖으로 내지 않는 대신 열 번 잘해준 것을 그 또는 그녀 앞에서 자주 표현해주라는 처세지침이 으레히 있죠.


 20대에 접했던 데일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은 나와 타인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며 관계에 대한 지침을 훌륭하게 조언해주었지만, 사회생활을 하거나 심지어 친분있거나 가족들 사이에서도 서로 부대끼다 보면 열 번 잘해준 것보다는 한 번 잘못한 것에 대해 감정을 표출할 때가 적잖이 있었고, 이런 때마다 실망스러웠던게 사실입니다. 왜 저 사람은 내가 잘해주었던게 많았는데도 이깟 잘못 하나 못 본 척 안해줄까, 나는 지가 잘못했던거 못 본 척 해주었는데.. 괘씸하네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죠. 잘못을 저지르면 상대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야는데, 그 또는 그녀에게 잘못을 저질러놓고도 괘씸한 감정이 드는 것입니다. 이러한 적반하장을 만들어내는 근원이 열 번 잘해주었어도 한 번 잘못했을 때 약점을 잡아 트집잡고 면박주는 것으로부터 비롯되는 것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강신철 교수님께서 지난 1월 쓰신 에세이를 보면, 학식과 인품은 비례하지 않는다며 공부나 독서를 많이 한다고 인품이 좋아지는게 아니라, 비록 시골촌부라도 인품이 더 훌륭할 수 있음을 주장하셨습니다. 거기에 인도의 성자는 자연을 텍스트 삼아 인간지성 최고의 경지에 오른다는 부분은 특히나 인상적이어서 제 기억 속에 아직까지 각인되어 있습니다.


한 때 환희에 젖어 손에서 뗄줄 몰랐던 데일카네기 '인간관계론'이 세월이 흘러 제게 남긴 것은 타인에 대한 '이해'가 아닌, 한 번 잘못한 건 또렷이 기억하고, 열 번 잘해준 건 금새 잊는 무지한 인간을 향한 서운함과 괘씸함이었습니다.


 위그든씨의 글을 배우며 선생님께서 '만약 위그든씨가 진짜 돈을 내놓으라며 아이를 윽박질러 내보냈다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을 던진 일이 떠오릅니다. 그 때 중학교 1학년인 저는 유아시절 동네 가게에서 비슷한 일로 면박당했던 일을 떠올리곤, 두고두고 창피해 했던 일을 생각해봤습니다. 


 30대를 관통해오며 겪었던 수 많은 잡음들, 때로는 송사협박에 시달려보기도 한, 지금의 저에게 있어 사람관계의 황금률을 일러주는 텍스트란 것은 밀리언셀러 처세론 책들이 아닌 바로 '사람'이 되었습니다. 


 돌이켜보거나 주위를 둘러보면 '괘씸하게 만드는' 사람들도 많치만, 한 번 잘 못에 대해 잊은 듯 행동하고 굳이 열 번이 아니더라도 두서너번 잘해준 일이 자기는 오히려 고마웠었다고 말해주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굳이 말로 해야 압니까? 수만년간 생존경쟁을 해오며 축적된 인류의 무의식 속 정보덕에 굳이 말로 안해도 표정이나 눈빛, 행동의 미세한 움직임에서 포착되기도 합니다.


 어쨌든 두 집단을 비교한 뒤 따라오는 반성 혹은 자기성찰의 깨달음에 이르면 최고의 처세론을 접하는양 무릎을 탁치며, 남에게 손가락질하기 전  역지사지로 저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다짐하게 됩니다. 물론 작년부터 올해까지 접했던 백북스 회원님들도 제게는 훌륭한 텍스트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이는 굳이 백북스를 참여해 뭘 배우지 않더라도 백북스의 외피(존재)까지 타인이 텍스트 삼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얼마전 매체에서 접한 내용인데, 회원님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 마지막으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소설가 이기호씨는 어느날 밤 아파트 위층에서 밤새 들려오는 TV소리에 잠을 못이루고 밖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파트 놀이터에 앉아서 문제의 윗집을 가만히 노려봤다는데요..


 밤새 TV를 보고 있는 윗집...


 웬지 불켜진 창문이 문득 쓸쓸해보였다고 합니다. 


 그저 머리 위에 소리가 들릴 때는 화가 났었는데 조금 멀리서 눈으로 바라보니까



 다른 느낌이 들었다는거죠..


 우리도 어떤 일로 화가 났을 때 잠시 다른 자리로 와서 문제의 그곳을 바라보면 어떨까요...
 

 이해한다는 말은 자리를 옮겨서 가만히 시간을 갖는다..



 이런 뜻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해의 선물'의 위그든 씨처럼, 눈에 거스르는 타인이란 텍스트를 두고, 자리를 옮겨 가만히 시간을 갖는 백북스 학습공동체의 많은 인생 스승님들께 감사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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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록 2009.11.13 11:34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이 있듯이 남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보면
    오해가 생기거나 섭섭해진다든지
    이상한 계획이나 정책을 수립하여 실행을 강요하는 일이 줄어들 것입니다.
    반대되는 사자성어四字成語는 아전인수 我田引水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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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광준 2009.11.13 11:34
    네 ^^ 운영위원님!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다르다는 말처럼 역지사지하는게 알면서도 참 어려운 일 같습니다. 반면 아전인수되기란 너무 쉽구요 ^ ^;; 다양한 사람들에게 많이 치이면서 깨달음을 얻어가며 진지한 성찰이 뒤따라야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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