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다는 것에 대하여

by 이기두 posted Aug 06,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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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걷는다.


우리가 걷는 것은 지혜로운 것이다.


자연은 걷는 것을 선택했다.



우리는 자연도 바퀴를 만들 줄 안다는 것을 안다.

40억 년 전 이래로 생물의 진화 초기에도

자연은 바퀴를 만들어 이용할 줄알았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이 다리를 만들어 걷는 것을 선택한 것은 지혜知慧이다.

공존을 선택한 것이다.


인간은 산업혁명 이후,


걷는 것을 포기했다.


힘들고 귀찮다는 것이다.

쉽게 더 빨리 이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연을 버리고 인공을 선택했다.

인공을 선택한 것은 지식知識을 선택한 것이다.

인간만을 위한 공학을 선택한다.

얕은 지식주의는 지혜를 비하한다.

깊이 통찰한 지식인은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지혜를 통해 다시 돌아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지식주의자들이


기차, 자동차, 배, 비행기, 자전거,  우주로켓을 만들고,


환호했다.

바퀴를 발명했다는 것이다  !!!

놀랍다는 것이다. 인간은 얼마나 위대한가!


그러나 오늘날 이런 성과는 자연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매우 엉성하고,  불합리 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간은 이런 엉성한 기술로 자연의 지배자가 되었다.



바퀴는 지구표면의 대륙을  조각조각 자르기 시작했다.

피자를 자르 듯.

도로망이 그물처럼 대륙을 분할해 갈 때,


자연은 조각조각에 갇혔고,


소멸되어 가고 있다.

동식물은 순환이 필요한데,

이를 무시한 인위적으로 도로망은 

동식물의 순환시스템을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

동식물의 멸종을 재촉한다,

바퀴를 위한

자동차길이, 기차길이, 자전거길이,  비행기길이


땅을 공간을 조각조각 자르고,

강도 들과 산에서 경계 지어 잘라내고,


환호한다, 얼마나 깨끗하게 정리되었느냐고,


그 경계에 도로를 내고, 자전거 길을 내고,


강과 들과 산은 하늘과 땅만큼 벌어져 멀어지고,

자연은 갇히며 절규한다,  우리가 무슨 죄 있기에


수감하느냐고.


죄수번호를 달라,


한강은 죄수번호 몇 번인가?



조각조각 잘라진 아프리카대륙에서


코끼리가 멸종해간다는데


한국땅에서는 오래전에


한국호랑이가 멸종했다는데,


코끼리는 죄수번호 몇 번인가?


한국에서 호랑이는 죄수번호 몇 번인가?




순박한 돌고래가 조련사를 공격한다.


순박한 범고래가 조련사를 공격한다.


이것은 공격성의 발로가 아니고, 경고하는 것이다.

자연은 경고한다, 너희들이 잘못되었다고.





우리는 걸어야 했다.


자연으로 돌아가려면 걸어야 한다.



우리는 이렇게라도
걸어야 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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