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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09 23:14

엄마! 사랑해요.

조회 수 3808 추천 수 0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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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 박문호 박사의 “상대성 원리” 강의를 들은 후, 돌아오는 길에서 같이 간 서울 팀과 차안에서 많은 얘기를 나누고, 집에 오니 새벽 두 시가 되었다. 어머니 주무시는 모습을 보니 맥주가 한잔 생각났다. 주무시는 곁에서 혼자 맥주를 따라 마시며 독서산방에서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개인적인 얘기 때문에, 며칠 동안 무거웠던 마음을 내려놓기로 했다. 여행 때문에 한 두 달이라도 어머니를 노인병원이나 양로시설에 맞길 생각을 했다는 것. 그 자체야 크게 잘못된 생각은 아니지만, 남에게까지 공개적으로 얘기를 할 만한 것은 아닌데 하는 후회가 들어서였었다. 오해의 소지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의 치매를 가족의 고통이 아닌 사랑의 아교로까지 발전시키는 마눌의 지혜를 보면서 내가 밖에 나가 오히려 남에게 잘못된 생각을 심어주지 않는가? 하는 반성이 들어서였다. 삶은 논리가 아니고 바로 나에게 부닥치는 하나하나의 사건이며, 지금 여기에서 내가 밟고 가는 길이라는 것. 잠깐 집을 비운 사이라도 대소변을 제대로 가리지 못하여 온 집안이 난리가 나도, 그것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천국이 되고 지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실천하는 마눌의 지혜를 보며, 또 여행을 가도 엄마 아빠보다 할머니가 더 보고 싶다는 아이들을 보면서, 어머니의 치매가 가족을 더 끈끈하게 묶어주는 끈이 되고, 지난 5년이라는 세월이 인내하는 기간이었기보다 우리를 더 성숙하게 만드는 배움의 장이 되게 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주무시는 엄마 곁에서 한밤중에 마시는 맥주 한잔 덕에, 새벽에 잠깨어 일어나 엄마에게 썼던 블로그 글이 생각나서 다시 읽었다. 이런 글을 옮겨도 될까 했지만, 굳이 써놓은 글이니 함께 느껴도 될 것 같아 옮겨본다. 아래 글은 2005년 10월 25일 새벽에 쓴 글이다.


 


지금 새벽 3시다.

요즈음은 거의 매일같이 새벽에 엄마가 우리방에 들어온다.

혼자 주무시지만 시간 개념이 없으니

일어나면 아침 먹을 시간인지 알고....

며느리 밥하라고 깨우신다.

어떤 날은  깨우지는 않고 침대로 올라와서

마눌과 나 사이에 와서 그냥 새근새근 주무시기도 한다.

처음에는 짜증도 냈다.

잠 설친다고 화도 내고 야단(?)도 첬다. 

혹시나 여러번 주입시키면 안그럴까 하고서

"아들 며느리 잠못자면 내일 일 못한다"고...

차근 차근 설명하면서 세뇌교육까지 시켜본다.

그래도 다 허사이다.

당신이 시간 개념이 없으니....

일찍 자면 일찍 일어나는 거다.

 

일찍 일어나서 심심하니 방에서 혼자 멍하니 앉아계시다가

우리 방에 와서 침대에 올라와서는

며느리 다리 한번 쓰다듬고...

아들 손 한번 잡아보고...

아들 며느리 옆에서 조용히 주무신다.

그러면 나는 침대가 좁으니 엄마방으로 가서 눈을 붙이면

이내 한시간도 안되어 다시 당신방으로 와서

나보고 가서 마눌과 함께 자라고 등떠민다.

그러면 나는 또 내방으로 간다.

매일 같이 하는 일이다.

때로는 마눌이 아예 엄마모시고 엄마방으로 가서

시어머니와 함께 자기도 하고....

교대로 한다.

 

그런데 엄마의 표정에는 사랑이 넘친다.

며느리 다리 쓰다듬으면서 "이렇게 이쁜 며느리, 세상에 어디 있나!"

아들 손 한번 잡아보면서 이뻐서 어쩔줄 모르는 표정이다.

내가 복이 많다.

누구든 늙고 병드는 일이야 당연한 것인데

교통사고에 치매까지 생기셨는데도

마음은 더욱 더 천사가 되셨으니

당신도 복받은 일이고 우리에게도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어머니

요즈음 당신의 모습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맨날 맨날 며느리와 뽀뽀하시는 그 모습

일부러 소리까지 내면서 사랑이 넘치는 쪽!쪽!쪽!쪽!

몇번이고 당신 만족할 때까지....

아니 며느리 만족할 때까지인가?

손녀딸 이뻐서 어쩔줄 모르고 아침에 일하러 가날 때면

회사에 가서 돈 버느냐고 애쓴다고

이 뺨 저 뺨 번갈아가며 뽀뽀해주는 그 모습

손녀딸 익살로 "돈 많이 벌어서 할머니랑 같이 미국 여행가자는 말"

철떡같이 믿으시고는 여행갈 때 며느리와 아들도 데리고 같이 가자신다.

혜원이 애교도 애교지만,

당신의 그 마음이 너무 곱고 이쁘다.

 

그런대도 아직까지도 아들은 듬직하긴 하지만 어려운가부다.

어쩌다 아들이 뽀뽀하려면

쑥스러워 겸연쩍은 표정으로 억지로

이쪽 저쪽 빰에 한번씩만  쪽!하고 만다.

그리고는 얼른 얼굴은 돌린다.

아들이래도 옛날에 어릴 때 그 모습은 아닌지?

아무래도 아들 뺨에 뽀뽀하는게 쑥스러우신 모양이다.

이것도 우리 식구만 있을 때에 한하는 얘기다.

손님이라도 오면 그런 제스쳐도 안하신다.

정신이 없으셔도 그런 분별은 하시니 말이다.

정말 치매인지 ???

아니면 일부러 치매인 척 하시는지 어리둥절할 때가 많다.

 

엄마 얘기는 해도 해도 끝이 없는데.....

그날 그날 일회성으로 지나가니 자꾸만 잊어버린다.

우리집에 엄마 없으면 웃을 일도 없다는 마눌의 말이다.

행동에서부터 표정까지.....

언제나 따뜻한 마음이 녹아나고....

어떤 말이던지 일초를 지나지않고 대꾸하는 기발한 순발력

생각없이 반사적으로 나오는 말이기는 해도....

전혀 근거없는 얘기는 아니고

때로는 소설을 쓰듯이 이야기도 만들면서

반은 지어낸 말에다가 반은 테레비에서 나온 말과 섞인다.

그래도 일관성은 있다.

항상 이야기의 초점은 바로 지금 여기에 사신다.

 

과거나 미래에 대한 생각은 없다.

함께 살지않는 아들 딸 걱정은 전혀 없다.

옛날 같으면 7남매나 되는 당신 아들 딸 걱정에다가

옛날부터 몸에 배인 아들 선호 사상에 당신 손자 재혁이, 재헌이만 아시고

거기에 큰 딸 외손자 걱정까지 태산을 짊어지고 사시는 듯 했는데.

같이 사는 우리 혜원이 재원이 생각은 거의 안하셔서

며느리, 손녀딸 자주 서운케하시더니..........

지금은 전혀 180도로 변하셨다.

언제 그랬냐이시다.

우리 혜원이. 재원이만 아신다.

본능적으로 그렇게 변하는 것일까?

당신이 편하기 위한 생물학적인 적응인지도 모를 일이다.

 

엄마.

요즈음 당신의 체구가 점점 작아지셔서

며느리가 걱정하는 걸 자주 봅니다.

요즈음엔 당신에 대한 며느리 사랑이 아들인 나보다 더 크다는 걸 느낍니다.

그래도 그게 당신의 복이기도 하고 다행스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사람의 감정은 억지로 되는 일은 아니니까요.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역활이 바뀌어서

당신은 며느리를  엄마로 알고 

며느리는 당신을 애기로 생각하니까요.

나는 아직 덜 변해서 당신은 내 엄마이십니다.

그래서 우리집에서서는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제일 꼴찌입니다.

 

어머니

이런 넉두리를 하면서

생각지도 않던 눈물이 흐릅니다.

더 이상 글을 못쓰겠네요.

어머니!

당신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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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석희 2008.01.09 23:14
    아름다운 글에 잠시 눈물을 내렸습니다.
  • ?
    박혜영 2008.01.09 23:14
    방금 엄마와 통화를 했습니다.
    딸이 보고 싶어서 전화 했다고 하시네요.
    가끔씩이라도 전화드려야 하는데
    잘 않되네요.
  • ?
    강신철 2008.01.09 23:14
    환갑이 가까워도 "엄마"라고 부르고 싶은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진하게 느껴집니다. 독서산방에서 이명희 님이 하신 말씀을 듣고 효심을 의심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 작은 언어에도 마음 아파하는 이명희님의 효심이 참으로 눈물겹습니다. 저도 이글 읽고 엄마에게 전화드립니다.
  • ?
    이정원 2008.01.09 23:14
    가슴 뭉클...
  • ?
    임성혁 2008.01.09 23:14
    댓글을 달기가 버겁습니다.가슴으로만 부르는 그 이름.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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