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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지구, 생명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과학에서 시간은 해결되지 않은 문제입니다.

시간이 한 방향으로 진행한다는 것이 명백해 보이지만, 주류 물리학에서는 시간을 환상으로 간주합니다.

시간이 진짜라고 생각하는 소수 의견이 있습니다. "시간의 재탄생(Time Reborn)" 책을 올해 출간한 리 스몰린의 아래 글을 보십시오. "시간의 재탄생(Time Reborn)" 책이 한국어로 번역되기를 기대합니다. 

고원용



시간을 다시 써야 한다


"물리 법칙들은 시간이 환상이라고 한다. 우리는 이 규칙들에서 벗어나서 시간이 진짜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이론 물리학자 리 스몰린 (Lee Smolin)은 주장한다.


과학의 목적은 우주의 모든 특징—힉스 보손의 질량부터 밤하늘이 별들로 가득하다는 사실까지—을 설명하는 것이다. 아마도 이 모든 것 중에서 가장 명백한 특징은 우리 우주의 시간이 한 방향으로만 진행한다는 것일 것이다. 과거는 기억하지만 미래는 기억하지 못하고, 세상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컵에서 쏟은 우유와 아기의 탄생 등—은 돌이킬 수 없다.


우리 우주의 특징 중에, 시간이 한 방향으로 진행한다는 것만큼 설명이 모자라는 것이 없다. 그러나 물리학과 우주론은 이 자연적 사실을 설명하는 데에 실패했다. 이제 과감하게 다른 길을 모색해야 한다. 시간의 방향을 설명할 새로운 출발점이 필요하다.


물리학자들은 시간의 화살을 이야기한다. 그런 화살 중 하나는 멀리 있는 별에서 우리한테 오는 빛에서 볼 수 있다. 이 모든 빛은 과거에서 온 것이고, 그 별들이 한 때 어떠했었는지를 보여 준다. 그러나 미래에서 오는 빛은 없다. 이것은 수수께끼이다. 빛의 성질을 설명하는 방정식은 시간의 방향을 뒤집어도 그대로이기 때문에 이 방정식에는 두 가지 풀이가 있다. 하나의 풀이에서는 에너지와 정보를 전달하는 파동이 과거에서 미래로 진행하고, 다른 하나의 풀이에서는 반대 방향으로 진행한다.


그런데 자연은 앞의 풀이만을 사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시간의 화살들 중 시간의 전자기 화살(electomagnetic arrow of time)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여러 가지 풀이 중에 대부분을 제거하고 과거에서 미래로 진행하는 풀이 하나만을 남겨서 이것을 설명하려면 전자기이론에 가혹한 조건을 부여해야 한다. 빅뱅 우주론에는 시간의 맨 처음에 자유롭게 움직이는 빛의 파동이 없었다는 조건이 필요하다. 이렇게 가혹한 조건이 왜 필요한지를 지금까지 아무도 설명하지 못했다. 


시간의 화살 중에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시간의 열역학적 화살(thermodynamic arrow of time)이다. 이것은 깨진 유리병처럼 비가역적인 과정에 관련된 것이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우리는 비가역적인 과정이 일어날 때마다 증가하는 양, 엔트로피를 고안했다. 열역학 제2법칙은 엔트로피가 항상 증가한다고 말한다. 19세기에 루트비히 볼츠만은 물질들이 (당시에는 아직 증명되지 않았지만)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가정하면 열역학 제2법칙이 당연한 결과라고 제안했다. 볼츠만의 제안에 따르면 엔트로피는 원자들의 무질서도를 나타내는 양이고, 제멋대로의 과정에서는 질서보다는 무질서가 나오기 쉽기 때문에 엔트로피가 증가한다.


볼츠만의 원자 가설은 옳았다. 그러나 반대자들은 이 추론에 숨겨진 모순을 금방 찾아서 볼츠만을 공격했다. 원자들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법칙들은 시간 가역적인데, 열역학 제2법칙이 어떻게 시간 비가역적일 수 있나? 시간에 대칭적인 열역학 제2법칙의 형태를 따를 때, 우리가 기껏 얻을 수 있는 것은, 현재 엔트로피가 작은 어떤 시스템이 있다면, 이 시스템의 엔트로피는 미래에 증가하거나, 아니면 이 시스템의 엔트로피가 현재보다 과거에 더 컸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우주에 강한 시간의 화살이 있는 것을 설명하지 못한다. 1979년에 물리학자 로저 펜로스가 지적했듯이, 시간의 열역학적 화살을 설명할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주의 초기 조건에서 엔트로피가 매우 낮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극단적으로 가능성이 낮다.


시간의 전자기 화살도 시간의 열역학적 화살도 모두 우주의 초기 조건이 극도로 특별할 것을 요구한다. 왜 그래야 하는가? 우리 우주의 시간 비대칭을 설명하는 유일한 방법은, 시간 대칭적인 법칙에서 특별한 풀이를 얻는 수학적인 재주를 부리는 것이다. 이것은 아무 것도 설명하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과감한 새로운 출발점을 나는 제안하려고 한다. 내가 쓴 책 "시간의 재탄생(Time Reborn)"에서 나는 펜로스의 제안을 따라, 진정으로 근본적인 법칙은 시간 비대칭이고 이 때문에 시간의 비가역성이 우주의 근본적인 조건이라고 주장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근본적이라고 생각했던 법칙들—일반 상대성 이론, 양자 역학, 표준 모형—은 더 근본적인 시간 비대칭적인 법칙의 근사이고, 가능성이 낮은 초기 조건을, 이 더 근본적인 법칙이 설명해 줄 것이다. 


이 제안은 시간의 본성에 대한 질문을 바꾸어 놓을 것이다. 큰 질문 하나는 시간이 근본적인가 아니면 환상인가이다. 내 동료 이론 물리학자 중 다수는 시간이 환상이라고 한다. 이 관점에 따라, 근본적인 물리학 법칙에 대한 제안 중에는 시간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물리학자 줄리안 바버(Julian Barbour)는 그가 쓴 책 "시간의 종말(The End of Time)"에서 양자 역학과 우주론을 아우르는 근본적인 법칙에서 시간은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내 관점는 다르다. 시간은 진짜 있고, 과거와 미래의 구분은 근본적이다. 나는 브라질 철학자 로베르토 웅거(Roberto Mangabeira Unger)와 함께 이 관점를 연구해 왔다.


이렇게 말하기는 우습지만, 시간이 진짜라는 생각은 물리학의 표준 패러다임을 결정적으로 바꿀 것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지난 400년 동안 물리학자들이 자연에 대해 생각해 온 결과가 시간의 가치를 부정하고 자연의 근본적인 모습에서 시간을 완전히 제거해 버렸기 버렸기 때문이다. 17 세기의 르네 데카르트 이후 시간은 마치 공간의 한 축인 것처럼 다루어졌다. 이런 생각의 정점이 일반 상대성 이론의 "시공간" 개념이다.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는 현재가 아무 의미가 없고, 우주의 모든 역사가 시간없이 한꺼번에 존재한다. 물리학 법칙이 수학적으로 표현될 때, 시간의 작용에 의한 원인-결과 관계는 시간과 무관한 논리적 관계로 표현된다. 


그러나 진짜 우주에는 수학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성질이 있다. 그 중 하나는 현재라는 순간이 언제나 존재한다는 것이다. 수학적인 대상은 시간과 무관하게 존재하고 거기에는 현재도, 과거도, 미래도 없다. 그러나, 우리가 시간이 진짜라는 것을 인정하고, 수학 법칙이 자연을 비추는 신비한 거울이 아니라 도구라고 생각하면, 세계에 관해서 아무래도 설명할 수 없었던 사실들을 설명할 수 있게 된다. 물리법칙 자체도 설명할 수 있다. 만약 물리 법칙들이 시간과 무관하게 진실이라면, 우리가 관찰하는 물리 법칙들의 특별한 집합이 진실인지 아닌지를, 과학 안에서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시간이 진짜라면, 물리 법칙들이 진화할 수 있고, 진화 과정에 대한 가설들을 시험할 수 있고, 그래서 그 법칙들이 왜 성립하는지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근거가 존재한다. 


시간 가역적인 법칙에서 시간 비가역적인 현상들이 나타난다는 표준적인 생각을 거꾸로 뒤집을 수 있을까? 나는 영국 에든버러 대학교의 우주론 학자 마리나 코르테스(Marina Cortes)와 함께 이것을 연구 중이다. 우리는 시간 비대칭적인 규칙이 적용되는 간단한 시스템을 고안하고 이 시스템에서 근사적으로 시간 대칭적인 행동들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보였다. 이 모델들은 간단하지만, 시간의 화살을 설명하려는 새로운 시도의 첫 걸음이다.


변하지 않는 원자들이 바뀌지 않는 공간 속에서 움직인다, 그리고 자연은 근본적으로 이런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물리 법칙은 시간과 무관하다는 생각에서, 시간이 존재하지 않거나 중요하지 않다는 형이상학적인 관점이 나왔다. 이 관점을 바탕으로 지난 수백년 동안 과학이 발전해 왔다. 그러나, 이 관점은, 왜 우주가 시간에 대해 비대칭적인가, 왜 우리가 보는 자연 법칙들이 선택되고 다른 자연 법칙들이 선택되지 않았는가 같은 중요한 질문들에 대답하지 못한다. 이 관점은 기초 물리학이나 우주론에서 이제 쓸모가 다 했다. 시간에 무관한 법칙을 믿는 것과 과학 자체를 혼동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것은 틀렸다.


시간이 진짜이고, 물리 법칙도 진화하고, 비가역성은 근본적이라는 원리에 바탕한 새로운 과학적 관점이 등장하고 있다. 이 관점이 지금까지 설명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던 우리 우주의 기본적인 성질들을 —실험으로 검증할 수 있는 형태로— 설명할 능력이 있다는 것은 벌써 명백하다.


New Scientist, Volume 218, Issue 2913, 20 April 2013, Pages 30–31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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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석희 2013.05.12 07:52
    또 한 번의 패러다임 쉬프트가 기다려지는군요.
    새로운 설명으로 불필요한 가설들이 제거된다면, 일단 거기에 한 표! 던지고 싶습니다.
    좋은 소개 고맙습니다, 꾸벅~
  • ?
    한정규 2013.05.12 07:52
    책 읽기가 바쁘신 분은 여기에 있는 한 시간짜리 인터뷰를 보시죠...
    http://www.edge.org/conversation/think-about-n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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