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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빛나는 밤에

by 박혜영 posted Nov 02,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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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가평에 있는 과수원에서 였다. 평상에 누워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봤다. 시간이 멈춰진 듯. 난 그렇게 멍하니 하늘을 쳐다봤다. 그날이 별과 나의 첫 만남이었다.

 



언제부턴가 난 별을 볼수도 없었고 관심도 점점 시들해 졌다. 삶의 여유가 없어서 일까? 가끔 하늘을 쳐다 봤지만 별을 볼 수 없었기에 더 그러했다. 

 


작년 가을 인도여행을 앞두고 '별을 볼 수 있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를 했었다.하지만 막상 인도에 가보니 하늘은 뿌옇고, 오토릭샤가 뿜어내는 매연에 숨 쉬기 조차 힘들었다. 발전이 덜했을 걸로 생각했던 내 예상은 가볍게 빗나갔다. 인도의 도시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단지 영혼이 깃든 눈망울을 가진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며 껌벅껌벅 거렸다. 인도에 대한 막연한 신비감에 푹 빠져 지내온 느낌이 들어 잠시 혼란스러웠다. 여행의 목적 중 하나인 원초적 자연의 느낌을 받고 싶었거늘.. 그렇지 못해 내심 아쉬웠다.


 


뼈 속에 있는 칼슘 같은 원소들은 별에서 처음 만들어 졌고 별이 죽으면서 우주 공간으로 날아갔다. 별이 없었다면 수소나 헬륨보다 무거운 원소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고, 따라서 생명도 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행성도 미생물도 식물도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별의 거대한 핵융합 과정에서 무거운 원소들이 형성되었고 일생을 마치면서 폭발한 별들이 새로 만들어진 원소들을 우주 공간으로 멀리 날려 보냈기 때문이다. 이렇게 폭팔하는 초신성이 없었다면 갈매기의 울음도, 컴퓨터 부품도 삼엽층도 베토벤의 음악도 어린 소녀의 눈물도 없었을 것이다. 인간과 호랑이와 고래와 식물 그리고 우리가 본 지구상의 모든 것들은 한밭 별들의 재일 뿐이다. 어쩌면 원자들 중 하나가 여러분의 태아 속으로 들어와 당신의 일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서 왔을까?


 


'우리는 별들의 먼지이고 수십억 년 된 탄소 덩어리 일뿐'이라고 대답한다.


- 천국의 별 중 -

 




하지만 이번 호주 탐사로 고등학교 시절 보았던 나의 별, 나의 친구들을 하나 둘씩 찾아 낼 수 있었다. 내가 별을 잊고 살아가는 동안 별은 거기 그대로 있었다.




그렇게 보고 싶던 셀 수 없는 별과 은하수, 아마추어 천문가라면 육안으로 관찰하기를 희망하는 대 마젤란 성운(1987년 2월23일 지구로부터 16만 광년 떨어진 대 마젤란 성운에서 수퍼노바가 관찰됐다. 오직 남반구에서만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갤럭시이다)과 소 마젤란 성운, 이별을 보면 장수 한다는 전설이 있는 용골자리의 가노푸스(노인성),그 밖의 별자리들...그리고 금성, 목성을 내 육안으로 보게 된 것이다.

 




팔을 쭉 뻗으면 만져 질 것 같은 별들의 집합.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별이 내리는 하늘이 너무 아름다워 바보처럼 나는 그저 눈물을 흘리며 서있네.’라는 노래가사가 나의 마음을 대신해줬다. 폭풍처럼 요동친 가슴을 진정 시켰다. 지구 행성에 살고 있는 티끌 보다 작은 내가 이 우주 전체를 전세라도 낸 것처럼 우주적 존재가 되는 순간이었다. 이 순간을 고이 간직하고자 카메라 셔터를 장시간 눌렸다. 진정 살아 있음을……. 난 선택 받은 사람이었다.


 


은하수 속으로 깊숙이 빠져 들어 가는 밤, 못내 아쉬워 텐트 문 밖으로 얼굴을 내민다. 보석 보다 빛나는 별들을 이불 삼아 잠을 청했다. 우주로부터 온 원자들이 인간의 몸을 구성하고 있다면, 내 생각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별을 좋아하게끔 DNA가 배선 된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느 누구도 별을 싫어하는 이가 없다. 그럼 방황하는 청소년을 위해 호주 밤하늘을 관측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분명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바뀔 것이다.

 


수천 억 개로 이루어진 은하를 한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은 매력적인 일임에 틀림없다. 끝없는 대자연과 호흡하고 별과 은하수를 본다면 세상이 달라 보일 테니 말이다.


 



인도여행과 호주탐사
인도 갠지스강의 노천 화장터를 지켜보던 때가 생각 났다. 갠지스 강가에서 죽고 싶은 마지막 희망에, 나무 값을 벌기 위해 평생을 구걸 한다는 한 노인의 얘기를 들었고, 내 눈으로 한 줌 재로 변하는 순간을 지켜 봤다. 생명의 탄생은 시작을 의미하는 동시에 죽음을 동반한다.



 


'세상의 만물은 죽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변화 할 뿐 인간의 육체가 흙으로 돌아가 식물의 거름이 되며 또 그 식물들이 다시 인간에게 산소를 공급해 주는 시스템이다.'


 


46억년 전 대기 중에는 기체 상태로 산소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아노박테리아가 산소를 만들면서 누구도 피해갈수 없는 ‘점진적 산화 현상’을 겪게 되었다. 호주의 붉은 땅이 이를 말해 준다. 지구상에 태어난 모든 생명체들은 자연의 순리를 거역 할 수 없는 것이다.

 


호주 샤크베이에서 생명의 탄생을 지켜 보며, 죽음은 왜 생겼을까?라는 의문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죽음은 또 다른 생명체의 탄생을 의미한다. 원초적인 자연의 현상을 느껴 보고 싶다면 서호주를 가보라. 붉은 땅, 별과 은하수, 깊은 하늘, 개미집, 스트로마톨라이트, 울페분화구 등 분명 자연에도 명품은 존재하는 듯 했다.

 




작년에 인도와 네팔을 30일정도 여행 했다. 그저 풍경 사진과 겉으로 보여지는 부분만 치중 했을 뿐, 두 눈만 즐거웠다. 그간 다녀온 대부분의 여행이 그러했다.


일정이 짧아 많은 것을 보고, 느끼지 못 할 까봐 회사를 그만 두고 장기간의 여행을 했다. 마치 세상과 단절이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도 그렇게 긴 시간을 여행 하고도 채워지지 않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 아쉬움을 기념품으로 채우려고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 호주 탐사는 기존의 여행 개념과 준비부터 확실히 달랐다. '학습탐사'라는 테마를 가지고 철저한 사전 준비를 했다.


 


별 관측을 위해 달, 구름이 없는 날로 치밀한 날짜 계산과 여행 방향을 모색해 주신 대장 박문호 박사님, 전체적인 준비를 맡은 문경수대원, 아침부터 저녁, 새벽까지 호주의 전반적인 정보를 찾아 준 김주현대원, 도착 목적지 마다 거리를 미리 계산해 준 소립대원, 우리의 건강을 책임진 김영철대원, 밤하늘 별 사진을 도맡은 박혜영 대원 모두가 완벽하게 준비과정을 소화해 냈기에 목표를 달성 할 수 있었다.  준비한 만큼 성취감은 비례했다.

 


나이, 학벌의 직업의 경계를 허물고 다양한 분야의 사람이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직접 현장을 찾아가 보고, 눈으로 확인하고, 만져보고, 느낄 수 있어서가 아닐까. 그래서 인지 학습 효과가 몇 배 더 증폭되었다. 개인적으로도 별 공부에 동기 부여가 되었다. 우리 부부에게는 초거성의 별을 선물 받았다.


 


소중한 것은 경험이었다



몇해 전 수유+너머에서 박문호 박사님의 천문학 강좌를 들었다. 상상하기도 힘든 큰 숫자들과 나의 두뇌 속에 각인 되었던 “천문학은 어려워”, “나 같은 사람은 할 수 없는 학문이야” 라는 사실을 나 스스로 인정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다 깜빡 졸다 박사님께 지적 받던 때가 생각난다. 그땐 나를 우주적 존재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내가 독서 산방에서 ‘호주의 밤하늘’을 발표 한다니 나로써도 놀랄 일이다. 박문호 박사님이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완성도 있는 발표는 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나왔는지 나 자신도 모르겠다. 아마도 호주 밤하늘의 느낌을 꼭 한번 전달해 주고 싶은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가문의 영광이다' '완전히' 변하지는 못했지만, 난 내가 조금씩 변해 가는 것을 느낀다. 삶이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자신의 모습이 점점 나아지고, 변화 된다는 것을 느낄 때 가장 행복 할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소중한 것은 물건이 아니라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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