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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05 10:34

형을 다시 만나다.

조회 수 4354 추천 수 0 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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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게는 두 살 터울의 형이 있었다. 중학교 3학년때 형은 나의 곁을 떠나갔다. 그러나 백권 독서클럽을 통해 나는 다시 형을 만날 수 있었다.


 


  어려서 책을 좋아했던 형은 돈이 생기면 책을 샀고 시간이 나면 책만 보았다. 그래서 인지 주위에 친구들 보다는 책장에 책들만 가득했다.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했고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 반면 나는 책과는 담을 쌓고 친구들과 산으로 바다로 들로 열심히 뛰어다녔다. 참 서로 다른 패턴의 형제 였다. 형은 책은 물론 글로 쓰여있는 모든 것들을 다 좋아했다. 아버지께서는 신문을 구독하지 않으셨는데 신문이 보고 싶었던 형은 매일같이 옆집에 가서 하루가 지난 신문을 얻어다가 읽기도 했다. 책을 좋아해서 인지 공부도 잘했다. 집이 시골이어서 학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지만 고등학교에 들어 가서도 줄곧 일등만 했다. 부모님은 형을 자랑스럽게 생각 하셨고 많은 기대도 하고 계셨다. 그래서 인지 나에게는 공부하란 소리를 많이 안 하셨던 것 같다.

 

  난 공부대신 내가 하고 싶은 대로만 하고 살았다. 그 하고 싶은 것에는 창피하지만 독서는 없었다. 형은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었다. 보통의 사람들은 소설책들을 많이 읽는데 철학, 문학, 과학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책을 보았다. 그 중 철학책과 소설책을 주로 읽었던 것 같다. 정말 똑똑하고 아는 것이 많은 형이었다. 내가 뭘 물어보면 모르는 것이 없었다.

 

  이런 형이 고등학교 2학년 때 세상살이에 비관한 나머지 두꺼운 노트한권 분량의 글만 남기고 떠나갔다. 나는 형이 왜 떠나갔는지 이유는 알지 못한다. 주위에서는 우울증 때문이다. 철학에 너무 빠져서 그렇다.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다. 무튼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지만 난 아직도 이유를 모르겠다. 여기까지가 형의 이야기다.


 


  앞서 내가 형 이야기를 한 것은 이곳 백권 독서클럽에 와서 먼저 떠나간 형을 다시 만났기 때문이다.

 

  우리 클럽의 회원이신 이정환 사장님의 소개로 이 클럽을 알게 되었다. 학교에 강의를 하러 오셨다가 학생들에게 백권 독서클럽에 대해 소개해 주셨다. 그 때 나는 많은 자극을 받았고 그동안 책을 너무 많이 안 읽었구나 하는 생각에 반성도 하게 되었다. 공감은 했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같은 과 선배인 문경목회원이 그때 이정환 사장님의 이야기를 듣고 모임에 나가고 있었고 그걸 안 나도 혼자서 가기 뭐 했는데 잘 되었다 하면서 문경목 회원을 따라 이 클럽에 나오게 되었다. 이곳에 왔을 때의 처음 느낌은 “감동 그 자체” 였다. 내가 처음 이곳에 참석한 것은 산행이었고 산행 이후에 조용진 박사님의 ‘얼굴 한국인의 낯’ 강의를 들었다. 그때 처음 그 감동은 아직도 잊혀 지지가 않는다. 우선은 빠지지 않고 열심히 나왔다. 차츰 차츰 이곳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독서산방에서 호주 탐사팀들의 발표가 있을때 였다. 박문호 박사님께서 우리가 왜 시아노박테리아에 대해서 배우고 미토콘드리아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신 것이 생각이 난다. 바로 조상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것이라고... 학문에 있어 동기부여는 정말 중요한 사항 이다. 보통학교에서 강의를 들을때도 내가 왜 이 강의를 듣고 있지 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데 이 곳 백권 독서클럽은 달랐다. 학습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편식하지 않는 독서의 중요성 까지... 이런 것들에서 나는 많은 것들에 공감 하고 이 곳에 점점더 빠져들었다.

 

  나를 책으로 인도해 준 것이다. 정말 독서와는 친하지 않았던 아니 담을 쌓고 살았던 내가 어느 순간 책을 읽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면 너무나 신기하고 뿌듯하다. 취미도 음악감상에서 독서로 바뀌었다. 이제는 전에 형이 했던 것 처럼 돈이 생기면 책부터 산다. 어렸을적 형의 마음을 이제야 알 것 같다. 형이 그렇게 되고 아버지는 형이 보던 책들을 모두 태워 버리셨다. 내가 쭈구리고 앉아 다 태웠지만 그때는 잘 몰랐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 책이 너무 너무 아깝다. 너무 아깝다. 그 책들이 집에 남아 있었더라면 더 빨리 형을 만났을 텐데...

 

  형이 보고 싶다. 전에는 부모님보다 먼저 떠난 형이 너무나 미웠지만 이제는 형이 너무 보고 싶다. 내가 읽은 책도 같이 이야기 하고 싶고 또 형은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듣고도 싶다. 만약 형이 살아있었다면 같이 이 독서클럽에 나왔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도 해본다.


 


  나는 책으로 형을 다시 만났다. 아니 이 백권 독서클럽을 통해 형을 다시 만난 것이다. 실제로 형과 책 이야기를 나눌 수 는 없지만 새로운 나의 형들이 이곳 백권 독서클럽에 있다. 이곳은 나의 삶에 패턴을 180도 바꾸어 놓았고 책이라는 종교를 나에게 주었다. 이제 이곳을 떠날 수가 없다. 계속 이곳에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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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윤호 2007.11.05 10:34
    얼마전 지식네트워크의 열린 토론회에서, 이보표 회원의 독서클럽을 통해 '구원'을 받았다는 말 한 마디에 웃음바다가 된 적이 있었지요 ~ ^^ 홍섭군! 구원 받으신 겁니다. ^^ 함께 그리고 계속 함께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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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원 2007.11.05 10:34
    가슴 찡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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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경수 2007.11.05 10:34
    글 잘 보았습니다. 사이트 관리자가 된 후, 늦은 밤 천안에 있는 소립회원 도장까지 찾아가 인수인계를 받으려는 열정의 뿌리가 어디서 시작됬는지 이제 알것 같네요.^^ 형을 만나기가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만큼 그 시절 형이 갖았던 느낌의 세계를 이해하는데 힘이 될거라 생각합니다. 김홍섭 회원 말 데로 독서클럽에는 또 다른 형들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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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영택 2007.11.05 10:34
    형을 그리워 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하네요.
    김홍섭 회원의 온기가 전해져 따뜻해집니다.
    아픈기억인데도 이렇게 꺼내어 놓는 용기가 아름답습니다.
    책을 통해 형을 만나고
    형이 다하지 못한 삶을 형과 함께 해나가고 있는거겠지요.
    이렇게 따뜻한 김홍섭 회원과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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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문호 2007.11.05 10:34
    먼저 간 그리운 사람들은
    내 기억 속에 스며들어와
    빈 시간 틈에 불현듯 솓아나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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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주현 2007.11.05 10:34
    마음을 녹이는 글귀들에 한참을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형에게 든든한 동지가 있어 너무나 기쁩니다.
    형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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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수 2007.11.05 10:34
    독서의 특성중에는 '답사'라는 특성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저자의 생각을 따라가고 먼저 읽은 사람의 사고에도 따라가보고..

    이렇게 가다보면 우리 모두는 어느 순간에 만나게 되고 또 다시 길을 찾아 나설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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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경화 2007.11.05 10:34
    읽다보니 눈물이... '형'과 형을 책으로서 추모하는 김홍섭님 앞에서 고개가 숙여집니다. 형은 떠나서도 우리에게 길을 열어주고 계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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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준호 2007.11.05 10:34
    너무 감동적인 글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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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숙영 2007.11.05 10:34
    점점 가슴이 메어오더니 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흐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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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성혁 2007.11.05 10:34
    글의 위력을 새삼 느낌니다.저도 갑자기 제 아우들이 생각 나네요.오늘 오랜만에 전화라도 먼저 넣어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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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혜림 2007.11.05 10:34
    김홍섭회원의 글을 읽으니 그 마음이 느껴져 마음이 아프네요~
    책을 통해 형을 만나는 당신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보여요^^
    또한 이글을 통해 저에게 많은 깨달음을 준 당신에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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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경목 2007.11.05 10:34
    그 열정이 항상 가까이서 느껴져 덩달이 기운이 납니다.
    또 이렇게 좋은 곳에 나오게 된 계기에 도움이 되어 뿌듯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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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동환 2007.11.05 10:34
    지난번 김홍섭회원에게 이 이야기를 들었을때 동생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다시금 글로 읽게되니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낍니다.
    가슴을 울리는 글. 감사합니다.
    책이라는 종교. 아무리 빠져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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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석희 2007.11.05 10:34
    "저에게는 형이 책을 좋아하는 형이 있었습니다."로 시작한 김홍섭 회원의 첫마디에서 많은 부분이 느껴졌습니다.
    독서클럽을 통해 무언가 마음의 짐(?)을 풀으신 홍섭회원이 참으로 부럽습니다. 그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그리고, 형과 더불어 책과 더불어 더 많은 발전이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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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지숙 2007.11.05 10:34
    인간은 꼭 인간대 인간이 아니더라도
    다른 무었으로라도 만나지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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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장미 2007.11.05 10:34
    영화를 볼 때 남들은 웃는데 혼자 울며 보는 사람입니다.
    스크랩은 안되나요?
    맛있는 과자를 숨겨 놓고 아껴 먹듯이.
    두고 두고 꺼내어 보고 싶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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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소현 2007.11.05 10:34
    책이라는 종교,

    책교.

    누가 제게 종교가 뭐냐고 하면 책교라고 대답했는데 조동환 님 댓글에서 이 말을 만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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