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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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었다 놓았다를 잘 하는 데 인생의 묘미가 있다.

-헤이브록 엘리스

 

 


  엊그제 빌려 왔던 책 '혼자인 사람들의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에서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는, 한 여인이 목사님의 설교에서 얻었다는 교훈이었다.



  목사님이 예배 시간에 아이들을 앞으로 불러 모아 모두에게 1달러씩을 주고는 다른 주머니에서 10달러 지폐를 꺼냈다. "여러분은 이것도 가질 수 있어요. 하지만 이걸 가지기 위해선 이미 갖고 있는 돈을 놓아야만 해요." 더 좋은 것을 준다는데도, 놀랍게도 아이들 중 누구도 1달러를 내놓으려 하지 않았다고 한다. 1달러를 내 놓는 사이 목사님이 마음이 바뀌어서 10달러를 안 주시면 어떡하지? 차라리 이 1달러라도 가지고 있는 편이 안전하지 않나? 망설이는 아이들의 마음이 손에 잡힐 듯이 읽힌다.

 




  이 에피소드가 나에게 깊이 와 닿았던 이유는, 역시 마음에 짚이는 구석이 많아서겠지? 생각해 보면, 사소한 욕심이 눈을 가려서 정작 큰 것을 놓쳐 버리고 말았던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타인의 눈에는 부질없는 욕심인 것이 빤히 보이는데도, 왜 내 눈에는 그것이 끝까지 보이지 않는 것일까. 늘 지나고 나서야 깨닫고, 다음 번에는 그러지 말자고 반성하지만 막상 상황에 빠져들면 객관적인 판단이 쉽지 않다.

 




  한 때, 무언가를 사는 것이 그렇게 좋았던 시절이 있었다. 물건을 고르는 안목은 자신이 있었고, 내 심금을 울리는 물건이 눈 앞에 보이면 사지 않고는 도저히 지나갈 수가 없었다. 좋아하는 물건에 둘러싸여 사는 것은 곧 행복이니까. 사지 않고 두고두고 꿈에서 보면서 후회하느니 돈을 지불하고 내 옆에 두는 것이 나았다. 자본주의의 혜택, 향유하는 즐거움을 포기해야 할 이유도 딱히 없었다. 비슷한 물건 많아지면 좀 어때, 다다익선이라쟎아.이런 식으로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면서 '풍요로움으로 가득찬 생활 태도'를 버리려 하지 않았다.

 




  그런 나의 가치관이 수정된 것이, 수 년 전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오면서였던 것 같다. 평소 운동을 즐기지도 않는 데다가 체력도 약한 나에게는 10킬로 용량의 배낭이 버겁도록 무거웠다. 패션성을 포기하고 옷을 줄여 꼭 필요한 짐들만 남겼는데도 한계가 있었다. 가이드북 두 권에 미술관 관람용 참고도서, 비상용 음식 등이 워낙 무거워서 그렇기도 했겠지만 중간중간 짐은 슬쩍슬쩍 불어났다. 할 수 없이 덜 중요한 것들은 버리기도 하고, 집에 소포로 부치기도 하면서 짐의 무게를 감당 가능한 수준으로 유지했었다. 가뜩이나 이미 추리고 추려진 짐을 앞에 놓고서 매일 '어느 게 버려도 되는 짐이고, 어느 게 꼭 필요한 짐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일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살아가는 데에 꼭 필요한 물건이란 게, 사실 그렇게 많지도 않구나.'

 




  실제로, 짐을 몽땅 도둑맞고 여권과 지갑에 비닐봉지 하나 분량의 짐만 달랑 가지고도 여정을 끝까지 마쳤다는 배낭여행객을 보기도 했었으니까. 배낭 한 짐 분의 물건들, 그것만 가지고도 한 달 여를 생존하는 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는데, 왜 내 방에는 그토록 많은 물건들이 꽉꽉 들어차 있는 걸까.

 




  결국 내 취향이란 것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어서, 비슷한 물건들을 중복 구매하는 일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이후로 무언가가 갖고 싶으면 이성적인 충동 제어에 들어갔다. 처음엔 어려웠지만 의외로 하다 보니 할 만했고, 나중에는 '참는 즐거움'까지 느끼기 시작했다. 강렬한 충동을 이기고 결국 구매의 달콤한 유혹에서 벗어나고 나면, 일종의 자신과의 게임에서 이긴 듯한 기분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지금의, 소비에 다소 무심하면서도 여백의 미를 즐기는 전혀 다른 인물처럼 되어 버리기까지는 몇 년이 걸렸다.

 




  이런 식으로, 내 안의 욕심을 상당히 걷어 냈다고 생각했는데도 아직도 난, 손에 쥔 1달러를 놓아야 할 때를 제대로 판단할 줄 아는 사람이 되려면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걷어야 할 욕심과 그렇지 않아야 할 욕심을 구별하는 일도 서투른 것 같다. 물건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간소한 삶을 선택하는 것, 여기까진 어렵지 않았다. 더 현명해지고 싶고, 똑똑해지고 싶은 마음. 이것은 내버려 두어도 좋은 욕심이겠지? 그렇다면, 부자로 더 잘 살고 싶은 욕심과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게 살고 싶은 욕심은? 성공하고 싶은 욕심은? 어느 포인트에서 욕심을 챙기고, 어느 포인트에서 과감히 놓아 버려야 하는지.. 1달러와 10달러를 예로 둔 우화에서는 그렇게나 쉽고 명료하게 보이는 명제인 것이, 막상 내 인생의 온갖 문제에 접목시켜 보려 하면 가치 판단이 쉽지 않고 혼란스러워진다. 결국, 나는 적당한 균형감각을 익히지 못한 채 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비우고 버리기 위해 애쓰면서 살아가게 될 지도 모르겠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07-11-28 01:40:23 회원게시판(으)로 부터 복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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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원 2007.11.26 06:00
    여행에서 돌아왔습니다. 같이 못해서 아쉽지만 그동안에 좋은 글을 올려주셨네요. ^^
    존재는 소유가 아니라 사건으로 규정될 수 있는 것이겠죠.
    쥐었다가도 놓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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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동환 2007.11.26 06:00
    이정원님 정말 부지런하시네요. 저 역시 돌아와서 게시판부터 둘러보고 있었습니다.
    살아가는데 정말 필요한것은 그리 많지도 않은데, 저 역시 자꾸 늘어가는 물건들을 보면서
    이것들이 나의 마음을 빼앗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물론 책도 예외는
    아니지요. 마지막 글이 저의 마음을 파고 드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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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지숙 2007.11.26 06:00
    함께 여행하지 못해 아쉽습니다.
    이 글을 읽고 혹시 나도 저 아이들처럼 1달러를 꽉쥐고 고민하는건 아닌가하고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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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성중 2007.11.26 06:00
    ^^ 1달러와 10달러, 어느 것이 더 중요한 거에요? 저는 10달러를 가지려고 1달러를 손에서 놓는 것보다는, 손에 쥐고 있는 1달러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겠습니다~ 남의 행복(10달러)를 부러워하지 않고 자신의 행복(1달러)에 만족하는 아이들이 제 눈에는 더 이뻐보이거든요~ 세상 사람들이 10달러 인생을 성공이라 부르더라도,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꼭같으면 재미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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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경 2007.11.26 06:00
    성중님의 의견도 좋은 것 같습니다. ^^ 손에 쥔 1달러로 만족하고, 아무런 갈등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것 또한 삶의 지혜고, 능력이라고 생각하니까요.
    문제는, 저처럼 1달러로는 뭔가 섭섭하고, 그렇다고 과감히 떨치고 더 나은 것을 추구하지도 못한 채 어정쩡하게 기회를 날려버리는 어리석음을 반복해서 저지르는 자들인 게죠..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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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성중 2007.11.26 06:00
    ^^ 1달러로는 뭔가 섭섭하고, 그렇다고 과감히 떨치고 더 나은 것을 추구하지도 못한 채 어정쩡하게 기회를 날려버리는 분들.....10달러를 갖은 사람이나 1달러에 만족하는 사람보다 어리석은 사람은 아니라고 봅니다. 다들 소중하신 분들이죠. 스스로를 사랑합시다~^^ (사실, 김민경님께서 하고픈 이야기가 뭔지 알면서, 괜한 태클을 걸었나 싶은 미안한 마음에, 몇 자 덧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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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윤호 2007.11.26 06:00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언제나 간단한 것이 더 어렵고, 기본적인 것이 더 어려운 것 같아요 ^^
    정답은 없겠지요.
    그래도 생각과 실천을 계속하다 보면 나름대로 행복한 길로 접어들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고 걸어가보렵니다 ~ ^^
    고마워요 ~ 민경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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