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공지
2009.01.25 15:00

간밤에 흰눈이 왔어요!

조회 수 3471 추천 수 0 댓글 4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강원도라는 선입견 때문에 눈이 많이 오면 서울에서 전화가 많이 온다. 특히 산간 마을이 폭설로 고립되었다는 뉴스가 나가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동촌리는 산간오지마을이지만 눈이 오면 군청에서 즉각 제설 작업을 해주어서 길 자체가 완전히 막히는 일은 거의 없다. 그리고 그렇게 춥지도 않다. 올 겨울 눈내린 동촌리를 찍어 봤다. (재작년 여름에는 폭우로 동촌리가 고립되었다는 자막 뉴스가 잘못 나가서 피서 숙박 예약을 했던 손님들의 문의전화로 마을 전체가 진땀을 뺐었다. 방송의 힘이란 정말.ㅎㅎ)


사용자 삽입 이미지

                                  새우골 산방 마당에서 바라본 새우골 설경.
       장독대 너머 지붕이 보이는 집은 세철네집. 칠순 넘으신 어르신 내외분이 사신다. 우리집
       농사일은 전담해서 가르쳐 주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새말쪽에서 바라본 파로호 설경.
      간밤 큰 눈에 놀랬는지 배가 뭍으로 올라왔다. 산으로 가시게? '구절양장이 물도곤 어려웨라'
      는 옛 시조도 있는데.... 서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삶의 기본이리라.


사용자 삽입 이미지

       동촌리에는 파로호와 접한 축구장이 있다. 아직 잔듸 구장으로 조성이 되지 않았는데 물이 차
      오르자 수면에 뜬 축구장 처럼 보인다. 공을 차다가 물에 빠지면 어떻게 주워 올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여름에는 수면이 내려가서 축구장과 호수 사이에 공터가 생긴다. 수면에 첫사랑의
      추억처럼 아스라이 물안개가 흐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좌골에서 바라본 파로호 설경. 호숫가에 있는 버드나무들이 물에 잠겼는데 가지에 눈이
      소복히 내려 앉자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 연출되었다. 더구나 나무 그림자가 물에 비치니
      세상 모든 호흡이 멎은 듯 하다. 미워하지 말자. 사랑하며 살자. 화내지 말자.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청년회 총무 대배네 집이다. 굴뚝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솟으니 옛 시절이 생각난다. 아이들은
      눈을 뭉쳐 눈사람을 만들고, 어머니는 부엌에서 고구마를 삶으셨다. 방문을 열면 뜨끈뜨끈한
      구들바닥이 언 손들을 맞이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눈

속의 새우골 산방.
      새로 지은 집이라 아직 어딘지 낯설다. 생자필멸. 새우골 산방도 세월이 가면 주위 풍경과
      자연스레 어울릴 것이다. 적당히 낡아가면서 말이다. 아주 스스럼 없이 자연과 어울릴 때
      쯤 되면 저 밤나무 밑에 내 무덤이 자리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아내는 파파머리가 되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

        눈이 그쳐도 다니는 차 한 대, 사람 그림자도 없어 동촌리는 그야말로 눈 속에 외로이 있다.
        왕왕거리는 도시의 소음에 익숙했을 때는 이런 숨 막힐 듯한 정적이 답답하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이 고요함이 좋다. 도시는 너무 만원이다. 그러나, 그러나  돈은 그곳에서 벌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농촌건강 장수마을 간판과 녹색 체험관 전경. 오른쪽 둥근 간판은 팜스테이 마을 간판이다.
      저 녹색 체험관 1층 대회의실에서 겨우내 부녀회원들의 사물놀이 연습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것이 고요하기만 한 풍경이다. 눈이 징소리, 북소리, 장구소리, 꽹과리 소
      리를 먹어 버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새말 종선네 밭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표고 하우스와 복사나무 설경. 저 나무는 봄이면
      분홍으로 흐드러진다. 그러나 그 때는 이상하게 감흥이 적다. 왜 그럴까? 밭일이 바쁠 때
      라 그렇다.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꽃도 보인다. 겨울엔 한가하기 때문에 감흥이 일어난다.

      도시사람과 시골 사람의 차이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비극의 출발. 시골 사람들이 흙을
      보며 일에 바쁠 때 도시 사람들은 꽃을 보며 감상에 바쁘다. 그래서 감정이 어긋난다. 이
      바쁠 때 유람이냐고 시골 마음이 불편할 때, 이 좋은 꽃도 감상할 줄 모르느냐고 도시 마음
      은 나무란다. 그러나 실은 둘 다 죄없다. 저마다의 삶이 다르기 때문에. 다만 한날 한시에
      같은 것을 느끼기가 어려울 뿐이다.

      이런 눈 덮인 날,  막걸리와 김치쪽에 삶은 고구마를 곁들여서 아랫목에 앉아 한 잔 기울이면
      그 때는 틀림없이 시골이고 도시고 모든 마음이 아름다운 감상에 젖어 들텐데. 아쉽다. 도시
      사람은 이 눈 속에는 시골로 길을 나서지 않는다. 그들은 꽃피는 봄과 잎과 더위 무성한 여름,
      그리고  단풍 붉은 가을을 기다릴 뿐이다. 세월이 흘러도 이 틈은 메워지지 않을 것이다.      

  • ?
    송근호 2009.01.25 15:00
    김용전님! 좋은 사진&글 감사드립니다.

    예전에 학생때 뵙고 했는데 여전히 멋있게 사시니 부러울 따름입니다.
    저도 오늘 서울에서 고향으로 내려오는데 8시간 30분이 걸렸습니다.
    즐거운 구정연휴 보내시길 바라면서 이만 줄입니다.
  • ?
    강신철 2009.01.25 15:00
    처음에는 용전님이 동촌리를 닮아가는가 싶더니 이제는 동촌리가 용전님을 닮아가는가 봅니다. 순서에 상관없이 둘 다 아름답습니다. 용전님의 눈에 비친 동촌리 겨울풍경도 아름답고, 오두막 연기에서 어린시절을 읽어내는 용전님이 마음도 아름답습니다. 저 눈위에서 같이 뒹굴고 싶도록 아름답습니다.
  • ?
    이병록 2009.01.25 15:00
    겨울에는 따뜻한 봄날을 기다려왔습니다.
    그러나 이번 설날 간헐적으로 내리는 눈을 보면서,
    하루 종일 눈이 내리고 쌓이는 진짜 겨울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
    임석희 2009.01.25 15:00
    설경... 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네요. 눈과 함께, 김용전회원님과 함께 마음이 절로 푸근해집니다. ^^* 좋은 구경시켜주셔서 감사드려요~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75 공지 예쁜 사랑을 이어가는 10가지비법 부쓰 2018.10.23 155
74 공지 균형독서 포트폴리오 14 강신철 2009.02.16 4111
73 공지 [re] 균형독서 포트폴리오에 답하며 3 김하늘 2009.03.16 3117
» 공지 간밤에 흰눈이 왔어요! 4 김용전 2009.01.25 3471
71 공지 博覽强記 - 엘리티즘을 경계한다 13 강신철 2009.01.22 3795
70 공지 2008, 나의 백북스 활동 12 임석희 2008.12.28 4241
69 공지 <뇌 생각의 출현>을 읽고 8 조동환 2008.11.03 4608
68 공지 최진실의 죽음에 부쳐 3 김용전 2008.10.04 4480
67 공지 동양인과 서양인의 같아서 생긴 이름부르는 방식의 차이. 6 임석희 2008.08.30 4900
66 공지 남자는 남자를 모른다 1 김용전 2008.08.29 4224
65 공지 설탕과 미네랄과 건강 6 전동주 2008.08.14 4358
64 공지 자연은 배가의 법칙을 사용한다 4 전동주 2008.08.14 3832
63 공지 나무 이야기 5 김용전 2008.07.26 4069
62 공지 모정의 세월 5 김용전 2008.06.14 4875
61 공지 자연속에서 울다. - 황룡골 기행 - 10 임석희 2008.05.02 5693
60 공지 편지. 7 이소연 2008.04.24 5050
59 공지 교육정책 아이들 이야기도 듣는다면 - 독후감 9 김용전 2008.04.18 5323
58 공지 2007년을 보내며-책을 다시 읽기 시작하다- 3 임석희 2008.04.15 4556
57 공지 스튜어트 에이버리 골드의 메시지 3 김동성 2008.03.31 4441
56 공지 [필진]외나로도 생활 1년을 돌아보며...(마무리) 6 서윤경 2008.03.30 4804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 4 Next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