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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14 20:23

물방울 유체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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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울 유체역학


 


강인석 교수 포스텍
 


서로 다른 전하(+전하, -전하)로 대전되어있는 두 개의 물방울이 서로 접근했을 때 그 둘은 합쳐져서 하나의 물방울이 될까, 아니면 다시 튕겨져서 나올까? 이 질문을 하는 이유는 두 가지 이다. 한가지 이유는 이 문제가 보기보다 어렵고 복잡해서 답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고, 다른 한가지 이유는 이 문제가 과학적으로 그리고 공학적으로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전된 물방울의 거동은 구름 속에서 빗방울의 형성과정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주기 때문에 근대 이후부터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연구되어왔다. 또한 원유(crude oil)의 정제공정에서도 전기장 하에서 물방울의 거동에 대한 연구가 중요한 역할을 가진다. 원유 정제공정에서는 필연적으로 원유 속에 다량의 물방울이 생길 수 밖에 없는데 이를 제거하는데 전기장이 사용된다. 원유에 전기장을 걸어주면 그 속에 있는 작은 물방울들이 서로 접근하여 합쳐지게 된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았고, 이렇게 전기장을 이용하여 합쳐져서 크기가 커진 물방울들은 원유 속에서 더 빨리 가라앉기 때문에 쉽게 분리해낼 수 있게 된다.



 


빗방울의 형성과정과 원유 정제공정에서의 활용이 이 질문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고전적인 이유라면, 최근 급부상하는 따끈따끈한 분야도 있다. 바로 10여 년 전부터 각광받고 있는 연구분야인 랩온어칩(lab on a chip)과 그와 관련한 디지털 미세유체학(digital microfluidics)이다. 스타워즈 에피소드 1을 보면 제다이 콰이곤 진이 어린 아나킨 스카이워커의 미디클로리언 수치(일종의 초능력 수치)를 측정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아나킨을 실험실로 데려가서 주사기로 피를 뽑아서 시험장비로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집에서 손안에 들어오는 아주 작은 장비로 측정한다. 아나킨은 잠깐 따끔한 것만 느낄 뿐 무엇을 했는지조차 알 수 없다. 이것이 랩온어칩으로 구현하고자 하는 최종적인 목표이다. 즉 아주 적은 양의 시료를 이용하여 화학적, 생물학적 실험을 작은 크기의 칩 위에서 구현해내는 것이다. 영화에서 본 것과 같은 장비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매우 적은 양의 시료를 옮기고, 섞고, 분리하고, 분석하는 기술이 필요한데 여기에 필요한 기초연구가 미세유체역학(microfluidics)이다.


 


크게 두 가지 접근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수도관처럼 채널을 파서 그 속에 시료를 연속적으로 흘려주는 방법이 있고, 다른 하나는 시료를 물방울 형태로 만들고 시료와 섞이지 않는 다른 유체 혹은 공기 중에서 이동시키는 방법이 있다. 물방울이 하나하나 불연속적으로 떨어져있기 때문에 후자를 디지털 미세유체학(digital microfluidics)’이라고 부른다. 연속적으로 유체를 흘려주는 방법(continuous-flow microfluidics)에 비해서 물방울을 이용한 디지털 미세유체학이 가지는 장점은 작은 물방울을 이용하기 때문에 훨씬 적은 양의 시료가 사용된다는 점과 사용되는 장비가 비교적 단순하다는 점, 그리고 시료의 오염을 방지할 수 있다는 점이 있다.



 이제 문제는 작은 물방울을 어떻게 옮기고, 합치고, 분리하고, 분석할지 그 방법에 있다. 지금까지는 크게 전기습윤(electrowetting)을 이용한 방법과 유전영동(dielectrophoresis)을 이용한 방법이 사용되었다. 전기습윤을 이용한 물방울의 제어는 제어속도가 빠르고, 물방울을 자유자제로 움직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물방울이 바닥 면에 붙어서 이동하기 때문에 시료가 오염될 수도 있다는 단점이 있다. 유전영동을 이용한 방법은 물방울에 작용하는 힘이 전기장의 구배(기울기, gradient)에 비례하기 때문에 전극 배치가 중요하고, 제어의 자유도가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이에 우리 연구실에서 물방울을 제어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안하였다. 물방울을 먼저 대전시키고 대전된 물방울에 전기장을 가해 움직이도록 하는 방법이다. ‘대전된 액적의 전기영동’(electrophoresis of charged droplet)이라고 명명된 이 방법은 유전영동과 달리 복잡한 형태의 전극 없이도 물방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물방울이 다른 시료에 오염될 확률도 거의 없다. 여기서 우리는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게 된다. 새롭게 제안된 이 방법으로 물방울을 합치는 실험을 하는 도중 두 물방울이 합쳐지지 않고 튕겨져 나오는 현상을 발견한 것이다.


 


서로 다른 전하로 대전되어있는 두 개의 물방울이 서로 접근했을 때 그 둘은 합쳐질까, 아니면 다시 튕겨져 나올까? 간단하게 대답하자면 지금으로써는 아직 잘 모르겠다이다. 언뜻 생각해보면 물방울이니까 당연히 합쳐질 것으로 생각이 된다. 그러나 필자들이 몸담고 있는 전산유체연구실을 포함한 여러 연구그룹에서 실험적으로 두 물방울이 합쳐지지 않고 반발하는 경우가 발견 되었고 지금까지도 그 이유를 해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질문은 간단하지만 사실 이 문제는 유체역학에서도 풀기가 난해한 자유계면문제에다가 정전기학(electrostatics), 그리고 전기화학(electrochemistry)이 합쳐진 매우 복잡한 문제이다. 따라서 실험적으로도 이론적으로도 밝혀야 할 부분들이 아직 매우 많이 남아있다. 이처럼 작은 물방울에도 여러분들의 도전을 기다리는 많은 난제들이 숨어있다. 그러니 선배들이 내가 풀 문제들을 다 풀어버려서 난 더 이상 풀 문제가 없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접어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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