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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23 16:07

거름을 나르며

조회 수 4663 추천 수 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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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봄이 왔다. 받아 두었던 거름을 외발 수레로 밭에 편다. 작년 거름은 덜 썩은 놈을 가져오는 바람에 구린 냄새가 진동했었는데, 올해 받은 거름은 아주 곰삭아서 냄새가 나지 않는다. 게다가 삽질도 쉽다. 양갱처럼 뭉텅 뭉텅 잘라지거나 카스텔라처럼 부들부들한 것이, 짚 풀들이 덜 썩어서 머리채처럼 삽에 감기던 작년 거름하고는 영판 다르다. 외발수레로 나르기가 쉬울 뿐만 아니라 밭에 펼치기도 쉽다. 효능도 좋다. 한 마디로 좋은 거름이다.





 그런 거름을 나르며 사람을 생각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냄새를 피운다. 부자는 돈 냄새를 피우고, 권력자는 힘의 냄새를, 배운 사람은 지식의 냄새를, 연예인은 인기의 냄새를, 출세한 사람은 출세의 냄새를 피운다. 사람도 거름과 같다. 어설픈 부자나, 어설픈 권력자, 어설픈 지식인, 어설픈 인기인이 냄새를 더 피운다.





 곰삭은 거름처럼 진짜 고수는 냄새를 피우지 않는다. 조선 세종 때 정승인 맹사성은 사람됨이 곰삭은 거름과 같아 냄새를 피우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 맹 희도가 있는 온양을 자주 찾았는데 하루는 이 소식을 듣고 눈도장을 찍기 위해 양성, 진위 두 고을 원님이 길목을 지켰다. 그런데 웬 허름한 노인이 무엄하게 소를 타고 원님들 앞을 지나가는 게 아닌가? 원님이 직접 나설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서 하인을 시켜서 쫒아가 혼을 내주도록 했다. 그런데 그 하인이 돌아오더니 ‘원님에게 가서 그냥 맹 고불이 지나갔다고만 전해라’고 하더라는 게 아닌가? 두 원님이 어마 뜨거라 하고 줄행랑을 치다가 인부(印符)를 연못에 빠트렸는데 그 뒤로 사람들이 그 연못을 인침연(印沈淵)이라고 한다던가.





 새 정부에서 장관들이 현장을 점검한답시고 돌아다니느라 바쁘다고 한다. 그런데 뉴스를 보니 ‘취재진을 달고 현장을 누비는데 한 곳에 머무는 시간이 너무 짧아 과연 실효가 있는지?’라고 기자가 걱정을 했다. 그러나 기자가 그렇게 걱정해도 장관들은 끄덕 없을 것이다. ‘나 이렇게 다니고 있소’라고 냄새를 피우는 데는 충분한 시간이니까 말이다.





 유능(?)한 사람들은 냄새를 피우는 데에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냄새를 맡는 데에도 기막힌 재주가 있다. 돈 냄새, 권력의 냄새, 인기의 냄새, 출세의 냄새를 잘도 찾아서 잽싸게 움직이는 것이다. 세상이 다 그렇다. 고급차를 타고 가면 ‘사모님’이라 부르고, 소형차를 타고 가면 ‘아줌마’라고 부른다는 우스개 아닌 우스개는 냄새를 잘 맡는 우리 인간들의 슬픈 속성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것이다.





 냄새를 잘 피우는 고수들일 수록 냄새를 맡는 데에도 역시 고수이다. 그런데 이 냄새 잘 맡는 고수들의 문제는 냄새가 없는 사람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에는 먹통이라는 사실이다. 한 장관이 새우깡에 들어간 생쥐 머리를 두고 걱정하는 대통령 앞에서 ‘생쥐를 기름에 튀겨 먹으면 건강에 좋다 더라’는 이상야릇한 농담을 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장관 쪽은 해명을  하고 여론은 장관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목하 난리들인데 이 또한 그 장관은 끄덕 없을 것이다. 아무런 냄새도 없는 일반 백성들 들으라고 한 소리가 아니니까 말이다. 다만 권력의 냄새를 맡고 그 한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 무심코 내뱉은 말일 뿐이었을 테니까. 누구를 향해서, 누가 들으라고 그런 말을 했는지는 다 알 것이다.





 성경에 ‘가장 가난한 형제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라고 한 예수님의 말씀은 언제 어디에고 예수님이 다른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뜻인데 도대체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는지, 예수님이 진짜 고수라 냄새를 피우지 않으니 알 수가 없다. 이 나라 대통령이 교회 장로라 하니 냄새를 피우지 않는 예수님을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잘 찾아내기만을 기대할 수밖에.





 봄비가 내린다. 밖으로 가자. 산골에 앉아서 거름을 펴면서도 쓸 데 없이 정치꾼들 생각이나 하고 냄새나는 글을 써 대면서 작가의 냄새를 피우는 이 몸이나 씻으러 나가자.  


 

       


**사진은 새우골 산방 텃밭에 거름 펴는 그림입니다. 한 차에 30  만원 하는 축사 거름을 매년 받아서 씁니다.




 


출처:http://birdsingvalley.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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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석희 2008.03.23 16:07
    모스크바 대학앞은 모스크바에서 전망이 가장 좋은 곳입니다. 관광객이 그냥 지나치지 않는 대목인 거죠. 그래서, 좌판이 무자게 많습니다. 지나가는 일련의 관광객 아주머니들이 지나갈때면 어설프게 소리치는 우리 말을 듣습니다.
    "안 비싸요, 싸요, 싸!!!"
    여기까지는 애교로 봐 줄만하다. 그런데 가관인 것은 다음 이 한 마디다.
    "언니, 여기 안 비싸요~!!!"

    노란 머리의 파란 눈동자인 슬라브인들이 40-50대 한국인 아주머니에게 외치는
    "언니~!!! 안 비싸요!!!" 라는 이 한마디.

    혹자는 외국인이 한국말을 다 한다며 반가와하지만, 난 이 한마디가 참으로 씁쓸했다. 그 이유를 이제야 알것같다. 이 한 마디는 ** 냄새 맡고, ** 냄새 풍기는 모습의 전형이던게군... 쯧쯧.

    =======
    토요일/일요일 강연 주제는 모두 김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삶에 있어서의 곰삭기"였습니다. 키치를 넘어가는 삶의 곰삭기. 곰삭은 삶을 살도록 다시 나 자신을 한 번 또 살펴보게 됩니다. 좋은 글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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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록 2008.03.23 16:07
    정년 후에 시골에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타샤의 정원인가 하는 책에 보니 정원이 아주 잘 가꾸어져 있던데, 그런 정원을 가꾸면서 토끼를 기르면서, 주기적으로 서우(書友)를 만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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