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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도

궁정과 귀족 계급의 모든 사람들의 사고 속에는 기사도적 이상이 가득 배어 있었다. 삶의 이상으로서의 기사도 개념은 본질상은 환상과 영웅적 감동에서 나온, 그러나 외관상은 윤리적 이상을 담당한 하나의 미학적 이상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미의 위치까지 올려진 교만이었을 뿐 완벽하게 윤리적 기능 높이에 이를 수 없었다. 그들은 기사도적 이상이라는 허구를 사용하여 명예와 덕행이라는 아름다운 이미지의 환상을 만들어 냈다.


기사도적인 영광과 명예의 추구는 영웅숭배와 관계가 깊다. 아더왕, 시저, 다윗, 헤라클레스, 한니발, 알렉산더 등 고대 영웅들의 멋진 무용담을 의도적으로 모방하였고, 거대한 명예를 갈망하였으며, 이점이 그들을 전쟁터로 내모는 요인이었다. 현실은 난폭함과 탐욕이 그토록 흔했음에도 기사들에 관한 전기는 경건함과 엄격함과 충실한 감정을 이상적으로 그리고 있다.


대표적인 템플기사단은 군대와 종교적인 것이 결합한 기사단으로 금욕적인 요소가 강력하였다. 가진 것이 전혀 없는 고결한 전사의 이상이었다. 이러한 금욕주의와 용감한 희생정신은 하나의 에로틱한 기반을 갖는다. 그것은 관능적 욕망이 자기희생으로 변하는 것이다. 위험을 무릎 쓰고 고통을 견디며 강인해 보이려는 청년기 특유의 열망이 보다 고양되고 승화된 형태로 변모된다. 이러한 에로티즘은 문학에서 뿐만 아니라 스포츠, 특히 기마시합에서 고도로 드라마틱하게 표현 된다.


기마시합에서 기사는 자기가 사모하는 부인의 베일이나 옷을 걸치고 나온다. 시합이 끝나갈 무렵에는 부인의 옷이 거의 남아나지 않아 어깨와 팔이 다 드러날 정도다. 이러한 격정적 분위기는 가끔씩 명백한 간통사건을 유발시켰으므로 교회는 기마시합을 경멸하였다. 그러나 귀족계급만은 기마시합과 마상경기에 가장 큰 중요성을 부여하였으며 귀족적 오만과 사랑 그리고 예술 등이 그 시합들에 짜릿한 묘미를 부여했다. 그들은 호사스런 마상 시합을 통해 스스로 아름다운 삶을 창조해 냈다


초기의 기사단은 성지에서 크게 활약하면서 정치적이고 재정적인 면에서 중요하였다. 점점 정치적 군사적 중요성은 거의 상실되고 단지 일종의 고상한 유희로 전락하고 만다. 14세기부터 기사단 창설이 유행처럼 되었고 모든 제후와 귀족들이 자신의 기사단을 갖고 싶어 했다. 사소한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서도 기사단이 만들어 졌으며 일종의 클럽, 동업조합에 불과한 경우도 있었다. 공언하는 바는 대단히 높은 윤리적 정치적 이상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단지 꿈과 환상, 헛된 기도에 불과하게 된다.


기사도의 서약식은 기사가 영웅적인 행동을 수행하겠다고 선서하는 맹세의 한 형식이다. 종교적이고 윤리적인 의미였으나 동시에 로마네스크하고 치정적인 성격이 공존하고 있었다. 따라서 궁정적 오락거리로 전락할 수 있다. 서약은 삶을 하나의 엄숙한 이상으로 봉헌하는 것이었지만, 용기, 사랑, 국가니 하는 것을 조금은 경시하는 비웃음이기도 하다. 점점 놀이요소가 강해지면서 궁정축제에 윤을 내는 방편에 불과하게 되었다.


기사도적 서약은 삶의 장식으로까지 고양되었다. 위험에 처할 때나 격한 감동을 느낄 때 맹세를 하는 습관이 생기고 식사도중 금방 먹어 치울 가금 한 마리를 놓고도 맹세를 한다. 신에게, 동정녀 마리아에게, 귀부인들에게, 새에게 닥치는 대로 맹세한다. 꿩의 맹세, 왜가리의 맹세, 공작새의 맹세.... 맹세의 금기는 특히 잠자리와 식사에 관련된다. 언제까지는 침대에서 자지 않겠다거나, 고기를 먹지 않겠다거나, 면도를 하지 않겠다거나, 말총 고행옷을 입겠다거나...


모든 것에 싫증이 난 귀족계급은 이처럼 자기 스스로의 이상을 비웃는다. 모든 부로 자신의 영웅주의 꿈을 치장하고도 결국 삶이 그다지 아름답지 못하다고 여긴 귀족계급은 스스로 그것을 비웃는다.


결투는 정치적 선전을 강하게 느끼게 하는 기사도적 픽션이다. 제후들의 장황한 결투 준비 과정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진짜 싸울 의도는 없다.  전쟁을 위해 내 한 몸 바치겠노라는 결투신청, 결투를 위한 준비들 -값비싼 장비, 웅장한 의상, 천막, 기, 휘장, 갑옷, 연습- 그러나 결투는 결코 실행되지 않는다.


특히 전쟁에서는 기사도적 이상과 현실의 첨예한 갈등이 드러난다. 기사도적 정신은 미학을 위해서 전략을 희생시키기 까지 한다. 낭만적 모험에 자신들의 목숨을 내맡긴다. 얼마 이상은 절대 후퇴하지 않기로 맹세한다든가, 전투복 차림으로는 결코 후퇴하지 않는다든가, 측면공격은 수치로 여긴다든가, 반드시 평원에서만 싸우겠다든가 하는 이상한 규칙들로 인해 많은 목숨이 희생된다.


점점 이 같은 용맹의 과시에 대해 비난이 표현되고 기사도 정신은 군인정신으로 대체된다. 그렇다고 기사도적 이상이 덜 중요해진 것은 아니다. 전투 전과 후에는 반드시 서열 승진의 의식들이 행해지고 전투는 늘 의식에 의해 신성화된다.  때론 이 의식은 궁정의 축제를 방불케 한다.


귀족 자신들도 전쟁 생활과 기마시합의 겉만 번지르한 그 궁핍함과 허구성을 간파한다. 기사도에 대해 조소와 경멸 밖에 갖지 않은 시니컬한 정신도 나타나게 된다.


난폭하리 만큼 격렬했던 중세의 정신은 어쩌면 기사도적 이상 같은 지나치게 높이 설정된 이상에 의해서 밖에는 묶어 둘 수 없었는지 모른다. 사회적 이상이 초월적인 미덕을 요구할 수록, 현실과는 그만큼 불일치가 커진다. 결국 기사도적 이상은 가장 직접적인 것에는 눈을 감고 가장 큰 환상에 스스로 내맡기는 한 독특한 시대에 의해서만 경험될 수 있다. 새로운 시대는 이처럼 지나치게 높은 열망은 버리고 보다 절제되고 세련된 젠틀맨의 전형으로 대치된다




사랑


궁정사랑의 주요 테마는 채울 길 없는 갈망이다. 여성 숭배, 모든 보상을 포기한 숭배가 이 관능적 사랑에서 나온다. 사랑은 미학적이고 윤리적인 모든 완성이 피어나는 꽃밭이 되었다.


중세말기 귀족적 사랑의 관념을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은 한 것은 <로망 드 라 로스>(장미로망) 라는 책이다. 1240년 기욤 드 로리스에 시작 되어, 1280 장 드 묑에 의해 완결된 이 책만큼, 그 후 200년 간,  한시대의 삶에 깊은 영향력을 행사한 책은 없다.


<장미로망>은 성욕의 모티프가 의식적으로 시의 한가운데 위치하고, 신비로 감싸이며 신성한 성격을 덧입는다. 사랑의 감정들과 상황에 대한 의인화는 극에 달한다. 등장 인물들은, 환대, 부드러운 시선, 수치, 공포 등 인간의 감정을 대표하는 것들 곧 알레고리들이다. 알레고리는 중세의 상상력의 모든 요구를 만족시켰고, 이 같은 의인화 없이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기사도적 삶의 이상의 일부를 차지했던 순결하고 충실한 사랑과, <장미로망>의 관능적이고 경박한 사랑. 이 두가지 사랑의 선택에 대한 문학적 논쟁이 뜨거웠다. 기사도적 충실성을 옹호하는 발라드 모음집들이 나오고, <장미로망>을 읽고 분개하는 사람들도 나오지만, 수많은 박학자들이 <장미로망>을 높이 평가하였으며 일종의 숭배를 바쳤다. 마지막 숨을 거둘 때 까지 이것을 옹호하겠다는 말, 글, 편지들의 주장이 잇따른다. 파리대학 학장이요 유명한 신학자까지 이 논쟁에 나서서 <장미로망>에 반대하는 논문을 썼는데, 그는  이 책이 페스트와 같으며 모든 패덕의 원천이라고 비난하였다. 반면 어떤 이는 이 사랑을 옹호하기 위해 복음서까지 빌어다가 관능적 정열을 이야기 하였다.


귀족들은 이 논쟁에서 성대한 유희의 구실을 찾았다. 억압받는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기사단을 창설하였으며, ‘모든 부인들과 아가씨들의 명예와 찬사와 권고와 봉사’에 기초를 둔 ‘사랑의 궁전’을 세웠다. 궁정의 행정적 전 체계를 모방하여 빛나는 칭호를 받고 임명된다. 그러나 그 궁전의 멤버들은 모두 <장미로망>의 반대자들이 아니었으며 과부를 겁탈하기 위해 유괴하는 자도 있었다.


귀족들의 생활에는 얼마나 많은 사랑의 상징과 표현이 있었던가. 환대니, 달콤한 생각이니 하는 상상속에서 살고 있었고, 옷색깔, 꽃, 장식품 들의 달콤한 의미화도 있었다. 색채는 애정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고, 반지, 베일, 보석, 사랑의 선물들은 나름의 신비한 상징으로 애정관계에서 특수한 기능을 지니고 있었다. <장미로망>의 인물들에 기초한 문답놀이가 유행하였고, 사랑의 운문대화시들, 궤변들, 소송 형식하에 사랑의 질문들을 다룬 <사랑의 판결>까지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사랑의 이상이 갖는 미학적 형태들과 결혼이라는 현실 사이의 관계는 그다지 긴밀하지 못했다. 사랑은 유희, 대화, 문학적 쾌락 속에서만 자유로이 전개 되었다. 사랑의 이상, 충실함과 희생이라는 아름다운 허구는 귀족계급의 결혼을 지배했던 물질적인 사고들 속에는 발 붙일 곳이 없었다. 이 이상은 매혹적이고도 숭고한 유희의 형태로 밖에는 경험할 수가 없었다.




종교


모든 것을 구체적이고 물질적으로 재현하려는 강한 경향은 결국 종교적 사고를 과도하게 드러내고 물질 속에 고정시키는 위험을 가져온다. 신의 은총을 재현한 표지들은 점점 늘어나고 의례적인 행위와 관습들은 광적으로 증가했다. 신학자들은 교회, 축제, 성자들의 계속적인 증가와 조각상, 이미지들의 과도한 범람을 반대했다. 장 제르송은 종교적 표상들의 범람이 교회에 미치게 될 악영향에 대해서 우려했는데 그 자신조차도 그 폐습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어서 성 요셉 숭배를 보급시키는데 앞장서기도 했다.


삶 전체가 종교로 가득차 있었고, 따라서 세속적인 것과의 구분이 사라질 위험에 있었다. 일상의 모든 것이 성화될 수 있었던 반면, 일상생활과 분리 할 수 없이 융해되어 있던 모든 신성한 것들이 낮추어지고 진부하게 되었다. 세속적인 노래가 미사곡으로 작곡되었다. 왕은 곧잘 독생자 그리스도에 비유되곤 했다. 일상적 친숙성과 불경스러움을 나누는 거리가 아예 사라져 버렸다. 종교적 관습은 놀말 만큼 불경스러워 졌으며 혹자는 이러한 불경은 근자에 겪는 시대병으로 간주하기도 했다.


성 유골함의 종교행렬도 퇴폐에 빠져 단지 호색한들과 불량 청년들의 집단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교회는 거의 남녀의 교제장소로 공인되었고, 창녀들까지 손님을 끌기 위해 교회로 왔다. 순례 역시 오락과 연애 행각의 기회가 되었으며 자유롭게 죄를 짓기 위한 순례가 되었다.


신앙심과 일상생활이 파렴치할 정도로 뒤섞이는 이 모든 세속화 속에는 진짜 신성모독을 위한 것보다는 순진한 친숙함이 더 많다. 신앙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회만이 이 같은 변질을 안다. 대담하고 오만방자하고 신성모독적인 언사들을 내 뱉는 습관이 귀족부터 하층민에까지 확산되었는데 이러한 불경어들의 유행은 깊은 신앙심에서만 튀어나오는 것으로 가장 사소한 것들 속에서도 신의 존재를 느낀다는 증거이다.


글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하여 종교에 관한 책은 형상과 이미지가 사용되었다. 형상으로 가득찬 이 책은 무식하고 단순한 사람들에게 성서의 개인적 해석을 야기하였다. 그리하여 성자들을 극도로 숭배하기에 이른다. 특히 성인들의 유골에 대한 숭배와 집착은 경악할 만한 과도함으로 치닫게 되어 스승의 시체를 끓이고 조제하여  말 그대로 절여놓는 일조차 있었다.


각 성인들은 생생하게 형상화되어 각자 개성을 갖추고 있었고, 몇 몇 성인들은 질병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심지어 그 병명을 지칭하기까지 하였다. 피부병은 성 앙트완 병으로, 통풍병은 성 모르의 병으로 등. 종기나 절름발이도 다 성인의 탓이라고 했으며, 설교가들까지 청중에게 특정 성인이 어떤 병을 일으키는 장본인이라고 설교했다. 민중의 정신 속에서 성인들은 마치 신들처럼 살아 있었다.


종교생활의 모순 중 가장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사제 계급에 대한 공공연한 멸시와 큰 존경심이 병립한다는 것이다. 기사도적 이상은 성직자의 이상을 배척하는 요인이 되었다. 게다가 교회 고위층의 세속성과 하위 성직자 계층의 천박함으로 인해서 사제들을 희화하는데 즐거움을 느꼈다. 특히 탁발 수도회의 부흥과 더불어 그들은 예사로운 경멸과 조롱거리로 화한다.


종교생활은 극단적인 대조를 나타낸다. 사제 계급과 수도사들에 대한 경멸과 증오는 그들의 신성한 직무에 대한 깊은 존경심의 반대 급부일 뿐이다. 종교적 의무들도 마찬가지여서 순진한 물질주의가 가장 깊은 종교심들로 교대로 나타난다. 제후와 영주들에게  신앙심과 향락과 잔인성은 상상 못할 정도로 혼합되어 있다. 호사스런 축제와 수많은 사생아, 교활한 정치와 극도의 방자함 속에서도 기도와 금식, 수도원 생활 등 깊은 신앙심이 표출되었다. 이는 위선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근대정신으로는 생각 할 수 없는, 정신적인 양극 사이의 긴장으로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왕국과 대립된 죄악의 세상이라는 개념 속에 완벽한 이원론이 존재하는 것이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그리스도의 이미지는 사람들의 영혼 깊숙이 스며들었고 그리스도 수난에 대한 비장한 감동은 끊임없이 증가 되었다. 이러한 종교적 감수성은 네덜란드에서는 경건주의 운동으로 규격화된 형식을 취한 반면 프랑스에서는 훨씬 더 격정적이고 과장된 형식에 이르렀다. 도처에서 민중 신앙의 위험들이 목격된다. 신비주의와 권태가 결합한다. 많은 사람들이 적절한 지도도 받지 않은 채 혹독한 금식과 지나치게 긴 철야, 그리고 뇌를 혼란케 하는 눈물에 골몰하고 있었다. 무지한 신앙은 광기에 임박해 있었다.


극단적인 신비주의적 열광이 상징적 이미지들로 표현 되었다. 사람들은 성자와 이단자에게 똑같이 교화 받았으며, 성녀와 이교도와 위선자들을 구분하지 못했다. 교회는 윤리적 교리적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에도 성스러운 사랑을 대상으로 한 지극히 관능적인 환상의 표현에 대해 극도로 관대했다. 신의 사랑은 취기나 배고픔의 이미지로,  나아가 피의 관능의 이미지와 성적 환상으로 그려지면서 강렬하게 채색된 신앙의 타락이 표현된다.

예술

 15세기 프랑코 부르귀뇽 문화는 웅장함이 아름다움을 압도하는 문화였다. 예술은 정신의 충실한 거울로서 그 시대 사고의 특성인, 즉 모든 관념에 일정하게 정의된 형식을 부여하려는 욕구, 상상력의 충일함, 지나치게 극단적으로 체계화 하는 성향 등이 예술 속에서 그대로 재발견된다. 형식, 형상 혹은 장식들이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형식은 점점 세부적이 되고 모든 표면에 장식이 없는 곳이 없다. 그것은 조락기 문화들이 갖는 특성인 공백에 대한 두려움이 지배하는 예술이다. 화려함과 아름다움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순수하고 자유로운 예술에서 멀어질수록 형식적인 장식적 모티프들의 침식은 강화된다. 조각, 부조, 직조기법, 의상, 헤어스타일 등에서 과장과 과도함은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며, 이 모든 장식은 사회적 계급과 신분을 의미했다


극심한 사치취향은 궁정축제에서 그 절정에 달한다. 일상적인 비참상이 무겁게 내리누를수록 집단적 축연들은 필수적인 것이 되며, 그 방법들 역시 즐거움의 도취와 현실의 망각을 주도록 더욱 강렬해야 한다. 그것은 아름다움에 의해 고상하게 치장되어야 하며 집단적인 쾌락행위에 의해 양식화되어야 한다. 축제에서 사람들이 특히 추구한 것은 기상천외함과 웅대함이었다. 이렇게 오만하기 그지없는 사치의 과시는 반 아이크의 그림에서 보이는 부드러운 고요와는 절대적인 대조를 보인다. 그러나 바로 그들이 반 아이크의 후원자 였다.


시간은 우리가 취향에 따라 지금은 사라진 이 이상야릇한 기괴한 옷차림과 잡동사니들과, 우리에게 남아 있는 고도의 몇몇 걸작품들을 구분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은 15세기 사람들에게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예술적 삶은 사회적 삶과 아직 분리되지 않은 상태에 있었다. 예술은 무언가에 소용이 되어야 했다. 예술의 사회적 기능은 위대함을 찬미하고 기증자나 후원자의 개성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일이었다.


교회와 궁정이라는 두 범주 밖에서 삶의 친밀한 그 무엇을 밝혀 주는 드문 걸작품으로  장 반 아이크의 <장 아르놀피니와 그의 신부>초상화가 있다. 거기에서 우리는 가장 순수한 형태의 15세기 예술의 표본을 본다. 대가는 여기서 신적 존재들의 위용을 표현하지도 않았고, 영주들의 오만함에 봉사해야 하지도 않았으며, 자신의 고유한 영감을 따를 수 있었다. 우리는 여기서 그토록 자주 헛되이 중세말의 역사와 문학과 종교 생활 속에서 찾는, 그러나 우리에게는 친숙한 중세의 그 고요한 황혼을 본다. 교회 음악과 민중가요에서도 풍겨나는 그런 행복하고 단순한, 고상하고 순수한 중세를.


그러나 장 반 아이크의 예술은 우리에게 반감만 일으키는 궁정생활 한가운데서 꽃피어났다.  대 화가들의 고용주들은 제후들과 대영주들, 그리고 부르고뉴 시대에 많은 벼락부자들로, 모두가 궁정 주변을 맴도는 사람들이었다.


 반 아이크 형제는 부인할 수 없는 중세의 표징을 갖고 있다. 그들의 예술은 주제에 있어서나, 용도에 있어서나, 표현양식에 있어서나 모두 중세적이다. 세심한 사실주의, 모든 세세한 것들을 정확하게 자연 그대로 복사하려는 열망은 끝나가는 중세정신의 특성이다. 르네상스의 승리는 바로 이 세심한 사실주의를 넓은 몸짓으로 대체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 시대 시들은 지금의 우리에게는 몹시 지루하고 피상적이다. 하지만 동시대인들에게는 회화보다 훨씬 더 찬탄 받았다. 반면 회화는 15세기 사람들을 사로잡던 것보다 훨씬 더 큰 감동으로 우리를 사로잡는다. 이것은 재능의 차이인가? 그것은 말과 이미지가 전혀 다른 미학적 기능을 갖는다는 데 있다


15세기 예술과 문학은 공히 쇠퇴기의 중세 정신의 일반적이고 본질적인 특질을 갖는다. 각각의 세부적인 것들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각 사고와 이미지를 끝까지 전개시키며, 정신의 각 개념에 구체적인 하나의 형상을 부여하려는 경향을.


화가의 세부적인 것의 상세한 이행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성과 하모니가 상실되지 않는다. 무한히 세부적인 것의 분석, 그러나 그렇게도 많은 세세한 것들의 축적 속에서도 톤과 표현의 통일성은 잃지 않는다. 전체적인 효과를 희생시키지 않고 세목들을 상세히 하려는 욕구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것은 화가의 특권이다.


세부적인 것에 대한 똑같은 정열이 문학 속에서 나타날 때는 그 결과가 전혀 다르다. 시인들은 영감을 받은 대상들을 묘사하기 보다는 언급한다. 세부적인 것의 구상도는 질적이기 보다는 양적이어서 단순한 열거에 의존한다. 고로 대부분 유난히 장황하며 침묵의 효과를 알지 못한다. 구성의 전체적인 틀은 그림에서와 같이 세부적인 것들로 가득 차있다. 하지만 덜 조화스럽다.


화가와 시인은 둘 다 자연의 아름다운 경관을 묘사하려고 애쓰면서 세세한 것들에의 집착을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방법상의 차이로 인해 전혀 다른 결과에 이른다. 회화에서는 세세한 것들이 잔뜩 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통일성과 단순성을 잃지 않는다. 반면 시는 단조로움과 무개성과 흔한 관례적인 모티프들의 단순한 열거를 보일 뿐이다. 목가와 봄날의 아침의 묘사로 시를 시작해야 하는 모티프, 통일성이 없고, 세부적인 사건들이 아무렇게나 연이어 나열되고 있을 뿐이다. 노래하는 새들의 이름 하나하나, 벌레들, 개구리들, 농부들...이것들의 끊임없는 나열...


조락기 중세 정신의 근본적인 특징의 하나는 사고의 감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시각의 우세함이다. 사람들은 시각적이 이미지를 통해 사고하고 자신을 표현한다. 회화의 탁월성도 그 점과 관련이 있다. 그 시대 정신기풍에는 회화적 표현이 더 적합했다.


시에 비해 산문은 회화에 더 가깝다. 산문은 시보다 강제적인 모티프들에 구속을 덜 받는다. 훨씬 더 선택이 자유롭다. 산문 작가로 죠르류 샤트랭은 사물의 외부에 대한 빼어난 묘사로 반 아이크를 연상케 한다. 그의 문체는 코끼리처럼 거대하고 장황한 화려한 문제이다.


샤틀랭과 장 반 아이크 사이에는 부인할 수 없는 근접성이 있다. 반 아이크의 제단 뒤 장식벽화-보석을 주렁 주렁 단, 지나친 표현력, 장식들은 샤트랭의 장황하고 과장된 어투에 맞먹는다. 그것은 회화 속으로 옯겨진 수사학이다. 하지만 회화에서는 이 수사학적이 요소가 하위적인 위치를 차지할 뿐인데 반해 샤틀랭의 문체에서는 그것이 주가 된다. 그의 분명한 관찰과 생생한 사실주의는 부풀린 문장과 과장된 말의 홍수 속에 너무도 자주 파묻혀 버린다. 수사학은 그 시대에 관념의 결핍을 보완해 주는 역할을 하였다. 모든 생각들은 기괴한 옷차림을 한다. 있는 그대로 꾸밈없이 성실하게 남아 있는 관념을 하나도 없다. 얼마나 많은 시인들이 인상적인 주제로 시작해서 첫소절이 끝나자마자 곧 수사학에 빠지고 마는가


15세기 정신은 중세의 정신적 건축물을 남김없이 완성시킨 후에 일종의 무기력 상태에 빠졌다고 말할 수 있다. 거기엔 공허함과 메마름이 있다. 사람들은 세계를 의심하고 모든 것은 기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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