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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고전모임


11월 책 돈키호테에 대한 몇 가지 생각과 이야기 거리



돈키호테는 재미있다. 그리고 다양한 소설 실험을 하고 있으며 다채롭다. 690명의 등장인물이 빚어내는 거대한 현실과 환상의 소용돌이다. 지금 봐도 이 소설이 400년 전에 쓰였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열려있다.


1605년에 출판된 1권과 1615년의 2권으로 구성된 돈키호테는 서구문학사에서 최초의 근대 소설, 포스트 모더니즘의 맹아로 평가되며 현재까지도 새로운 해석이 나오고 있다.



1. 1권의 풍차와 거인


1권에서 돈키호테는 들판 위에 서 있는 한 물체를 향해 달려간다. 그의 눈에는 그것이 사악한 거인으로 보이고 산초의 눈에는 풍차로 보인다. 그 물체에 부딪혀 쓰러진 돈키호테는 자신을 시기한 마법사가 그것을 풍차로 바꿔놓았다고 생각한다.



그 물체는 무엇이며 거인과 풍차의 차이는 왜 생겼을까. 소설은 믿음이 실체를 변형시킨다고 말한다. 이어서 사물을 지각하는 우리의 감각 기관이 우리를 속여서 실체를 왜곡시킨다고 말한다.



그 결과 우리의 인식은 실체에 접근하지 못하며, 돈키호테의 거인과 산초의 풍차는 모두가 허상이면서 실체의 조각이다. 이렇듯 우리의 현실은 마법에 걸린 채 허상과 실체 사이에서 떠다니고 있다. 그래서 현실은 여러 층위로 구성되며 그 사이에 진실과 거짓의 절대적 경계를 설정할 수 없다.



풍차와 거인은 '내가 인지한 것은 사실일까'라는 인식론적 질문을 던진다.


특히 1권 5장에서 돈키호테가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라고 말했을 때 '나'라는 주체의 문제는 돈키호테라는 이름으로 모험을 떠난 한 인간의 정체성을 넘어서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까지도 건드리고 있다.



2. 2권의 풍차와 거인


돈키호테 2권에는 이미 출판된 1권을 읽어서 돈키호테의 광기에 대해 알고 있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현실을 인식하는 모양도 다르다. 예컨대 2부에서는 돈키호테와 산초를 포함한 인물들은 들판 위에 서 있는 물체가 풍차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 사람들은 그것이 거인이라고 돈키호테를 속이고, 돈키호테는 마법에 걸려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풍차로 보인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돈키호테를 속이려던 주변 사람들은 나중에 그것을 정말 거인으로 생각한다.



1권의 무대가 하나의 연극이라면, 2권은 연극 속에서 또 다른 연극이 공연되는 모습과 같다. 무대 밖의 세계와 무대 위의 세계가 서로 구분되지 않는 연극 속의 연극이라는 장치에서 파생된 존재의 불확실성은 근대성에 대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3. 청각과 시각 중심의 생각 차이



돈키호테가 풍차를 보고 "거인"이라고 하자, 산초는 "저건 풍차"라고 말한다. 그 때 돈키호테는 "네가 기사소설의 세계를 몰라서 그래"라고 나무란다. 기사소설의 세계란 중세 청각 중심적 인식의 세계여서, 마법사와 귀신이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현실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세상이다.



그러나 시각은 현재와 물질을 본다. 이것이 산초의 눈이다. 청각의 인지 범위는 앞이나 뒤에서 불러도 듣는 360도이다. 눈은 180도를 보지 못한다. 이것은 청각 중심적 인식치를 가졌던 돈키호테와 시각 중심적 인식 세계를 중시했던 그 시대 사람들의 차이였다.



4. 돈키호테의 광기


돈키호테는 그의 낭만주의적 감성으로 현실을 변질시킨다. 여기서 말하는 낭만주의적 감성이란 돈키호테의 사랑과 정열, 분노, 꿈의 화신으로서의 성격을 일컫는 말이다. 돈키호테편에서 보면 오히려 산초가 미치광이이고 제정신이 아니다.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을 믿지 않는 모든 다른 사람들이 미치광이인 것이다. 많은 경우 돈키호테는 자신이 미치광이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돈키호테는 1권 5장에서 "난 내가 누군지 아오"라고 밝힌다.



다시 말해서 자신이 시골 양반 알론소 키하노인 것을 알며, 그러나 자신의 능력과 꿈은 더 이상을 바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돈키호테의 광증은 의도적인 것이다. 그것은 그의 꿈과 이상을 실현키 위한 끝없는 노력의 결과인 것이다.



돈키호테의 정열은 시골 처녀 알돈사를 귀부인 둘시네아로 바꿔놓는다. 자신의 소망과 꿈을 살리기 위해서 시골 처녀는 귀부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변신의 마술은 돈키호테의 광기가 아니라 그의 열망의 소산이다.



5. 실수의 미학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소설에는 작가의 실수가 나온다. 이건 문학이 무엇인가 하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세르반테스의 오류 중에서 가장 흔한 것은 주인공들의 이름이다. 목동의 이름이 돈 안토니오였다가 다음 줄에 돈 페르난도로 바뀐다든지, 시데 아메테가 아랍인이었다가 기분이 나면 라 만차 사람으로 바뀌는 건 예사다. 산초 아내의 이름은 네 번 쯤 바뀐다.



1권에서 시에라 모에라 산 속에서 기사와 종자가 반 쯤 썩은 가방에서 금화를 줍는다. 산초더러 가지라는 대화가 있고 다시 금화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2권 3장에서 삼손 카라스코가 1권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위에 말한 잘못에 대한 세간의 비평을 늘어놓는다. 거기에 대한 산초의 대답 "삼손 씨께서 누가 언제 어떻게 당나귀를 훔쳐갔는지 알고 싶다고 하셨는데, 내 지금 대답하리다." 이리하여 이야기는 또 이야기를 낳는다.



이어서 삼손은 거기서 주운 금화는 어떻게 된 거냐고 묻는다. 다음은 산초의 대답이다.


"내가 썼지요. 나를 위해서도 쓰고, 내 처자식을 위해 썼단 말이오. 그게 그래서, 내가 돈키호테 나리님 모시느라고 돌아다니는 동안 내 아내가 참아준 거요. ...


뭣들 할 일이 없어서 감 놔라, 대추 놔라, 돈을 썼느니 안 썼느니, 내가 내 돈 쓰는데, 웬 간섭들이오?"



이야기가 이 정도에 이르면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세르반테스의 실수가 아니라 그 실수가 빚어내는 또 다른 소설의 미학이다. 뻔한 사실을 두고 세르반테스는 허구의 미학이 소설이라는 것을 가르쳐 준다.



6. 시대 배경


17세기 스페인 제국은 스페인 최고의 문화번영기, 황금세기를 구가했다. 하지만 거지와 도둑이 들끓었고, 귀족계급은 특권층의 혜택을 누렸다. 당시 스페인 제국의 총인구는 3500만 명 정도였는데, 그 중에서 1700만 명은 이베리아 반도 이외의 유럽에서 살던 사람들로 스페인의 순수한 인구는 고작 800만 명을 넘어서지 않았다.



돈키호테가 출간되기 5년 전인 1600년, 종교재판으로 브루노가 로마에서 화형에 처해지고 세르반테스가 죽은 지 2년 째 되는 1616년, 가톨릭 교회는 공식적으로 지동설에 철퇴를 가했다. 1633년 갈릴레이는 종교재판소에 출두해야 했다.



1605년 같은 해에 돈키호테와 리어왕, 맥베스가 동시에 출간되었다.


르네상스의 이상을 가지고 있던 유럽의 희망은 깨어지고 종교전쟁에 휩싸인 유럽으로 바뀌어 갔다. 르네상스의 인문주의가 꿈꾸었던 것은 가능한가? 아니면 의문투성이인가?



7. 돈키호테가 달려 간 곳과 현실


돈키호테가 마을과 책을 버리고 라만차의 들판으로 돌진할 때, 그는 또한 모든 것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성처럼 견고한 중세의 질서정연한 세계를 뒤에 남겨 놓고, 모호성과 변화의 바람에 휘감기고 모든 것이 의심투성이인 르네상스라고 하는 용감한 신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세르반테스의 천재성은 돈키호테의 머리속에 박혀 있는 책 속에 "신념의 현실"을 세우고, 그리고 나서 돈키호테에게 생을 부여해주는 책인 소설 돈키호테속에서 "의심스런 현실"을 세웠던 것이다.



8. 돈키호테의 죽음


2권에서 돈키호테는 귀향하고 제 정신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에게 그 행동은 미친 짓이다. 이제 고향으로 다시 돌아온 돈키호테는 죽는다. 그러나 정말로 죽는 사람은 늙은 시골 귀족 알론소 키하노가 아닐까?



반면 돈키호테는 그의 책 속에서 용감하고 광적이고, 코믹하게 그리고 영웅적으로 영원히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결국 사랑으로 의심은 극복되고 환멸은 사라지게 되는 것은 아닐까?



사실 돈키호테는 둘시네아가 촌뜨기 아가씨 알돈사 로렌소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는 이 사실을 알고 있고 또 받아들인다. 그렇지만 그는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여자, 이 착한 알돈사가 아름답고 정숙하다고 믿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가문이 어찌되었든 무슨 상관이야. 내가 바라는 그녀의 모습을 머리속에 그려보면 그만이지...... 자! 여러분들도 각자 원하는 것을 말해보시오."




<민용태 교수의 '돈키호테, 열린소설'과 김경범 교수의 강의록, 푸엔테스의 '라틴 아메리카의역사' 글을 종합해서 정리한 내용입니다.>

  • ?
    강혜정 2009.10.29 08:46
    올려주신 글을 읽고 나니 어른이 되어 읽는 돈끼호테는 어떻게 다를지 기대가 큽니다. ^^
  • ?
    최한웅 2009.10.29 08:46
    책은 빌려놨는데~ 지금부터 읽어야 모임 날짜까지 다 읽을 수 있겠네요.^^

    돈키호테 정리 감사합니다. 머릿속으로 조금 정리가 되는 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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