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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1 22:03

<빵세> 밑줄 긋기

조회 수 3134 추천 수 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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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우리의 행동과 사고는 영원의 행복을 바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길을 밟게 된다.

그러므로 이 회의 안에 있는 것은 정녕 커다란 불행이다. 그러나 이 회의 안에 있을 때 추구하는 것은 적어도 필수적인 의무다. 이렇듯 회의하면서도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몹시 불행하고 또 몹시 불의하다.


인간에게 자신의 상태만큼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영원만큼 두려운 것도 없다. 그러므로 자신의 존재의 파멸과 영원한 불행의 위험에 대해 무관심한 사람이 있다면 이것은 결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신 없는 비참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것보다 정신의 극도의 결함을 드러내는 것은 없다. 영원을 약속하는 진리를 원치 않는 것보다 마음의 그릇된 성향을 나타내는 것은 없다. 신에 대해 허세 부리는 것보다 비열한 짓은 없다


이치에 합당하다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다음 두 종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라. 신을 알기에 마음을 다하여 신을 공경하는 사람과, 신을 모르기에 마음을 다하여 신을 찾는 사람들.


신을 알지도 않고 또 찾지도 않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들 자신이 스스로 돌볼 만한 가치가 없다고 판정하는 만큼 타인의 배려를 받기에도 합당치 않다.


15. 신을 알지 않고는 행복이 없고 신에게 가까이 갈수록 행복해지며 따라서 궁극의 행복은 신을 확실히 아는데 있다는 것, 그리고 신에게서 멀어질수록 불행해지고 따라서 궁극의 불행은 반대의 것을 확신하는데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인생의 모든 불행 끝에 시시각각 우리를 위협하는 피할 수 없는 죽음이 머잖아 가공할 필연 속에 우리를 몰아넣는다는 사실을 확실히 아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을 만큼 절실한 일이다.


17. 자신의 비참을 모르고 신을 아는 것이나, 이 비참에서 인간을 구하는 구속자를 모르고 자신의 비참을 아는 것은 똑같이 위험하다. 그 중 하나만을 알면 신은 알되 자신의 비참을 모르는 철학자의 오만에 떨어지거나, 구속자 없이 자신의 비참을 아는 무신론자의 절망에 빠진다.


20. 하찮은 일에 대한 인간의 예민함, 가장 중대한 일에 대한 무감각, 이것은 기묘한 전도의 표시이다.


30. 신앙은 증거와는 다르다. 증거는 인간적인 것이고 신앙은 신의 선물이다. 신이 인간의 마음속에 넣어주는 것은 믿음이고 증거는 흔히 수단이다. 그러나 믿음은 마음속에 있으며 ‘나는 안다’가 아니라 ‘나는 믿는다’라고 말하게 한다.


39. 나는 인간을 찬양하기로 결정한 사람들과 인간을 비난하기로 결정한 사람들, 그리고 위락을 즐기기로 한 사람들을 다 같이 비난한다. 내가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신음하면서 추구하는 사람들뿐이다.


53. 헛됨. 이 세상의 헛됨과 같은 명백한 것을 사람들은 너무나도 모르고 있기에 가령 권세 영화를 좇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말하면 무슨 묘한 뜻밖의 이야기가 되어 버린다. 참으로 기가 막힐 일이다.


60. 학문의 헛됨. 외적 사물의 지식은 내가 고난을 당할 때 나의 도덕의 무지를 위로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도덕의 지식은 외적 학문의 무지를 항상 위로할 것이다.


61. 인간의 상태: 불안정, 권태, 불안.


73. 이세상의 헛됨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야말로 그들 자신이 참으로 헛되다.


74. 직업. 영예의 매력은 너무나도 강한 것이어서 사람들은 그것이 결부되어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심지어 죽음까지도 사랑한다.


81. 상상력. 이것은 인간 안에 지배적인 부분이고 오류와 허위의 주관자이며 더욱이 항상 기만하지 않기에 그만큼 더 기만적인 것이다.


바람 따라 어는 방향으로나 나부끼는 가소로운 이성이여!


82. 인간은 은총 없이는 지워지지 않는 자연적 오류로 가득 찬 존재일 뿐이다. 아무것도 그에게 진리를 보여주지 않는다. 모든 것이 그를 기만한다. 이성과 감각, 이 진리의 두 원리는 각기 진실성을 결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상호간에 기만한다.


91. 인간의 가장 큰 저속함은 영예의 추구이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 그의 우월성의 표시이기도 하다. 이 욕망은 인간의 마음의 가장 말살하기 힘든 특성이다.


94. 허영은 사람의 마음속에 너무나도 깊이 뿌리박고 있는 것이어서 병사도 상것도 요리사도 인부도 자기를 자랑하고 자기를 찬양해 줄 사람들을 원한다.


99 자애심과 인간적 자아의 본질은 자기만을 사랑하고 자기만을 생각하는데 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는 자기가 사랑하는 이 대상이 결함과 비참으로 가득 찬 것을 막지 못할 것이다.


결함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은 틀림없이 불행한 일이다. 그러나 결함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 그것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은 더 큰 불행이다. 왜냐하면 의식적인 환각이라는 불행을 더하기 때문이다.


100. 인간은 종종 상상을 심정으로 착각한다. 그리고 회심할 생각을 하자마자 벌써 회심했다고 믿는다.


108. 한 줄기의 강이 가로막는 가소로운 정의여! 피레네 산맥 이편에서는 진리, 저편에서는 오류!


128. 비참. 우리를 비참에서 위로해 주는 유일한 것은 위락이다. 그러나 위락이야말로 우리의 비참 중 가장 큰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을 생각하지 못하게 주로 가로막고 우리를 모르는 사이에 파멸시키는 것은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다.


129. 사람은 의식이 없으면 불행하지 않다. 무너진 집은 비참하지 않다. 비참한 것은 인간  뿐이다.


138. 상상력은 변덕스러운 평가로써 우리의 전신을 가득 채울 만큼 작은 것을 확대시키고 터무니없는 오만으로 자기 기준으로까지 큰 것을 축소시킨다.


160. 권태. 열정도, 할 일도, 오락도, 집착하는 일도 없이 전적인 휴식 상태에 있는 것처럼 인간에게 참기 어려운 일은 없다. 이 때 인간은 자신의 허무, 버림받음, 부족함, 예속, 무력, 공허를 느낀다. 이윽고 그의 마음 밑바닥에서 권태, 우울, 비애, 고뇌, 원망, 절망이 떠오른다.


169. 우리는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 고유의 존재 안에 지니고 있는 삶에 만족하지 않는다. 우리는 타인의 관념 속에서 하나의 상상적 삶을 살기를 바라고 이것을 위해 그럴듯하게 보이려고 노력한다. 우리의 상상적 존재를 아름답게 꾸미고 보존하기에 힘쓰며 실제의 존재는 소홀히 하는 것이다.


214. 우리는 이성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심정에 의해서도 진리를 안다. 우리가 기본원리를 아는 것은 이 후자의 방법에 의해서이다.


심정의 직관을 통해 신에게서 종교를 받은 사람들은 진정 행복하며 참으로 정당하게 믿고 있다.


217. 생각하는 갈대. 내가 나의 존엄성을 찾아야하는 것은 공간에서가 아니라 나의 사유의 규제에서이다. 공간으로써 우주는 한 점처럼 나를 감싸고 삼켜버린다. 사유로써 나는 우주를 감싼다.


218. 인간의 위대는 자신이 비참하다는 것을 아는 점에서 위대하다. 나무는 자기가 비참하다는 것을 모른다. 그러므로 자신의 비참을 아는 것은 비참하다. 그러나 자신이 비참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 곧 위대함이다.


220. 이 모든 비참이 바로 그의 위대를 증명한다. 이것은 대영주의 비참이고 폐위된 왕의 비참이다.


224. 심정은 이성이 모르는 자신의 논리를 가지고 있다.


225. 신을 느끼는 것은 심정이지 이성이 아니다. 이것이 곧 신앙이다. 이성이 아니라 심정에 느껴지는 하느님.


232. 사유. 인간의 모든 존엄성은 사유에 있다. 그러나 이 사유란 무엇인가. 그 얼마나 어리석은가! 사실 사유는 그보다 더 가소로운 것이 없을 만큼 결함을 가지고 있다. 본성으로서는 얼마나 위대한가! 그 결함으로서는 얼마나 저속한가!


235. 온 땅위에, 심지어 우리가 죽은 후에 태어날 사람들에게까지 알려지고 싶어 할 만큼 우리는 오만하다. 그런가 하면 주위의 대여섯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것으로 기뻐하고 만족을 느낄 만큼 공허하다.


236. 인간은 자신을 짐승과 같다고 생각해서도 안 되고 또 천사와 같다고 생각해서도 안 되며, 둘 다 몰라서도 안 된다. 둘 다 알아야 한다.


239. 상반된 것들. 인간은 천성적으로 쉽게 믿는가 하면 의심이 많고, 소심한가 하면 통이 크다.


252. 위대, 비참. 사람은 더 많은 빛을 갖는데 다라 더 많은 위대와 비속을 인간 안에서 발견한다.


253. 인간 내면에서 벌어지는 이성과 정념 사이의 전쟁. 둘 다 가졌기 때문에 인간은 싸우지 않을 수 없다. 어느 한 편과 싸움으로써만 다른 한 편과 평화를 유지할 수 있으므로. 이렇듯 인간은 항상 분열되고 자기 스스로를 거역한다.


267. 위락. 사람은 죽음과 비참과 무지를 치유할 수 없으므로 자기의 행복을 위해 이것들을 생각하지 않기로 작정했다.


269. 나는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한 가지 사실, 즉 그가 방안에 조용히 머물러 있을 줄 모른다는 사실에서 유래한다고 종종 말하곤 한다.


사람들은 장애물과 싸우면서 안식을 찾는다. 그러나 이 장애물을 극복한 다음에는 안식이 낳는 권태로 인해 이 안식이 참을 수 없게 된다. 그래서 거기서 빠져나와 소란을 구걸해야 한다.


인간은 너무나도 불행하기 때문에 아무런 권태의 원인 없이도 그의 구조의 고유한 상태로 인해 권태를 느낄 것이다. 인간은 또한 너무나도 공허하기 때문에 권태의 수많은 본질적 원인들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가령 당구나 공치기 따위의 극히 하찮은 일도 그를 즐겁게 하기에 충분하다.


285. 철학자들은 인간의 두 상태에 적합한 마음가짐을 가르치지 않았다. 그들은 순전한 위대의 감정을 고취하였다. 그것은 인간의 상태가 아니다. 그들은 순전한 비속의 감정을 고취하였다. 그것은 인간의 상태가 아니다. 필요한 것은 본성에서가 아니라 참회에서 생겨나는 비속의 감정이고, 그것은 그 안에 머물기 위해서가 아니라 위대함으로 나아가기 위해서이다. 또 필요한 것은 사람의 공로에서가 아니라 은총에서 생겨나는 위대의 감정이고, 비속의 감정을 통과한 다음이어야 한다.


289. 인간 정신의 위대함은 중간에 머물 줄 아는 데 있다. 위대함은 중간에서 벗어나는데 있기는커녕 거기서 벗어나지 않은데 있다.


298. 회의주의. 이 지상의 모든 것은 각기 일부분은 진실이고 일부분은 허위이다. 본질적인 진리는 그렇지 않다. 그것은 전적으로 순수하고 전적으로 진실하다.... 우리는 진리도 선도 부분적으로만, 그리고 악과 허위가 섞인 것으로만 가지고 있다.


300. 신앙 없는 인간은 진정한 선(善)도 의(義)도 알 수 없다.


301. 참된 본성을 상실하자 모든 것이 그의 본성이 된다. 마치 참된 선을 잃고 모든 것이 그의 선이 되는 것같이.


309. 참된 종교는 인간 안에 위대의 대원리와 비참의 대원리가 있다는 것을 기필코 가르쳐야 한다.


310. 두 부류의 사람들이 신을 안다.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또 높거나 낮거나 그 어떤 정도의 정신을 가졌거나 기꺼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들, 또는 그 어떤 반대에 부딪혀도 진리를 볼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


315. 신이 자기를 시험하는 자들에게는 스스로를 숨기고 그를 찾는 자들에게는 스스로를 나타낸다는 것은 다 같이 진실이다.


320. 위대. 종교는 너무나도 위대하므로 그것이 모호하다고 해서 힘써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자들에게 이 종교가 주어지지 않는 것은 정당하다.


336. 세 부류의 사람들만이 있다. 신을 발견한 다음 신을 섬기는 사람들, 신을 발견하지 못하였기에 온 힘을 다하여 신을 찾는 사람들, 신을 찾지도 발견하지도 않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 첫째 사람들은 합리적이고 행복하고, 마지막 사람들은 불합리하고 불행하다. 중간 사람들은 불행하지만 합리적이다.


342. 우리는 절벽이 보이지 않게 무엇인가로 앞을 가린 다음 그곳을 향해 태연하게 달려간다.


373. 이성의 최후의 한걸음은 자기를 초월하는 무한한 사물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을 아는 데까지 이르지 않으면 그 이성은 허약할 뿐이다.


383. 자신의 비참을 모르고 신을 아는 것은 오만을 낳는다. 신을 모르고 자신의 비참을 아는 것은 절망을 낳는다.


391. 인간은 자연에서 가장 연약한 한 줄기 갈대일 뿐이다. 그러나 그는 생각하는 갈대이다. 그를 박살내기 위해 전 우주가 무장할 필요가 없다. 한번 뿜은 증기, 한 방울의 물이면 그를 죽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우주가 그를 박살낸다 해도 인간은 그를 죽이는 것보다 더 고귀할 것이다. 인간은 자기가 죽는다는 것을, 그리고 우주가 자기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주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존엄성은 사유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스스로를 높여야 하는 것은 여기서 부터이지, 우리가 채울 수 없는 공간과 시간에서가 아니다. 그러니 올바르게 사유하도록 힘쓰자. 이것이 곧 도덕의 원리이다.

  • ?
    서지미 2009.07.11 22:03
    99번에 밑줄 긋기 합니다.
    .....
    99.자애심과 인간적 자아의 본질은 자기만을 사랑하고 자기만을 생각하는데 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는 자기가 사랑하는 이 대상이 결함과 비참으로 가득 찬 것을 막지 못할 것이다.

    결함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은 틀림없이 불행한 일이다. 그러나 결함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 그것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은 더 큰 불행이다. 왜냐하면 의식적인 환각이라는 불행을 더하기 때문이다.
    .....
  • ?
    강혜정 2009.07.11 22:03
    전 60번에 동감했습니다.
    제가 쌓아둔 책을 보니 제 탐욕이 보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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