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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8 01:22

유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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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양과 정의를 고루 갖춘 토마스 모어(1478-1535)는  영국에서 초기 자본주의의 도래와 더불어 초래된 농민들의 빈곤과 전통적인 사회조직 해체를 지켜보게 된다. 그는 민중이 빈곤에 빠져 있는 것과 전통적인 사회의 토대가 허물어진 것을 애통하고 두려워했다. <유토피아>는 그러한 그의 도덕적인 논리에 봉사하기 위한 지적 작업의 결과물이다.  이 책의 존재이유는 공통의 행복이다. 그 시대와는 반대되는 완전한 세계에 대한 상세한 묘사에서 현실 영국 사회에 대한 혹독한 비판이 저절로 드러나도록 쓰여 졌다.

이 책은 1부와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에서는 농토 집중의 단점들과 농부들이 대부분 비참하게 살면서 어쩔 수 없이 도시로 가야하고, 방랑, 구걸 또는 절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특히 비난한다. 고로 모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냉철하게 국가가 부의 생산에 개입할 것을 권장한다.


2부에서는 유토피아의 본질을 제시한다. 행복의 장애물인 사회악은 탐욕과 이기주의이다. 모든 종류의 개인적 소유와 화폐를 소멸시키고 노동을 사회적 책무로 부과한다. 개인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으며 노동의 결실도 소유하지 않는다. 개인은 전체를 위해 노동하고 전체는 각자의 필요를 충족시키고 교육을 시키며 또 노후를 보살핀다. 순번으로 관리 직책을 맡게 함으로서 정치는 사라진다. 그 대신 사회적 통제 하에 생산과 분배를 집단적으로 관리한다. 모든 경제적, 정치적 및 애정상의 경쟁을 근원적으로 없앤다.


이러한 모어의 입장에 대해 어떤 이들은 기독교적 인문주의자로, 또 다른 이들은 공산주의 선구자로 보았다. 그를 기독교 인문주의자로 보는 카톨릭 교회에서는 1886년 복자로 선언하였고, 이어 1935년에는 성인의 반열에 올렸다. 한편 19세기 초 공산주의자들은 모어가 16세기 초 자본주의의 원형적 토대가 성장하는 메카니즘을 해명하고, 농촌 소생산자들에 대한 수탈을 비난했음을 들고, 무엇보다 그가 평등한 사회에 대해 중요성을 두었다고 분석하였다. 모어는 부의 어떤 개인적 축적 가능성도 존재하지 않도록 경제, 정치, 사회 조직이 짜인 사회를 묘사하고 있으며 이는 새로운 사회를 창안하려는 19세기 초의 활동가들에게 확실한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모어를 공산주주의 조상으로 지칭할 수는 없지만 <유토피아>가 불평등한 체제를 단호히 거부했다는 점, 그리고 일부 공산주의자들이 모어의 계승자에게 회귀했다는 점에서 공산주의와 많은 접촉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모어는 공산주의자들에게 때로는 긍정적인 존재로 찬양 받고, 때론 부정적인 존재로 비난 받았다.


16세기 초부터 <유토피아>는 공동체 사회에 대한 모델로 이용되기 시작했다. 17세기부터는 공동체 생활에 대한 계획을 넘어서서 평등주의적이고 공산주의적인 시도들이 나타나며 많은 유사저작들이 쏟아졌다. 이탈리아인 캄파넬라, 프랑스인 모렐리와 마블리 같은 사상가들은 모두 공산주의 사상을 표명했다. 이들은 정치적 평등 뿐 아니라 계급차별의 폐지를 통한 사회적 평등을 요구했다. 19세기 프랑스 공산주의 운동에서 <유토피아>는 사상사에서 하나의 진정한 지지대 역할을 했으며, 건설해야 할 이상 국가로 변모하였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주장한 과학적 사회주의에 이르러서 모어는 몽상가의 위치로 전락 한다. 모어는 자기 시대의 불평등하고 전제적인 사회조직을 비판하기는 했으나 사회적 저항에서 너무나 소심했다는 점, 또한 일부 농민 반란들에서 적대적인 계급 운동의 맹아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비난 받았다. 혁명 엘리트들은 <유토피아>를 오로지 실패한 정치적 방식과 어떠한 행동의지도 없는 문학적 창작만을 보게 만들었으며 유토피아라는 생각 자체를 거부했다.


<유토피아>에 대한 또 다른 비판이 두 가지 있다. 전체주의적이라는 것과 근대적 공리주의라는 것이다.


장 루이 프라는 근대적 공리주의를 “최소한의 노동 및 최소한의 노고와 희생으로 최대한의 쾌락을 얻으려는 것”이라고 정의하며,  모어가 행복에 대한 평가를 합리적인 계산에 종속시켰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학자 알랭 카이예는 공리주의란 이기주의를 인간의 본성으로 보고 자신에게 유익한 것을 위해 계산을 하여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회피하는 공식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모어의 행복 혹은 쾌락이란 어떤 이기심이나 돈벌이와 연관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공리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전체주의는 규칙과 행동에서의 비합리성, 불가해성, 합의의 결여, 공포를 통한 관리가 그 특징이다.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 체제가 행사하는 완전한 지배는 서로 고립되고 공통된 이해관계가 없는 원자화된 개인들로 이루어지는 대중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고 밝혔다. 카리스마적 권력, 단일한 이데올로기, 당파적 공포정치 등이 전체주의적 체제의 기준이다. <유토피아>는 공산주의 사상의 계보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기는 하지만 그것을 전체주의국가의 도식과 혼동해서는 안될 것이다.


모어의 후예들인 19세기 유토피아주의자들-로버트 오웬, 생 시몽, 샤를 푸리에에 대해 살펴보자.


로버트 오웬은 1771년 초라한 환경에서 태어나 산업계에서 자수성가한 유형의 인물이다. 인간의 특성은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확신했으며 선한 인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보았다. 개인의 특성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수적이며 독창적인 교육학을 가진 ‘뉴 래너크’ 학교를 개교하였다. 노동자를 보호하고 이들에게 더 많은 복지를 보장하는 새로운 법제를 구상 하였다. 미국에서 1825년 ‘뉴 하모니’를 개교하여 800명의 공동체생활을 시작으로 유토피아적 실험을 하였다. 오웬의 새로운 교육학은 아이들의 노동에 반대하고, 노동을 규제하고, 노동자들에게 존엄을 부여하고, 성의 평등을 위해 일한다.


생시몽(1760-1825)은 귀족가문 출신으로 공산당 기질이 농후한 사람이었다. 세상의 역사와 세상을 개혁하는 방법들에 대한 저술을 통해 많은 지지자들로부터 재정적인  후원을 받으며 생시몽주의자들을 형성하게 된다. 그는 그동안 존재하고 있던 다른 모든 정치 체제는 예비 체제였으며 산업체제가 인류의 최종의 체제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생시몽주의자들은 기독교와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를 없애고 평화, 노동, 유대감, 인류의 복지를 목표로 하는 기술과 과학의 진보의 세계로 들어가기를 확신했다. 이들은 임금을 받는 노동 대신 협동적 체제를, 소수의 특권대신 모든 이들의 행복을, 개인적 구원을 목표로 하는 기독교의 이기적인 고행 대신 지상의 행복을 찾았다. 이들의 산업주의적 메시지는 유럽 전역에 퍼졌다. 이들은 1848 철도의 국유화, 유산상속의 제한, 은행의 새로운 역할, 수에즈 운하 건설을 추진하였으며 대개는 과학적 발견들을 실질적으로 적용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였다.


샤를 푸리에( 1772-1837)는 누구보다 독창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인물이다. 그는 사람들이 문화에서 해방되어 열정을 자유롭게 표현하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가 가능하다고 확신했다. 열정의 다양한 조합과 조화를 보장하는 공동체 ‘팔랑스테르’를 조직하였다. 행복은 불평등을 필요로 하므로 평등은 전혀 추구되지 않는다. 푸리에의 저서들은 과도한 자유가 넘치며 이것은 초현실주의자들을 매료시켰다. 에로티시즘과 성 본능의 영역에서 모든 타락이 가능하며, 모든 환상이 인정되고, 모든 열정은 생각할 수 있다. 팔랑스테르를 성공적으로 작동시키는 것은 바로 열정이지, 우리사회에서처럼 욕구, 의무, 구속, 이성이 아니다.


콩시데랑, 앙드랭 고댕 등은 푸리에의 제자들로 프랑스와 미국의 달라스, 휴스턴 이주지에 생산협동 조합을 세웠다. 러시아의 체르니셰프스키는 푸리에의 사상에 영감을 받아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새로운 인류>라는 부제와 함께 발표하였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은 새로운 삶의 이상적인 장소를 상상하는데 그것은 완전히 기술적 진보에 의해 자동화된 팔랑스테르이다. 레닌 뿐 아니라 러시아의 수많은 예술가들과 건축가들이 이 책을 열정적으로 읽었으며 정치를 이끌어 간 자들도 결국 체르니셰프스키의 세계를 선택하게 된다.


이처럼 19세기 유토피아주의자들은 곳곳에 그들이 바라는 공동체 사회를 심었다. 혁명보다는 개혁을 선호하며, 계급간의 투쟁을 믿지 않으며, 사회적 보복과 법규 규정을 거부하였다. 자유를 축소시키는 평등보다 조화에 더 기대를 걸었으며, 구체적으로 유토피아들을 실험하였다. 그러나 이런 모든 시도들은 똑같은 장애물에 부딪쳐서 모두 실패하였다. 그들의 공통 장애물은 무엇이었을까?


먼저 역사와의 관계 문제이다. 이들은 영원히 변치 않는 곳에 고정된 멈추어진 유토피아로서 역사에서 벗어난다는 점이다. 시간은 줄기차게 반복되고 있다. 유토피아에 분쟁도, 예상할 수 없는 후퇴도 없는 어떤 다른 곳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역사가 빠진 세상이 된다. 그러한 유토피아에서 사회조직은 스스로 갇히게 만든다.


실현된 유토피아는 강한 카리스마를 지닌 지도자의 의지와 집념 덕분에 존재한다. 지도자가 없는 유토피아는 장군 없는 군대와 같으며 창시자는 거의 종교지도자나 현자와 같다. 이들이 죽었을 때 공동체는 분열되며 난파된 배처럼 방향을 잃게 된다.


성 역시 유토피아 집단 구성원들 간의 분열과 갈등의 근원이 된다. 생시몽주의자들은 성의 자유결합을 주장하였고 샤를 푸리에는 더욱 과감하여 선악구분의 모든 도덕을 비난하고 간통, 동성애, 난교 등을 모두 보장하였다. 반면 도덕적이고 청교도적이며 지나친 정숙을 내걸은 사상가들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똑같은 문제들과 불만족을 야기 시켰다.


마지막으로 노동과 보수의 문제이다. 유토피아에서 노동은 하나의 의무이다. 모두 자율적이고 자급자족 체제이다. 그런데 생산된 부를 어떻게 분배해야 하는가? 평등주의 방식? 각자의 공헌에 비례해서? 각자의 필요에 따라서? 그리고 왜, 누구를 위해서, 어떤 결과를 위해서 일해야 하는가? 노동과 노동의 궁극적 목적성의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이후 유토피아는 모든 주의 및 모든 환상과 결합했다. - 사회주의자, 자유주의자, 아나키스트, 평화주의자, 생태론자 등등. 유토피아가 갖고 있는 풍요로움을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대사상가들 몇 명에게 돌리는 것은 불합리할 것이다. 유토피아는 현실과 다르게 살려는 4세기 동안의 열망을 대변하는 것이다. 일부 유토피아는 완전한 사회에 대한 약속에 매달려 있는 반면 다른 일부 유토피아는 과학, 예술, 건축 그리고 한 시대 속에서 발견 가능성을 통해 미래에 대한 가설을 선택했다. 한발은 현실 속에, 다른 한 발은 다른 곳에 딛고 있는 유토피아는 특정한 시기의 이데올로기적 흐름을 정확하게 반영하며, 근대인의 고뇌와 희망을 파악하기 위한 훌륭한 탐구 자료가 되어 왔다.


현대에 이르러 유토피아는 불가능한 꿈, 실현할 수 없는 계획을 의미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유토피아를 비웃는다. 산업주의가 끝나고 통신 기술이 지배하는 시대가 도래 하면서 유토피아는 자기 반항의 성질, 꿈의 열쇠를 잃어 버렸다. 이상적 사회 건설에 대한 무관심. 유토피아는 역사의 종말을 맞이했는가? 이제 유토피아적 기간들은 지나가고 시장의 옹호만 있는 현실주의 기간이 도래 한 것인가?


그러나 유토피아의 욕구는 잠재되어 있다. 그것은 생존에 대한 본능, 자유롭게 살고 내 뜻대로 살고자하는 의지에 대한 오래된 믿음에 뿌리 내리고 있다. 앞으로의 유토피아는 도시풍이 될 것이고, 공간적 제한을 벗어날 것이며, 기술 문화를 길들일 것이다. 우리가 자기 고유의 역사를 쓰려는 욕망을 아직 가지고 있는가?  바로 그것이 근본 문제이다.


참고문헌
유토피아, 토마스 모어
미래의 기억 유토피아, 욜렌 딜라스 로세리외
폭탄이 장치된 이상향 유토피아, 티에리 파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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