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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고전을 읽는데는 여러 가지 길이 존재합니다.


하나는 시대와 저자를 무시하고, “오늘날의 동시대인이 하는 말”로 읽는 겁니다. 이렇게 읽을 때 종종 역사적, 문화적 거리를 뛰어넘어 지금 여기에 살아있는 생생한 목소리를 듣게 되기도 하고, 반대로 고전이라는 이유로 간과하고 넘어가던 오류와 무지, 한계를 읽게 되기도 합니다. 이걸 “의도적인 시대착오적 방법”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겁니다.


이와는 달리 철저하게 역사적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자료나 조사가 필요하긴 하지만) 저자가 어떤 의도로 이런 글을 썼는지, 누구를 위해 썼으며 그 표현은 당시에 어떻게 이해되었는지를 찾아보는 겁니다. 흔히 문헌학적 방법이라고 하는 것이 여기에 들어가겠죠.


 


이렇게 서로 대조적인 두 가지 방법을 소개했으니 뒤에 나올 이야기는 뻔한 것이겠죠. 좋은 독법은, 이러한 방법론들의 가능성을 모두 염두에 두고 읽는 겁니다. 역사적 한계가 너무 당연한 고전들이 오늘날에도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적극적으로 우리의 지금, 여기로 고전의 텍스트를 끌어오려는 우리의 독해를 통해서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아전인수격의 해석, 무조건적인 긍정과 구제를 피하기 위해서, 문헌학적 독해의 객관적인 잣대가 필요한 것이구요. 간단히 말해, 문헌학적 독해는 텍스트 해석의 조건과 한계를 정해주고, 동시대적인 독해는 창조적 이해를 열어줍니다.


 

물론 이런 방법만이 있는 건 아닙니다. 연구의 관점에서, 영향사적 독해를 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의 텍스트가 시대에 따라 어떻게 이해되었는지를 공부하는 것이죠. 하지만 이것은 텍스트 자체를 문제 삼는 독해가 아니므로 우리 같은 사람들을 위한 길은 아닐 겁니다.

 

1.

원시 유학이라고 부르는 시대는 이른바 춘추전국 시대라고 부르는, 진한 이전의 문헌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이렇게 보는 순간, <대학>과 <중용>은 주요 텍스트에서 빠져 버립니다. 한나라 초기에 씌어진 책이라고 보는 분도 있기 때문이죠(특히 서복관 선생은 <중용>을 한나라 시대 어느 시골의 유생이 쓴 잡저라고 폄하합니다). 사실 <대학>이나 <중용>은 <논어>나 <맹자>에서 보기 어려운 체계화를 보여주기 때문에 원시 유학의 텍스트로 보기는 힘듭니다. 이른바 <대학>의 3강령 8조목이나 <중용>의 형이상학이 후대 유학, 특히 주희 이후로 끼친 영향이 막강하긴 하지만 이것들이 원시 유학의 사상적 엑기스에 포함되는가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뚜웨이밍은 원시 유학의 정신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한 <중용>이나 <예기>에서 필요한 부분을 자유롭게 가져오는 듯 보입니다. 그것은 <논어>나 <맹자>라는 텍스트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비어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겠죠. 공자나 맹자 모두 “아이디어”의 제안자들이므로 유학이 제도화될 때 어떤 형식이 가능한가의 문제에 대해서는 말하지 못했습니다. 제도적 차원의 고민은 한대 이후부터 논의된 것이죠. 비록 맹자가 인성론에 대해 공자보다 더 심화되고 체계적인 논의(사단설)를 제공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러한 주장들의 근거가 되는, 더 깊은 차원의 형이상학적 체계는 결여하고 있습니다. 성리학이 태극, 음양, 이기 등의 개념으로 이루고자 했던 것이 원시유학이 결여하고 있고, 훈고학이 성공하지 못한 형이상학적 원리의 제공이라고 볼 수 있겠죠.

 

하지만 뚜웨이밍과 같은 최근의 신유학자들은 성리학의 형이상학적 기초를 옹호하는 무리한 수를 두기보다는 특정한 형이상학 교의에 의존하지 않는, 즉 여러 종류의 형이상학적 체계와 결합될 수 있는 유학의 정수를 지키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것은 공자와 맹자가 했던 방식대로, 현대인의 일상적이고 상식적인 언어로 그 정수를 재진술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그 재진술된 내용은, 우리 각자가 자신의 철학적 신조들에 의해 재해석해야 할 새로운 텍스트가 되는 것이죠.

 

2

어쨌거나 뚜웨이밍의 글을 고른 이유는 그의 글이 고전 독해의 한 가지 모범적인 사례라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문헌학적인 독해가 텍스트에는 크게 드러나지 않지만 그가 문헌학적 논의와 기초에 정통하다는 것은 굳이 의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가 글을 쓰는 이유가 유학의 가능성을 되살리려는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자의적인 해석을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죠.

 

뚜웨이밍은 고전의 내용을 좀 더 일반화함으로써 그 역사적 한계를 자연스럽게 넘어섭니다. 예를 들어, 공자가 주대의 종법을 되살리려고 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종법의 전통이 구현하려고 했던 이상(이라고 공자가 믿었던 것)을 현대적인 언어로 표현함으로써 그 구체적인 관습의 한계를 넘어 공자의 언행이 우리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도록 할 수 있습니다. 뚜웨이밍의 언어가 평이한 듯 보이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겠죠. 가능한 한 고전의 언어를 오늘날의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적인 언어로 번역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한 가지 사례로 뚜웨이밍은 “군자”를, 공적 지식인(public intellectual)로 정의합니다. 공적 지식인이 되기 위해서는 관료가 되어야만 했던 공자 시대와는 달리, 오늘날에는 다양한 방식으로 공적 지식인의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공자와 맹자가 일차적으로는 행정관료로 여겨진 “군자”를 새롭게 재정의했던 것처럼, “공적 지식인”이라는 개념은 직업적인 학자나 정치가를 넘어선 새로운 지식인상을 요구한다고 할 수 있죠.

 

뚜웨이밍이 들고 있는 군자의 요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politically concerned, socially engaged, culturally sensitive and informed, religiously musical, ecologically conscientious. 즉 정치적인 관심을 갖고 있으며, 사회 참여활동을 하고 있으며, 문화적인 감수성과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하며, 종교적인 감수성을 지니고 있어야 하며 생태학적인 양심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여기서 “종교적으로 음악적”이라는 것은 막스 베버가 “직업으로서의 학문”에서 쓴 표현입니다). 이렇게 이해할 때, “공적 지식인”의 이상을 현실에서 구현해야 한다는 것은 마치 공자가 “주나라 시대의 예절을 되살리려 한 것”만큼이나 절박하고 필요한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3.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할까요. 공자와 맹자의 텍스트를 현대적으로 읽을 때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도덕적 명령의 초월성이며, 다른 하나는 사회에 대한 역동적 관점의 결여입니다.

 

앞의 것은, 공자와 맹자의 텍스트에 종교적 차원을 부여합니다. 중용은 “하늘이 명한 것을 성이라고 하고, 성을 따르는 것을 도라고 한다”라고 말하지만, 결국 이 “하늘”이 뭐냐가 문제라는 것이죠. 도덕적 명령을 내리는 초월적 존재로서의 ‘하늘’이 과연 어떤 존재인가. 공자는 감히 ‘그것은 다름아닌 바로 나 자신’이라고 말하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이해하는 순간 그것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타자로서의 도덕적 주재자’를 끌어들이게 됩니다 - 그것이 인격신이건 아니건 말입니다. 저 위에서 우리를 지배하는 ‘하늘’.

다른 한 가지 대안은 자신의 마음속에 빛나는 도덕률과 눈앞에 펼쳐지는 자연 세계의 법칙성에 항상 경이를 느낀다고 말했던 칸트처럼, 도덕성을 ‘현실적 필요’ 혹은 ‘외부의 강제’가 아닌, ‘우리 내부에서 작동하지만,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낸 것이 아닌 어떤 것’-즉 내재적 초월성-으로 이해하는 것이죠. 그렇게 공자를 읽으면 그가 ‘하늘’을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인격신이나 주재자로서의 하늘이 아니라, 우리 내면의 도덕적 원리가 투사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읽으면 “내가 도덕적 원리를 만들어내었단 말인가?”라는 반문을 피할 수 없죠.

그렇다면 “외부에서 강제로 부여된 것”이 아니면서도 어떻게 도덕적 원리가 “자발성”과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는지가 문제가 됩니다. 유학에서는 인간이 천지와 더불어 도를 구현하는 존재이며, 따라서 인간의 본성이 그러한 것이라는 답변을 주겠죠. 여기서 그 메커니즘 혹은 구조를 물을 때 성리학(양명학을 포함하는 의미에서)의 문제의식으로 돌아가는 것이겠구요. 원시 유학의 텍스트를 되살리려고 할 때, 다시 성리학으로 돌아가는 게 바로 이 때문이죠.

 

유학에서의 목표가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말할 때, 사회가 성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혼자서 어른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가 있습니다. 사실 ‘어른’이라는 건 ‘어른의 카리스마’와 뗄 수 없는 것이어서, 구질구질한 현실 속에서 어떻게 어른의 풍모를 유지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죠. 군부 독재의 현실 속에서 ‘무식한’ 군인들에 의해 발가벗겨져 똥물을 뒤집어 쓴 채 두들겨맞고 거리에 던져진다면 누구도 ‘어른’으로 살아남기 힘들겠지요. 공자가 말년에 치욕스럽게 죽었다면 아마 유학의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 겁니다. 출세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체면을 보존하고 죽었고, ‘성인’급에 올라갈 수는 있었으니까요.

법가들이 유가들의 이야기를 비현실적인 주장으로 치부한 것은 타당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난세에는 법가가, 치세에는 유가가 필요하다는 병용의 지혜가 중국 왕조의 치세술이었죠. 그렇게 본다면 과연 우리 시대에 유학의 지혜가 ‘오래된, 그래서 멀리 내다보는’ 지혜의 원리로 얼마나 힘을 발휘할 수 있는가를 물을 수 있지 않을까요.

유학의 내용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공자 사상에 들어있는 힘이란 결국 인문주의의 ‘지속적이지만 느리게 작동하는’ 미약한 힘이라는 걸 말하고 싶은 겁니다. 공자는 되먹지 못한 제후들 밑에서 어떻게든 벼슬을 해서 세상을 바로잡고 싶다는 이상을 갖고 있었고,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교육 운동을 통한 장기적인 모색뿐이었습니다. 그것이 스스로 말하는 도덕적 원리에 부합하는 방법이었구요. 그래서 격변의 시대에 융통성있는 지침이나 원리를 제공하기 힘든 것이 태생적 한계로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겁니다.

 

음, 이만 쓸께요. 원래는 뭔가 정리해보려고 쓰기 시작했는데, 전혀 다른 소리를 계속 하고 있어서 ....... (먼산)

 

Who's 김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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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ce + imaginatio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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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부원 2009.01.20 12:55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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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현숙 2009.01.20 12:55
    “공적 지식인, 정치적 관심, 사회참여, 문화적 감수성과 지식, 종교적 감수성, 생태학적 양심을 모두 갖춘” 군자의 의미가 정말 현대적으로 되살아나는 느낌입니다. 영국의 gentleman도 울고 갈 총체적으로 완성된 인간이군요. 우리시대에 이런 인물을 가리키는 용어는 뭘까요? 교양인, 예술인, 철학자, 지식인, 모두 뭔가는 조금씩 부족한 느낌이 듭니다. 이런 높은 이상적 인간을 현실에서 구현하고자 했으니 증자가 ‘선비의 짐이 무겁고 갈 길이 멀다’ 했던 말이 이제야 실감이 납니다
    고전을 읽는 두가지 방법 중 뚜웨밍의 해석은 ‘의도적인 시대착오적 방법’이었군요. 그래서 생생한 표현과 현대적인 감각으로 고전이 아닌 듯이 읽혔나 봅니다. 그리고 그 날 언급했듯이 유학이나 한문에 대한 우리의 선입관 때문에 오히려 영어로 풀었을 때 그 뜻이 명확해지는 경우가 “군자”라는 말에서도 확연합니다. 군자라는 고색창연한 단어가 이렇게 세련되게 현대적으로 탈바꿈이 될 수 있게 된 것도 영어번역 때문이겠지요. 어쨌든 고전읽기에서 역사적 문헌학적인 독해와 창의적인 동시대적 독해법 모두를 염두에 두는 것이 중요하겠군요

    공자가 그렇게도 사회 속에서의 인간을 중요시 하였고, 사회를 바로잡고 싶어 했음에도 불구하고 유학이 사회에 대한 역동적 관점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 합니다. 변화에 대한 유연성의 절대부족이 스스로 퇴락의 길을 걸어갔던 원인일까요. 유학의 한계성에 대한 두가지 언급(도덕적 명령의 초월성과 사회에 대한 역동적 관점 결여)-이것은 뚜웨이밍 책에도 없는 말인데 더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지적이네요

    그런데 마지막에 전혀 다른 소리를 하고 계신다는데 진짜 하고 싶었던 얘기는 뭐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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