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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9 04:31

지하생활자의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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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요일 오후의 대학로 거리. 4호선 혜화역 1번 출구를 나와 일석기념관까지 걸어가는 길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조금만 방심하며 걷다보면 사람들과 부딪치기 십상이다. 복잡한 거리에서 마주오는 사람과 부딪칠 것 같은 순간 누가 먼저 피해야 할까? 남자 혹은 여자가? 젊은이 혹은 노인네가? 그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숙고하고 있을까? 어떤 사람이 내 앞에서 걸어오고 있으며 내가 피하던지 상대방이 길을 바꾸어 피하지 않으면 서로 부딪힐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는 듯이 내 갈 길을 거침없이 걸어갈 것인가? 아니면 끊임없이 다른 사람에게 길을 비켜주며 요리조리 피해서 갈 것인가?

우리 21세의 현대 시민들은 이런 문제로 고민하지 않으며, 설사 거리에서 매번 길을 비켜준다하더라도 굴욕감에 고통 받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오히려 서로 먼저 비켜주려다가 더욱 부딪치게 되는 겸손한 교양인이 아닌가.





  그러나 여기 19세기 중반 러시아의 상징도시 페테르부르크에서는 이 문제로 치열하고 집요하게 몇 년간 고뇌한 한 인간이 있다. 그는 가난한 하급서기였으나 지금은 지하생활자가 된지 20년이다. 너무나 자의식이 강해서 정상적으로 살 수 없는 고독하고 우울하고 병적인 인간이다.


  고뇌의 출발은 싸구려 음식점 당구대 앞에서 시작된다.  어떤 장교가 말 한마디도 없이 그의 양어깨를 꽉 쥐고 옆으로 홱 밀어 버리고는 그를 의식하지도 않은 채 제 갈 길을 가 버린다. 차라리 창 밖으로 던져졌던들 그보다 나을 것을... 폭력은 용서할 수 있지만 그렇게도 철저하게 나를 의식하지도 않은 것만은 용서할 수가 없다. 그는 자기가 파리새끼 같은 취급을 받은 것에 대해서 모멸감을 느끼고 증오와 원한을 품게 된다. 그 후 그 장교에 대해서 스토커적으로 집착하고, 찢어지게 가난한 살림 주제에 수위에게 뇌물까지 줘가며  뒷조사를 하기도 하며, 문학적인 결투신청서를 쓰기도 한다. 자신의 결투신청서를 보고 그 장교가 감동하여 자기에게 사과하는 자아도취적인 공상을 하기도 하다가 그것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착각인가를 뒤늦게 깨닫고는 안 부친것이 천하에 다행이었음에 안도하기도 한다. 이렇게 혼자 안절 부절 몇 년을 보내며  원한을 키운다.





  페테르부르크의 가장 현대적인 거리 네프스키에서 우리의 주인공은 장교들에게 쉴새 없이 길을 비켜주며 미꾸라지처럼 통행인들 사이를 헤엄쳐 다닌다. 장교들은 자기 앞에 텅 빈 공간 밖에 없는 듯이 성큼 성큼 똑바로 걸었고 절대로 길을 비키지 않는다. 그가 길을 비켜섰다는 사실조차도 모른다. 그는 그 거리에서 요리 조리 빠져나가는 뱀장어, 한 마리 파리, 텅 빈 공간 등 자신에 대한 다양한 굴욕적 이미지에 괴로움을 느낀다. 그러나 멸시와 모욕을 감수하면서도 기회만 있으면 네프스키 거리로 나간다.





그는 한밤 중에 깨어 미칠듯한 히스테리 발작에 사로 잡힌다.


‘어째서 그놈이 비키지 않고 꼭 내가 비켜야만 하는가?’


‘맞부딪치는 한이 있더라도 일부러 비켜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는 결국 ‘길을 비켜서는 것도 대등하게 하자’라는 장엄한 이상과 복수의 꿈을 갖게 된다.


돈까지 꿔서 고급스런 외투를 사입고, 모든 것을 용의주도하게 준비한 후, 수많은 연습을 거듭한 후에 그 날이 오게 된다. 네프스키 거리에서 몇 년간 집요하게 추적해 오던 그 장교 - 안타까운 것은 그 장교는 이 사람의 존재 자체도 모른다는 것 - 와 대등하게 어깨와 어깨를 서로 부딪쳤다.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완벽하게 대등한 입장이 된 것이다


‘나는 한 발짝도 양보하지 않았으며 공공연하게 그와 대등한 위치에 있게 되었다’





  도스토옙스키가 1864년에 발표한 ‘지하생활자의 수기’의 내용이다.


이 책은 크게 1부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자신의 내면의 사상과 감정을 거침없이 토로하고 있고  2부는 과거에 사건에 대한 회고로서 크게 세개의 에피소드(장교와의 대결, 친구들과의 송별파티, 윤락녀와의 만남)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것은 그 중 첫 번째 에피소드이다. 두 번째 에피소드 또한 이에 못지 않게 굴욕적이고 모욕적이다.





  버만은 이러한 지하생활자의 출현을 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도시의 역사에서부터 읽어내며 그 도시의 정체성을 밝히는데서 부터 시작한다.





  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 황제 표트르1세가 1703년부터 늪지대 한가운데 건설한 도시이다. 유럽의 건축가와 엔지니어에 의해서 전적으로 계획되고 디자인 된 도시이다. 이 도시의 첫 번째 시위는 1821년 의 12월 혁명이며 이것은 아래로부터의 현대화를 주장하는 첫 번째 시도로 평가된다. 푸시킨의 ‘청동기마상(부제:페테르부르크 이야기),1833’ 은 이 시기의 페테르부르크의 전체적인 생활사가 집약되어 있고 구체화되어 있다.





  니콜라스1세(1825-1855)의 30년간의 통치 기간은 암울했던 시기이다. 페테르부르크의  서구로 향한 창은 폐쇄되었으며 억압정치와 공포정치의 기간이었다. 유럽에서 처럼 경제발전이 정치적인 개혁을 야기 할 것을 우려하여 경제발전이 극도로 억압되었다. 이 시기에 고골리와 도스토옙스키의 문학이 성장한다. 페테르부르크에서 가장 현대적인 환경에 해당하는 거리는 네프스키 거리이다. 고골리의 ‘네프스키지구’, 도스토옙스키의 ‘가난한 사람들(1845)’, ‘이중인간(1846)’ 등을  통해서 자신의 존엄성을 부정하는 도시에서 존엄성을 주장함으로서 때때로 미쳐버리게 되는 페테르부르크의 평범한 하급서기들을 그리고 있다.





  1860년대에는 거리에서 ‘신-인간’이 탄생 한다


1861년 알렉산드로 2세는 농노해방이라는 개혁을 추진하는데 이것은 기대에 못 미치는 쓰라린 실패를 가져오지만 이와 더불어 새로운 세대, 새로운 스타일의 지성인이 출현한다. 1860년대 인간에 해당하는 신인간의 초상은 뚜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 쳬르니세프스키의 ‘무엇을 할 것인가’(부제: 새로운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구현되어있다. 페테르부르크의 도시의 거리는 정치적인 대결을 경험함으로서 정치적인 공간이 되었으며 문학은 이 공간을 표현하고 있다.



  도스토옙스키(1821-1881)의 ‘지하생활자의 수기(1864)’도 이 시기의 새로운 인간의 출현을  귀족과 가난한 하급서기의 대결을 통하여 그려내고 있다. 농노해방을 통하여 러시아 사회의 신분제는 법적으로는 폐지되었지만 여전히 계급질서가 지배하고 있었다. 그들은 러시아 사회에서 인식되어지지 조차 않음으로서 인간적인 존엄성도 없었다. 페테르부르크는 다양한 출신과 계층으로 이루어진 집단, 가장 현대적인 욕망과 아이디어가 충만한 거리를 탄생시켰지만 여전히 신분제도에 바탕을 둔 귀족계층이 장악하고 있었으며 현대인들을 지하세계로 내몰았다. 그러나 지하생활자는 지하세계에서 궐기하여 햇빛 속으로 나오기 시작했으며 자신의 거리를 밝게 비추기 시작했다. 밝은 대낮에 자신의 자유와 존엄성을 위하여 투쟁함으로써 승리하게 된다. 그러므로 ‘지하생활자의 수기’는 정신적인 현대화에서 전진을 향한 거대한 도약을 이루고 있다.

 이것이 버만이 페테르부르크라는 도시를 통해서, 그리고 그 도시의 역사와 사회적 환경을 통해서 러시아 문학을 분석하는 탁월한 방식이다.





  이 작품을 읽는 다른 텍스트는 콜린 윌슨의 ‘아웃사이더’이다. 윌슨은 ‘지하생활자의 수기’는 차마 읽어낼 수 없을 만큼 불유쾌한 이야기라고 소개하며 어떠한 작품보다 자기분열에 봉착한 아웃사이더의 문제를 취급한 최초의 대작이라고 평하고 있다. 버만이 2부만을 분석하고 있다면 윌슨은 2부는 별로 훌륭한 작품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토를 달고 1부를 중점적으로, 아웃사이더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있다.





  나는 무엇일까? 이것이 아웃사이더의 문제이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자신의 실체에 관하여 전혀 의문을 갖지 않는다. 아웃사이더는 이들 모두가 감옥에 살고 있고 그 감옥생활에 만족하고 있다고 본다. 아웃사이더 역시 감옥에 있다. 다만 그는 자기가 감옥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거기서 탈출하고자 열망한다.





  지하생활자는 스스로를 벌레라고 생각하고 있다. 20년이 넘게 그의 방에서 혼자 생활하며 우울증과 싸우며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그는 생각이 너무 많고 자의식 과잉이다. 그리하여 단순하고 우매한 인간들, 분열되지 않은 정상인이 부럽다. 그러나 이 기생충적 인간은 신경이 아둔한 정상적인 인간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어떠한 것을 알려준다. 그는 고통을 좋아한다. 고통과 굴욕과 절망에서 조차 어떤 강렬한 쾌감을 느끼는 기이한 희열은 인간의 모든 자유의 문제의 거점이 된다.


그가  대항하려는 것은 합리적인 휴머니즘과 계몽주의이다. 체계에 의해 인류를 개혁할 수 있다는 것에 저항한다. 인간의 행위에 대한 메카니즘적 설명을 혐오한다. 모든 인간의 행위가 자연 법칙대로 수학적으로 계산될 수 있는 것인가. 이성이 모든 면을 지배하며 인간은 궁극적으로 선을 지향한다는 그런 체계에 대하여 걷어 치우라고 말한다. 그는 자기 마음대로 할 권리를 요구한다.


인간이 해야 할 의무는 스스로 인간임을 증명하는 일이다. 그것을 위해서 인간은 어떠한 이익도 버리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다. 파괴와 혼돈과 온갖 고통을 궁리해 내서라도 인간은 자기를 주장할 것이다. 미치광이가 되어 이성을 버리고서라도 자기 주장을 관철하고 야 말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자유 본능이다.





  지하인간은 확신한다. 인간은 고통을 결코 거부하지 않는다. 고통이야말로 자의식의 유일한 원인이므로, 비록 자의식이 인간에게 가장 큰 불행이기는 하지만 인간은 그 불행을 사랑하여 어떤 만족과도 바꾸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정상적인 인간이 부러워 죽겠다고 했지만, 그는 결코 그들 축에 끼고 싶은 생각이 없다.





  윌슨은 이 작품이 읽은 뒤 쓴맛을 남기는 것은, 이것이 예술 작품으로서 실패작이며 인간의 약점에만 편집광적으로 집착해 있는데서 기인하다고 한다. 그러나 소설가로서의 도스토옙스키의 성장은 인간의 힘에 대한 완만한 이해의 과정이었으며, 이 후 작품의 주인공들은 점차 허무하고 쓸데없는 성격을 버리고, 보다 성숙한 인간이 되노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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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호 2009.03.29 04:31
    <지하생활자의 수기>가 그런 뜻이었나요.^^;;
    전 3부의 논쟁이 가장 인상적이었던지라, 1부 내용이 "길 비켜주기"에 대한 고찰인 줄 꿈에도 기억이 없습니다..@_@**
    역시 문학작품은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고 봐야 더 깊이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는 걸 배웠습니다.
    리뷰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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