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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7 20:39

파리의 우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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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난한 사람들의 눈빛




  아! 당신은 왜 내가 오늘 당신을 미워하는지 알려고 한다. 그러나 당신이 그것을 이해하기란 내가 당신에게 그 이유를 설명하는 것보다 틀림없이 더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내가 아는 한, 이해력이 없는 여인의 가장 좋은 표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긴 하루를 같이 보냈는데, 그것도 나에게는 짧게만 생각되었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이 모두 서로 일치하고, 이제부터는 우리의 넋도 하나일 뿐이라고 크게 기대를 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꿈꾸었지만 어는 누구에게도 실현되지 않은 걸 보면, 그것은 결국 전혀 새로운 것이 없는 진부한 꿈이었나 보다.

 


  그날 저녁 조금 피곤해진 당신은 새로 생긴 보도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새로 단장된 카페 앞에 앉기를 원했다. 카페는 아직 석고 부스러기가 온통 흩어져 있었지만, 완성되지 않은 채로 벌써 호화로움을 자랑스럽게 과시했다. 카페는 화려하게 빛났다. 가스등도 이 새 카페에서는 개시의 모든 정열을 발휘하며 새하얗게 힘껏 사방을 밝혀주었다. 눈부신 하얀 벽들을, 거울의 빛나는 면을, 쇠시리와 코니스의 금박을, 끈으로 개를 끌고 있는 뺨이 오동통한 급사를, 주먹 위에 앉은 매들을 보며 웃고 있는 귀부인을, 머리 위에 과일이며 고기 파이며 사냥거리 등을 이고 있는 요정과 여신들을, 바바루아가 들어 있는 조그만 항아리며, 오색 얼음과자가 들어 있는 찬란한 오벨리스크를, 팔을 벌려 보여주고 있는 헤베들과 가니메데스를. 모든 역사와 신화가 식탐을 위해 활용되었다.

 


  그런데 우리 바로 앞 보도에 마흔 살쯤 되는 선량해 보이는 한 남자가 꼼짝하지 않고 서 있었다. 피곤한 얼굴에는 희끗희끗 수염이 나 있고, 한 손에는 작은 사내아이를 붙잡고, 다른 한 팔에는 아직 걷지도 못할 정도로 약한 어린것을 안고 있었다. 그는 어린것들에게 유모 구실을 하느라 저녁 바람을 쐬어주는 참이었다. 그들은 모두가 누더기를 걸치고 있었다. 이 세 사람은 매우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었으며, 그 여섯 개의 눈들은, 나이에 따라 미묘한 차이는 있었지만, 똑같이 감탄한 듯 새 카페를 뚫어지게 들여다보았다.

 


  아버지 눈은 이렇게 말했다. “어쩌면 저렇게 아름다울까! 어쩌면 저렇게 아름다울까! 모든 가난한 자들의 돈을 모조리 저 벽에 발라놓은 것 타구나.!” 어린 소년의 눈은 이렇게 말했다. “어쩌면 저렇게 아름답지! 어쩌면, 아름답기도! 그렇지만, 이 집에는 우리와는 다른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제일 어린 꼬마의 눈으로 말하자면, 너무나 매혹당한 나머지 어리둥절하고 끝없는 즐거움 밖에 아무것도 나타낼 수가 없었다.

 


  샹송 작가들은 즐거움이 영혼을 선량하게 하고, 마음을 부드럽게 한다고 노래한다. 그날 저녁 그 노래는 나에 관한 한, 옳았다. 나는 이 눈들 앞에 연민을 느낄 뿐 아니라, 우리의 목마름을 채우고도 남을 너무 큰 잔들과 술병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나는, 사랑하는 연인이여, 나의 시선을 당신 쪽으로 돌려 당신의 눈에서 역시 나의 생각을 읽으려 했다. 내가 당신의 그토록 아름답고 이상하게 부드러운 눈 속에, 달님이 창조하고 변덕이 살고 있는 듯한 푸른 눈 속에 잠겼을 때, 당신은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있는 저 인간들이 견딜 수 없군요. 카페의 주인에게 부탁하여 저들을 여기서 멀리 쫓아낼 수 없을까요?”

 


  사랑하는 천사여, 이처럼 서로 마음이 맞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생각은 통하지 않는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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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샬 버만이 “거리에서의 모더니즘“이라는 이름으로 분석한 보들레르의 글 두편 중 한편의 원문입니다.


산문시 모음집  “파리의 우울”의 제 26화에 해당합니다.


아마도 보들레르라는 시인은 위대한 시인이었다기보다 너무나 민감한 인간이 아니었나 싶네요. 우리는 이미 길들여져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것들에서 시인은 상처와 충격을 받았고 그것을 자각한듯 합니다. 파리, 대도시, 자본주의 느낌을 ‘악의 꽃’으로 비유하였고, 악이기도 하고, 꽃처럼 매혹적이기도한 도시의 경험을 통하여 근대문학을 탄생시켰습니다.





이 짧은 글에서 버만은 19세기 파리의 도시혁명과, 도시 속에서 억압된 현실, 그 번화가를 가득 메우며 찾아오는 사람들의 변화, 그리고 도시적 분위기의 슬픔에 등을 읽어내고 있습니다. 누군가 이렇게 꼼꼼하게 짚어가며 토를 달아줘야만, 그제서야 서서히 느낌이 밀려오는 이 무딘 감수성이 슬프네요.

 


참고로 이 책의 우리말 옮긴이는 이 글의 주석에 보들레르의 여성 경멸에 대하여만 언급하고 있습니다. 여성의 무감각과 정신성의 부재가 사랑의 관계에서 보들레르에게는 넘어 설 수 없는 장벽이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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