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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러듯이 글이 길고 장황합니다. (여기는 공부방 게시판이므로) 많은 회원님들을 위해 쉽고 간결하게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릅니다.


 


1.


독서 모임을 하기 전에는 책에 대해 글을 쓰지 않으려 하고, 독서 모임 중에도 (잘 지켜졌는지는 의문이지만은) 가능한 한 말을 하지 않으려 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기 전에 선입견을 형성시키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고 책을 읽는 도중에 특정한 이해를 강요하거나 주입하는 모양새를 피하고 싶어서 입니다.


게다가 천성이 게을러서 일일이 일정을 챙기고 공지를 띄우고 연락을 하며 (이건 부득이한 사정 때문이긴 하지만) 미리 나가 회원님들을 맞이하는 부지런함조차 없으니, 말 그대로 있으나마나한 조교가 되고 있습니다.


사실 전 이것이 아주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같이 읽고 각자 생각하고 함께 나눔으로써 나름대로 성장한다는 취지에 비추어볼 때, 우리의 모임에는 선생이나 스승, 강사가 없는 게 바람직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이름은 조교인지라 "이미 지난" 독서 모임에 대해서 약간의 추가적인 이야기를 덧붙이는 것도 괜찮겠지요.


 


2.


며칠 전 백북스 회원 중 한 분이랑 네이트온으로 대화를 하다 그리스인들의 언어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윤기씨는 그리스 신화에 관한 그의 연작에서 이 시대가 추상 개념을 발견하던 언어/개념의 실험실이었다고 말합니다. 그새로운 사태를 언어를 통해 포착하려는 사람들은 늘 기존의 언어의 틀에서 갑갑함을 느끼게 되어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유사한 일들이 그리스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문화권에서도 다 나타났죠. 고대의 인도가 그러했고 중국이 그러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이런 거대한 문명사적인 스케일뿐만 아니라 좀 더 국지적인 스케일에서도 '새로운 언어의 창조'가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제가 앞서 말한 회원분과 이야기를 할 때 양자역학을 개척한 사람들이 그런 경우가 아니었겠는가 그런 식의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철학사에서 신조어로 넘쳐나는 책을 쓴, 그래서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기 힘든 이야기를 해놓은 사람들은 적지 않습니다. 새로운 사유의 사태를 포착하고 그 논리를 해명하기 위해서 철학자들은 좋건 싫건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야 하니까요. 마치 개인 브랜드 만들듯 신조어 만들기에 열중해서 이전의 개념틀과 크게 다르지 않은 (혹은 기존의 좋은 개념틀을 어지럽게 만들 뿐인) 철학자들도 종종 발견되지만 말이죠. 아무튼 이런 철학자 중에서 독자를 꽤 심란하게 만드는 저자를 손꼽는다면 그 중 첫머리에 화이트헤드가 온다는 것에 1표를 던집니다.


 


그 기획이 성공했건 그렇지 않건, 19세기 후반에 태어나 교육을 받고 전문적인 수학자가 되어서 20세기 초반부터 중반까지 당대의 과학과 함께 호흡했던, 인문학의 고전과 과학의 역사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괴리감을 느끼지 않았던, 그리고 당대 과학의 성과를 이해하면서도 역사적으로 과학과 문명을 이해하려고 했던 이 화이트헤드라는 사람은 자신의 철학을 문명사적 과제로 파악했음이 분명합니다. 이렇게 거창한 기획을 하면서도 다른 사람들과 교류는 거의 하지 않고 혼자서 읽고 생각하고 사유의 세계를 만들어 나갔죠.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책을 썼지만 <이것은 세계를 완벽하게 설명한 책>이라는 자화자찬도 없었습니다. 하나의 시도이자 가설일 뿐이라고, 그렇게 말했죠.


 


그 화이트헤드를 이해하기 위해 여러 권의 안내 책자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화이트헤드 자신의 책으로부터 시작한다고 하면


 


< 과학과 근대세계 > - 아직 유기체철학과 형이상학으로 넘어가기 전, 과학사의 철학적 이해를 통해 그 아이디어를 찾아가던 과정.


< 이성의 기능 > - 주저인 < 과정과 실재 >를 끝낸 이후에 자신의 유기체 철학의 일면을 정리해서 보여준 대중 강연


< 사고의 양태 > - < 열린 사고와 철학 >이라는 이름으로 번역되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저술.


<화이트헤드와의 대화> - 저명한 저널리스트와 말년의 화이트헤드가 나눈 43편의 대화 모음.


 


정도가 입문서가 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책들을 읽고  < 관념의 모험 >은 읽을 수 있지만 < 과정과 실재 >를 읽는 건 또 다른 차원의 벽이 될 것입니다. 대중들을 위해서 쓴 책도 아니고, 친절하게 무언가를 해설한 책도 아니니까요.


 


그래서 약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책들이 나와 있습니다.


호진스키의 < 화이트헤드 풀어 읽기 >가 그 첫머리에 오겠죠. 이 책은 처음부터 입문자들을 위해 화이트헤드라는 새로운 사유의 맥락을 풀어헤친 책입니다.


문창옥 교수의 < 화이트헤드 과정철학의 이해 >는 아마 한국에서 씌어진 철학 박사학위 논문 중에서 최고 수준의 완성도를 자랑하는 글일 겁니다. 약간 다듬고 정리하긴 했다지만 여전히 철학의 문외한들에겐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참 명료하게 잘 씌어졌습니다. 주로 후기 화이트헤드의 형이상학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 문창옥 교수가 다시 < 과정과 실재 >를 중심으로 화이트헤드 철학을 풀어 쓴 책이 < 화이트헤드 철학 읽기 >입니다.


 


이 정도 읽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 과정과 실재 >와 씨름을 하는 것이죠.


 


 


3.


예전에 김용옥이 자주 주장하던 것이 우리가 친숙하다는 이유로 중국의 문화를 제대로 못 보고 있는 지점이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철저하게 타자로 생각하고 연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였죠. 그래서 역으로 타자의 관점에서 중국 철학을 연구한 학자들의 글을 읽으면서 도움을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가능합니다. 물론 한국에서의 서양사 연구가 실제 유럽의 역사가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듯 수준이 형편없이 낮은 초창기 수준의 학문으로는 그게 불가능하겠지만, 적어도 중국과 인도의 고전에 대한 연구는 꽤 오랜 역사와 무시할 수 없는 깊이를 갖고 있습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제가 이쪽에 대해 잘 모르므로 더 좋은 책이 있으면 정보를 나누어주세요.


 


제가 읽은 책중에서 서구적 접근의 신선함을 느꼈던 것은 H.G. 크릴의 < 공자, 인간과 신화 >였습니다. 사실 주희가 사서를 정하고 그 문헌학적인 출처를 제멋대로 정해버려서 그 내용이 마치 정전인 양 계속 내려왔죠(예를 들어 자사가 < 중용 >을 지었다든가 등등). 게다가 공자는 "닥치고 성인"이셨구요. 다시 말해 공자를 일종의 '영웅'이 아니라 '신'의 위치에 격상시킨 선입견이 작동한다는 거죠. 그런 점에서 크릴의 책은, 공자를 인간적인 영웅의 관점에서 새롭게 볼 수 있게 도와주었습니다.


 


중국과 서양철학의 만남과 교류라는 측면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성공한 작가는 임어당(린유탕)이고 철학자는 풍우란(펑여우란)일텐데, 문제는 둘 다 철학적으로는 그다지 훌륭한 성취를 거둔 사람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런 점에서 분량은 많지만 노사광의 중국 철학사나 이택후(리쩌허우)의 중국사상사론 시리즈를 권할 수 있겠습니다. 리쩌허우가 좀 더 자유분방한 접근법을 취하고 노사광이 (틀을 정했다는 점에서) 엄격한 방법론을 취하고 있기는 하지만, 둘 다 서구 근대 철학의 세례(특히 칸트)를 받았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고 할 수 있죠.


 


사실 19세기말부터 20세기초 중국의 사상가들은 정말로 격변하는 세기를 맞이해 (제국주의의 위협, 청제국의 멸망, 공산주의의 등장 등등) 치열한 모색을 해야했습니다. 여러 노선이 등장했지만 (마르크스주의자들이나 엄복, 진독수, 호적, 노신, 풍우란, 하린보다는) 양수명, 웅십력, 당군의, 모종삼, 서복관의 이름이 현대 신유학의 계보의 뿌리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은 대부분 서구 철학을 공부했고 그것과 대화/대결하면서 유학의 가치를 되살리려고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 영향 아래서 뚜웨이밍이 등장하는 것이구요.


 


하버드 동양학의 계보에는 벤자민 슈월츠(혹은 슈워츠)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역사학 전문가로는 존 페어뱅크(까치출판사에서 그의 중국사가 나와있습니다)가 있었고, 사상사에는 벤자민 슈워츠가 있지요. 정치학/역사학 전공자였던 벤자민 슈워츠는 (처음에는 중국사 전공이 아니었지만) 사상사적 측면에서 중국을 연구했습니다. < 중국 고대 사상의 세계 >가 번역되어 있죠. 그와 더불어 현대 영미권의 중국 사상사 연구에서 쌍벽을 이루는 사람이 앤거스 그레이엄이고 그의 저서인 < 도의 논쟁자들 >이 번역되어 있습니다.


 


유교 연구도 잘 모르지만 더 잘 모르는 불교학에서는 (유럽의 오랜 불교 연구 전통이 있지만) 하와이 대학의 칼루파하나의 < 불교철학 > < 불교 철학사 >를 즐겁게 읽었습니다.


 


이런 책들이 각자 나름대로 책읽기를 하시는데 도움이 되시면 좋겠습니다.


 


4.


 


물론 더 좋은 책이 있으면 소개를 해주셔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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