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공지
2003.11.19 09:00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

조회 수 2325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새로운 공동체 문화를 위한 실험이 시작되었다

문화사회 제59호
이용훈 / 도서관문화비평가, 한국도서관협회 기획부장 blackmt@hitel.net

‘서산시민들이 책 한 권을 같이 읽는다면!’

최근 새로운 공동체 문화를 위한 실험이 한 도시에서 시작되었다. 그 실험은 일단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One City, One Book)’으로 불린다. 지난 10월 27일 서산시에서는 몇 개월의 준비를 거쳐 ‘서산시민들이 책 한 권을 함께 읽는다면’이란 슬로건을 걸고 11월 한 달 책 한 권을 읽고 토론하고 대화하는 독서운동을 시작했다. 15만명에 가까운 서산시민들이 뭐 책 한 권을 정해서 같이 읽고 토론하기로 했다고? 과연 그런 일이 가능할까? 이 운동은 또 뭘 목적으로 하는 것인지?

시민들이 한 권의 책을 같이 읽음으로써 새로운 공동체 문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이 아이디어는 우리가 새롭게 만든 것은 아니다. 이 아이디어는 미국 시애틀의 한 도서관에서 근무하던 낸시 퍼얼(Nancy Pearl)이라는 사서가 5년 전에 처음으로 시작한 것이다. 이 아이디어에 따라 시애틀에서 처음으로 ‘만약에 온 시애틀이 같은 책을 읽는다면!’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도서관이 주도해서 시민들이 모두 같은 책을 읽고 토론하는 일을 시작된 이후, 지금은 미국 50개 주 가운데 38개주, 90여개 도시로 확산되었으며 캐나다와 호주, 영국의 여러 도시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이 새로운 독서운동은 한 공동체 구성원이 모두 같은 책을 읽고 그 책을 통해 공통의 화두에 대해 함께 토론하고 대화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러한 토론과 대화를 통해 개개인이 문학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는 것은 물론, 참여 과정을 통해 자신의 삶과 이웃과의 관계 등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 만듦으로써 공동체 구성원들간 상호 이해와 연대의 틀을 확대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해외에서 성공적으로 추진되어 온 여러 형태의 독서운동(대표적인 것으로는 최근 시작된 북스타트 운동이나 문화관광부의 북토큰 사업, 책과 저작권의 날 행사 등)은 우리나라도 도입되어 추진되고 있는데, 유독 이 ‘한 도시 한 책’ 운동은 그 성공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도입이 되지 못했다. 그러한 이유는 아마도 우리나라의 독서운동 방식과는 다소 다른 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무엇보다도 일정한 지역의 사람들이 모두 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사실 자체가 매우 낯설고 힘들어 보인다.

지금은 <기적의 도서관>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모 방송프로그램이 처음 책을 선정해서 읽자는 내용을 방송했을 때, 가장 많은 비판이 책을 선정해서 읽게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 사회에서는 책을 선정하고 읽기를 권하는 일이 간단한 일이 아닌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일정한 공공 단위에서 특정한 책을 선정해서 다함께 읽자고 하는 운동은 처음부터 성립하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회의적인 시각이 도입을 늦춘 핵심적 요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다음으로는 아마도 토론이라고 하는 독서방식에 대한 낯설음이 또 한 원인이었을 것이다. 사실상 우리는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 주장, 이념을 다른 사람들과 토론한다는 일에 익숙하지 않다. 오히려 아직도 지시와 통제에 더 익숙하다. 이러한 현실에서 책을 읽고 토론하자는 것이 과연 가능하겠는가? 책도 많이 안 읽는데 거기에다가 토론까지 하자고 하는 일은 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러한 독서운동을 기획하고 진지하게 이끌어 갈 공공적이면서도 의지와 열정을 가진 추진세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이 프로그램을 공공도서관이 주로 맡고 있다. 그 사회에서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공신력있고 실제적인 독서 프로그램을 추진할 전문성과 역량을 가진 도서관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추진함으로써 공공영역과 민간영역을 아우르도록 하면서 시민의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또한 지역사회 속에서 독서활동에 있어 가장 일상적이면서도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고 있는 공공도서관이 주도했기 때문에 공공성을 유지하면서도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확산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나라 도서관들은 아직 이러한 대중적인 프로그램을 기획추진해 본 경험이 거의 없다는 점이 이 독서운동 도입을 주저하게 만든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이같은 여러 이유로 이 프로그램의 참신성과 실제적인 성공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독서운동이자 지역문화 프로그램이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러나 이번에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민간단체가 우리나라에서 이 독서운동이 정말 실천하기 어려운 것인지를 직접 확인해 보고자 행정자치부의 재정지원을 받아 시범사업을 하게 되었다. 미국과 캐나다의 사례를 조사해 보고 난 후, 서산시립도서관과 함께 서산시에서 구체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 실험이 과연 성공적으로 결론 맺을 지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이 실험이 진행되는 동안 서산시 이외에도 순천시에서도 이 프로그램을 시작할 것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그렇다면 이 프로그램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확신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다만 이 프로그램은 도서관이나 프로그램을 기획한 사람들이나 전문가, 독서애호가 몇 몇 사람들만의 노력이나 능력에 성패가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의 참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이번 실험의 결과를 섣부르게 예측하지 못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지역사회 구성원들이 같은 책을 읽고, 공통의 화두에 대해 진지하고 자유로운 토론이나 대화를 해 낼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진정 여러 가지 문제들을 안고 있는 우리나라 대다수 지역사회의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새로운 문화적 계기가 될 수 있는지를 지켜보아야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지금 우리나라가 많은 갈등 속에서 국민들은 큰 고통을 당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국민 각자의 주체적 사고능력과 판단력이다. 그러한 능력이 있어야만 이성적으로 갈등을 해소하고 해결책에 대한 합의와 실천을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책을 읽고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형성될 수 있다. 책 읽기는 그 자체가 분석적이고 비판적 자세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또한 토론은 책 읽기를 개인적 차원에서 사회적 차원으로 이끌어 내고, 그 과정에서 공동체를 결집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다. 이번에 시작된 서산시의 실험이 우리에게 독서와 토론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확인시켜 줄 것으로 기대한다. 물론 이와 같은 독서운동 방식에 대해 여러 가지 의문과 문제제기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운동의 기본적으로 ‘이 책을 읽어라’라는 일방적이고 지시적 방식이 아니라 ‘이 책을 같이 읽어보자, 그리고 읽고 난 후의 생각이나 의견을 함께 이야기해 보자’라는 자발적이고 참여적인 방식을 기본이념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이 방식은 모든 것에 물음표를 붙여 문제를 제기하고 함께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을 시도해 보도록 하고 있다. 즉, 모든 것에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개방적인 독서운동이자 지역문화운동이다. 마침 서산시는 천수만에서 철새축제를 열고 있다. 여행의 계절, 서산시에서 책도 읽고 토론도 해 보고, 아름다운 철새들의 비상도 보면서 가을의 낭만을 즐기면서 독서와 토론의 가능성을 직접 확인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까지 새로운 독서운동 또는 문화운동을 소개하는 즐거움을 만끽해 보았다. 이제 필자도 서산시가 선정한 책을 읽고 서산시를 찾아가 서산시민들의 토론자리에 슬쩍 끼어볼 생각이다. 생각만 해도 절로 즐겁다. 참, 서산시민들이 무슨 책을 읽고자 했는지 궁금하신가? (순천시민들은 어떤 책을 택했을까 그것도 궁금하다. 그러나 아직 발표하지 않아서 좀 더 기다려 보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무슨 책이라고 말하기보다는 찾아가 볼 곳을 알려드려 직접 확인해 보시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정보화시대라서 이미 홈페이지는 마련되어 있으니까 그곳을 방문해 보면 무슨 책이 선정되었는지, 왜 그 책이 선정되었는지, 앞으로 어떤 일들이 서산시에서 벌어지게 될 것인지 등등에 대해 알 수 있다. 홈페이지 주소는 http://www.korla.or.kr/onebook/index.asp 이다. 이 프로그램은 누구나 그 아이디어를 차용해서 새롭게 만들어 갈 수 있다. (필자는 서산시와 함께 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최근에 순천시도 이 프로그램을 추진하겠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렇다면 서산시민과 순천시민들이 서로 선택한 책을 바꾸어 읽고, 상대 지역을 방문해서 같이 토론하고 유대를 공고히 하는 기회를 가지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사업을 추진하는 사람들에게 제안한 바 있다. 가능했으면 좋겠다.) 많은 지역에서 이와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문화적인 실험이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144 공지 한가위 문안 조근희 2002.10.14 3355
4143 공지 한 장의 사진 8 박문호 2007.08.18 3037
4142 공지 한 여름밤의 산책 오중탁 2003.07.08 2346
4141 한 여름 오후의 영성스터디와 여흥을 함께! ( 한국정신과학학회) 김선숙 2013.07.11 1583
4140 한 아름다운 영혼이 사라진 슬픔 2 강신철 2009.05.24 2265
» 공지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 송윤종 2003.11.19 2325
4138 공지 한 길을 걸으면 대가가 되네요 1 이석봉 2008.04.07 1461
4137 공지 한 걸음 늦게 피운 봉숭아 4 윤석련 2003.09.08 2460
4136 학습의효과 1 최경희 2009.07.08 1947
4135 학습마라톤을 다녀와서... 3 홍종연 2009.10.28 1817
4134 학습마라톤을 다녀오고... 4 최인호 2009.10.27 1794
4133 학습마라톤, 즐거운 기억 4 문건민 2009.10.26 1879
4132 학습마라톤 현장사진 2 file 최정윤 2009.11.11 2037
4131 학습마라톤 장기자랑 참가자를 모집합니다. *^^* 2 송윤호 2009.10.23 1947
4130 학습마라톤 입금자 및 후원금 현황입니다. file 오창석 2009.10.23 1922
4129 공지 학습독서공동체 (박문호 공동운영위원장) 15 이정원 2007.11.02 5037
4128 학습과 감정, 건강 분야의 큰 변화 이끌어--뇌, 베일이 벗겨진다 1 김성훈 2009.06.27 1913
4127 공지 학부모를 위한 강연을 듣고... 1 이선영 2003.06.12 2380
4126 공지 학문의 축제 5 전지숙 2008.05.06 1756
4125 공지 학교를 폐지하라, 그 곳을 레크레에션 센터로 바꾸어라.Roger C. Shank 3 박성일 2008.09.17 1726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4 5 6 7 8 9 10 11 12 13 ... 216 Next
/ 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