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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7 00:36

[방구석 살롱] 단순한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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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진심

 

조해진/ 민음사

 


거짓말처럼 식욕을 잃었다. 좋아하던 음식도, 향기롭던 커피도 모두 거슬렸다. 내 안에 새로운 생명이 자란다는 놀라운 소식에 두려움과 설레임을 동시에 느꼈다. 어둡고 흐릿한 초음파 사진 속의 점으로, 사진 옆 생생한 느낌의 기록으로, 시간이 흘러 내 아이는 본인의 처음을 마주하게 될 거다. 다행히도.

 

소설의 주인공 문주는 암흑에서 왔다. 아무 기억도 기록도 없었다. 버려지고 거둬지기를 반복하며 엄마의 기억은 멀어지고 틀어졌다. 그리고 과거의 어둠은 더 짙어졌다. 무력할 만큼 외로움의 끝에 문주에게 온 생명 우주는 다른 세상이었고, 더 이상 외롭지 않아도 된다는 미약하지만 분명한 신호였다. 

 

프랑스로 입양된 주인공에게 그녀의 시원(始原)을 찾도록 도와주겠다는 다큐감독 서영의 제안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한국에 온다. 가난한 영화감독 서영, 역시나 어렵게 꿈을 좇는 소율, 잠시 문주를 도와준 기관사와 그의 어머니, 문주에게 기억의 음식을 마련해준 추연희, 벨기에로 입양된 혼혈아 백복희, 그리고 이름 없는 노파.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 하나같이 불완전한 존재들이다.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그들에게서 얻는 위로와 안도는 얼마나 느닷없고 큰 힘이 되는가. 원망이 걱정이 되고 회한이 진심이 되기까지, 무수히 반복된 마음 속 쌓기와 허물기의 과정들이 이야기 내내 담담하다.

 

암흑에서 온 문주를 대신해 암흑으로 돌아간 연희. 덕분에 문주는 더 이상 암흑 속에 살지 않을 위로를 받는다. 누군가의 사소한 관심과 애정이 한줄기 빛이 되었기 때문이다. 연희의 상가에 걸린 조등. 바닥에 뒹구는 조등을 거둬서 고쳐 달아주는 문주의 모습을 보면서, 화려하지도 밝지도 않은 조등의 빛처럼 그녀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위안이 되겠구나 싶었다. 더 이상 그녀에게 근원을 찾는 일은 의미가 없어졌다. 이제 그녀가 우주의 시원이 되었고, 비로소 그녀의 엄마에게 안녕을 고할 수 있으니까. 진심으로.


 

2019-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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