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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3 01:56

[방구석 살롱] 여행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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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이유

 

김영하 산문/ 문학동네

 

 

나는 시간도 공간도 모호한 그 곳을 기차를 타고 달리고 있었다. 내가 떠나온 곳은 무더운 폭염의 계절인데 눈  앞엔 흰 눈이 덮이고 높이도 가늠하기 힘든 산들이 솟아있었다. 생물이 사는 낯선 행성에라도 떨어진 것처럼 드문드문 바위가 널려있는 사이로는 데이지처럼 앙증맞은 꽃들이 연둣빛 풀들에 섞여 있었다. 당장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면 차가운 입김이 나올 것 같은 풍경을 빠르게 지나치며 나는 조용한 기차 안에서 여유롭게 차를 마셨다. 내가 거기에 정말 있었던 건지 아련하기만 한데, 이따금 그곳이 너무나 그리워서 손에 쥐어진 사진 한 장으로 그때의 기억을 다시 불러본다.

 

나에게 여행이란? “기억”이다. 눈을 감아도 눈앞에 생생히 그려지듯 떠오르는 그것. 그것을 남기기 위해 떠나는 것이다. 요즘처럼 사진이 흔히 소모되기 전에는 필름 하나를 사면 24장의 사진을 담기 위해 하나하나 정성껏 고르고 골라서 찍었다. 여행은 그렇게 아끼고 아껴 찍어 모은 사진처럼 내 머릿속에 찍힌 기억이 된다. 그것들은 두고두고 내 삶의 동력이 된다. 스치듯 지나간 여행일지라도 남겨진 그것들은 닳고 닳아 희미해지지 않고,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하고 또렷해진다. 

 

떠나기 전에는 먼 곳을 동경하고, 떠나서 머무는 그 곳에서는 일상을 다시 그리워한다. ‘어둠이 빛의 부재라면, 여행은 일상의 부재다’라는 작가의 말에 격하게 공감하는 이유다. ‘여행은 우리를 오직 현재에만 머물게 하고, 일상의 근심과 후회, 미련으로부터 해방시킨다.’ 일상이 지치고 치열해질수록, 복잡한 일상에서 나를 오려내 눈을 감고 그리던 거기에 가서 붙여 넣고 싶은 기분이다.

 

소설가의 여행이야기를 읽다가 혹해서 엉덩이가 들썩였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다시 멈출 줄 모르고 돌아가는 바쁜 일상 속이다. 그러는 사이 바람 끝이 달라졌다. 떠나야겠다.
 

 

 

2019-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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