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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04 00:00

히딩크 리더십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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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딩크 리더십 이야기

  
▶ 2002/7/3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산업부에서 과학과 정보통신을 담당하는 안용현입니다. 산업부 발령을 받은 지 한달이 가깝지만 산업 기사로 독자 여러분들을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월드컵 취재팀에 파견 나와 한 달 넘게 월드컵경기장을 쫓아다녔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번 월드컵 기간 7번의 한국 경기 가운데 폴란드전을 제외한 전 경기를 현장에서 취재했습니다. 그 밖에도 전국 10개 경기장을 모두 돌며 숱한 경기들을 지켜봤습니다. 부럽다구요. 솔직히 엄청난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45일 이상 쉬는 날 없이 3000㎞를 차로 달렸지만 말입니다.

히딩크 리더십에 대해 몇 마디 올리겠습니다. 저는 경제부로 오기 전인 지난해 6월부터 12월까지 축구를 담당하며 히딩크 감독과 한국 대표팀을 취재했습니다. 이번 대회 기간에도 여러 차례 히딩크 감독을 인터뷰 했습니다. 히딩크 감독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조선일보 기자 중 한 명입니다.

요즘 히딩크의 리더십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엄청 많습니다. 축구 변방국이던 한국을 일약 월드컵 4강에 올려놓은 그의 지도력은 분명 생각해 볼 가치가 있습니다. 지연·학연을 배제한 실력 위주의 선수 기용, 위치에 맞는 선수 발굴, 선수들끼리 경쟁심 유발. 선수 대신 인재라는 단어를 끼워 넣으면 기업은 물론 한국 사회의 모든 분야에 적용 가능한 리더십 내용들입니다.

그러나 학연·지연을 배제했다고, 선수들끼리 경쟁심을 유발했다고, 선진 훈련 기법을 도입했다고 한국 선수들의 실력이 짧은 시간 내에 급상승 했을까요? 히딩크 감독이 우리 선수들에게 제대로된 전술 훈련을 시킨 것은 불과 3개월 전입니다.

그 이전까지는 잘 알려진대로 체력 훈련만 시켰습니다. 즉 체력이란 바탕을 갖춘 뒤 팀 구성원으로써 움직여야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데 주력한 것입니다. 선수 개개인을 붙들고 기술을 가르친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23명의 한국 선수들은 모두 자신감이 넘쳤고 히딩크 감독을 100% 믿고 따랐습니다.

저는 무엇보다 모든 선수들이 진심으로 히딩크 감독을 100% 신뢰했다는 데 놀랐습니다. 보통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아랫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기 십상입니다. ‘윗사람 씹기’는 언제나 술자리에서 최고의 안주가 되곤 합니다. 물론 선수들이 공개적으로 감독을 비난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말 속에 뼈를 숨깁니다. 그러나 이번 대표팀의 경우, 주전과 후보, 고참과 신참을 가릴 것 없이 히딩크를 믿었습니다.

저는 히딩크 리더십의 요체는 “내가 너를 끝까지 보호한다”는 믿음을 선수들에게 불어넣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히딩크 감독은 모든 ‘외풍(外風)’으로부터 선수들을 지키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지난해 1월 히딩크의 대표팀 감독 취임 이후, 우리나라 기자들은 선수 개개인에 대해 일절 언급을 하지 않는 히딩크의 인터뷰 방식에 불만이 많았습니다. 대체 어떤 선수가 어떤 특징을 갖고 있다는 것을 한 마디라도 해 줘야 기사를 쓸 텐데 ‘멀티 플레이어’를 원한다는 말만 되풀이 했습니다. 이것은 월드컵 기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선수 개개인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이 내 원칙이다” “곧 세계적 수준에 도달할 것이다” “모든 선수들이 자랑스럽다” 등등. 송종국, 박지성, 설기현 등이 ‘히딩크의 황태자’로 불리지만, 저는 히딩크 감독이 한번도 개인 선수 이름을 거명하며 공개적으로 칭찬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물론 실망스러웠던 선수 이름을 공개적으로 말한 적도 없습니다. 단 한 번, 김남일이 발목 부상으로 스페인전에서 빠졌을 때 “김남일이 못 뛰어 유감이다(I’m sorry for 000)”는 표현을 썼습니다. 물론 일부 신문은 김남일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고 썼지만 말입니다.

이전 대표 선수들은 감독의 한 마디가 신문에 크게 실리는 것을 보고 ‘일희일비(一喜一悲)’ 했습니다. 좋지 않은 내용이 실렸을 경우, 젊은 선수들은 마음에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 감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주변의 얼키고 설킨 인간관계 속에서 고민합니다. 대표팀 운영이나 선수 선발에 대해 조언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배가 산으로 갈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은 자기의 원칙을 철저히 지켰습니다. 그리고 선수들을 외부로부터 철저히 보호했습니다. 선수들은 이런 감독에게 ‘충성심(loyalty)’을 보였습니다.
저는 석달 동안 한국 선수들의 실력이 갑자기 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히딩크 감독을 100% 따르겠다는 충성심은 갈수록 늘어갔습니다. 어떤 한국 선수는 독일과의 4강전을 앞두고 “우리는 신이 내린 팀”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승리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히딩크 감독은 참 인간적인 사람입니다. 선수들은 물론 기자들과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면서도 배려하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 잘 껴안고 장난도 자주 합니다. 흥분도 잘하고 환호도 잘합니다. 요즘 기업에서 히딩크 리더십을 배우자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인재 등용, 경쟁심 유발 등에만 초점이 맞춰지는 것 같습니다. 이번 월드컵을 통해 저는 사람의 능력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훌륭한 리더는 이런 능력을 최대한 끄집어 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재다능한 인재를 뽑아, 머리 터지게 경쟁을 시킨다고 최고의 조직이 될까요? 선수들이 히딩크 감독을 끌어안고 펑펑 울 수 있는 이유를 리더라면 한번쯤 생각해 봅시다./안용현 드림 justic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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