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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김억중의

畵問和答 II

" 그 그림이 내게 물었다"



*


2014년 11월 5일

[제 7강 : 생애(生涯)를 추억하는 법]

Carpaccio(1466-1525), Il miracolo della reliquia della Santa Croce, 1494


아! 그런데 이게 웬 반전인가? 시각과민증 환자나 다름없는 화상이지만 잘 익히지도 않은 채 붉은 속살이 그대로 드러난 소고기 육회를 덥석 먹게 되었으니 말이다. 생선회처럼 길게 썰어낸 비프 카르파치오[Beef Carpaccio]를 대하는 순간 즉시 식욕이 당기는 것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던 데다, 부드러우면서도 쫄깃쫄깃한 촉감은 물론 쏘스와 어우러진 감칠맛까지 제대로 즐길 수 있었으니 내가 보아도 놀라운 일이다. 아니 내가 나를 설명할 수 없어 난감할 지경이니 말이다. 내게 카르파치오는 이름부터가 남다른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그림은 내게 비프 카르파치오를 상기시켰고, 베니스의 곤돌라의 회상으로 이어져 축제 같은 삶의 환희를 고스란히 되돌려 주었다. 

 

“화창한 날/ 멘델스존 씨와 뱃놀이를 갔지요/ 가까운 선창에서 우린 곤돌라를 탔지요/ 수로마다 떠 있는 곤돌라들/ 현악기군처럼 조용히 바다를 연주하고 있었지요/ 그이도 노를 잡고 물결의 현을 켜기 시작했어요” (서영처, 「베니스의 뱃노래*」 일부)


하지만 지상의 낙원이라 할 저 그림 속의 활기찬 도시도 결국 시간과 더불어 흥망성쇠(興亡盛衰)를 거듭하며 언젠가는 스러져 가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저 활기찬 도시 모습이 그림으로만이 아니라 실제의 모습으로 대를 이어 번영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시대, 그 사람과 삶의 흔적을 어떻게 하면 지속적으로 기념하고 그 추억을 떠올리게 할 수 있는가?




*

2014년 11월 12일

[제 8강 : 시대의 여명(黎明)을 보았는가]

김종영, 세한도(歲寒圖)


우성 김종영(1915~82) 선생의 세한도(歲寒圖)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제일 먼저 세잔(Cézanne)의 나무가 보이고 당연히 추사(秋史)의 세한도(歲寒圖)가 떠올려지며 그 뒤로 자신이 살았던 산동네가 겹쳐진다. 이파리는 다 떨어지고 까치 한 마리조차 다 떠나버린 적막한 산동네는 헐벗은 뼈대만 남아, 저마다 자신의 존재를 무릅쓴 용트림으로 혹한 칼바람을 이겨내고도 남음이 있어 보인다. 추사 선생의 세한도만큼이나 화폭이 서늘한 건, 두 분 사이 애틋하게 그리워하는 마음이 통한 탓일지도 모른다. 세잔 선생에게 쌩트 빅투와르 산(Mont Ste. Victoire)이 면벽이었다면 김 선생에게 세잔과 추사는 동서를 오고가며 스스로 넘으려했던 큰 산이 아니었을까 싶다.

선생은 서예 수련은 물론 추사의 옛 그림을 꾸준히 임모(臨模)하며, “이 뭐꼬?”를 하루에도 열 두 번씩 되뇌며 하늘을 나는 새처럼 날고 또 날다 지치면 되돌아와 다시 저 세한도나무 가지, 저 언저리 어디쯤에 머물렀을 터. 인고의 세월을 뜬 눈으로 지새우며 내공의 길을 오고가다 때가 무르익어 한 시대의 여명을 보았을 즈음, 이 때다 싶어 자신만의 길을 찾아 홀연히 떠났던 것은 아닐까. 수많은 건축가들에게 수행정진을 몸소 실천해 보였던 선지식(善知識)이 있었다면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 그 높고 그림자 깊은 산들 중에 단연 근대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1887-1965)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의 선배 건축가들이나 동시대 건축가들 대부분은 근대

의 유산, 코르뷔지언 미로(Corbusian labyrinth)를 지나 자신의 길을 찾아가야했던 남모를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

2014년 11월 19일

[제 9강 : 사람에게 길을 묻다]

작자미상, 만화 2컷


내가 보았던 만화들 중에서 인상적인 그림판 두 개가 있다. 두 그림판에는 도시 광장과 그 주변을 둘러싼 건물들이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디테일에 나타난 차이만 살펴보아도 그 대비가 심상치 않다. 우선 건물의 창의 크기나 모양도 확연하게 다른데다 지붕 경사도도 차이가 난다. 위 그림은 기둥 골조 사이로 안팎이 투명하게 열려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지만 아래 그림은 벽면으로 이루어진 건물 안과 밖이 서로 단절되어, 닫혀있는 형상을 보이고 있다. 우연의 일치일까? 위 그림에서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두터운 외투를 걸친 채 분주히 오고가는 모습이지만 아래 그림에서는 모두들 건물 그림자 안으로 숨어들었는지 햇빛이 작열하는 광장 안에 사람 하나 볼 수 없다.

이처럼 두 도시의 경관은 물론 일상의 삶조차 서로 커다란 차이를 드러내는 것은 어떤 연유에서 일까? 서로 다른 방식으로 안과 밖의 경계를 짓고 특별한 관계를 이루어낸 데는 어떤 조건들의 차이가 있었을까? 실제로 위 그림은 대륙 북쪽 도시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경관인데 반해, 아래 그림은 지중해 주변도시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풍광이라는 점을 고려해본다면 그 전형적인 차이야말로 아주 오래 전부터 서로 다른 사유의 뿌리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주어진 자연조건에 따라 건축의 시원, 또한 서로 다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    

2014년 11월 26일

[제 10강 : 공공의 선을 위하여]

Ambrogio Lorenzetti, 도시의 선정(善政) 일부, Siena, 1338-1340


로렌제티가 화폭에 담아낸 시에나는 3-5층 정도의 작은 건물들이 경사를 따라 아기자기한 모습으로 어우러져 있고 곳곳에 삶의 기쁨이 활력으로 넘쳐난다. 건물 하나하나의 아름다움보다는 부분이 모여 전체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 한층 더 매력이 있다. 그림은 손에 손을 잡은 사람들의 지상 낙원이라 일컬을 만큼 활기찬 거리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화면의 구도를 보아도 좌우로 널찍하게 펼쳐 보이고 있는데다, 하늘이 차지하는 비중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그 면적이 왜소하게 그려진 것을 보아도 천상의 축복보다는 지상의 행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이 분명하다. 게다가 하단의 길과 사람들, 그리고 건물 1층의 열린 아케이드가 거의 상하 화면의 1/2을 차지하고 있지 않은 것도 그러한 의도를 잘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실제로 그림 속 낙원의 주인공은 무엇보다도 길가의 사람들이다. 어쩌면 꽃나무가 그려져야 할 위치에 평범한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서서 저마다 일상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로렌제티가 현재의 모습을 묘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림 상단에는 몇몇 사람들이 힘을 모아 하늘과 땅 사이 그 축복의 경계를 이루는 지붕을 짓느라 여념이 없는 세부 묘사를 통해 지상의 낙원은 지금도 신축중이며 계속 이어져야한다는 듯 그 의미를 절묘하게 더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리 사람들 모두 꽃다운 청춘으로 활짝 피어나게 했으니, 공공(公共)의 선(善)에 기여하고 있는 건축의 힘은 실로 위대한 것이라 할만하다. 제목이 시사하고 있듯이 도시가 활력이 넘쳐나고 주거의 기쁨으로 충만한 것이 훌륭한 위정자의 선정(善政) 덕분이라 한다면, 도시와 건축은 어떤 철학과 어떤 방식으로 펼쳐야 한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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