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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5 21:20

전망에 대한 전망

조회 수 2809 추천 수 0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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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에 대한 전망



조선조 김택영(金澤榮, 1850-1927)이 쓴 남폭정기(攬瀑亭記)에 보면, 자신의 거처를 천마산 북쪽 박연폭포 근처의 고덕산촌(古德山村)에 자리 잡은 연유를 이렇게 쓰고 있다.



“내가 지금 사는 곳은 땅이 궁벽하고 누추한데다, 농부나 목동들이 어울려 사는 곳이요, 공명에 뜻을 두고 용기와 예지가 있는 이라면 돌아보지도 않고 멀리 달아날 곳입니다. 그런데 누가 이 폭포를 시켜서 천하의 대세가 지척의 땅에 접근해서 이미 나를 보위하는 울타리를 삼아주고 또 날마다 내가 먹는 음식의 재료가 되고 나의 장부를 세탁하고, 나의 질병을 소제하게 하는가?”



대감은 먼저 박연폭포 주변의 땅이 귀인이 살만한 곳은 아니라고 진단한다. 하지만 자신은 폭포수 주변의 미세한 지리를 파악하여 그 가운데 살기에 안온하고, 건강하며 기개를 펼칠만한 터를 얻어 집을 지었던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폭포수의 절경이 마주보이도록 집을 지었다 해도 보통 문제가 아니다. 웬만큼 지리적 여건이 갖추어 있지 않다면, 집 주변이 편안할 수 없기 때문이다. 쉴 새 없이 콸콸 흐르는 물소리가 ‘풀옵션’ 배경음으로 깔린다고 생각하면 난청은 시간문제요 정서불안은 따 놓은 당상이다.

여름철 시원하기만 했던 골짜기 바람이 늦은 가을부터 그 영웅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하여 낙엽도 벨만한 칼바람이 난무한다고 생각하면 집은 무사의 체력단련장이라면 모를까 전설의 고향이 될 날이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맑고 고운 계곡의 정취에 듬뿍 젖어있다가도 폭우가 쏟아져 물이 갑자기 불어난다고 생각하면, 음풍농월은 고사하고 이번엔 또 무엇이 무너져 내릴지 상습공포증에 시달리기 일쑤가 아니겠는가?


이쯤 되면 “살기가 겁나는데, 전망이 좋아 보기에만 아름다우면 무엇 하나?” 하는 항변이 뼈에 가시가 박힌 채, 터져 나올 것이 당연하다. 대지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것과 대지 안에서 밖을 바라다보는 것과의 차이라고나 할까, 가끔 보는 절경이야 정신이 번쩍 들어 그 감흥이 매번 새롭겠지만, 그곳에 뿌리박고 살아야 할 사람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빼어난 절경과 마주하는 것처럼 피곤하고 긴장되는 일이 또 어디 있을까?


미학만을 취하여 그것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복잡다단한 삶을 희생하라는 말과 같다. 편안한 삶의 조건을 두루 갖춘 연후에 미학이 전개되어야 폼을 위한 폼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대감에게는 절경을 취하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울안을 편안하게 할 만한 곳을 찾는 것이 우선이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 밖에도 기문에는 밝히지 않았으나, 대감이 폭포를 마주하여 집을 짓지 않은 또 다른 이유가 있었을 터이다. 추측이기는 하나, 그가 심사숙고했던 것은 자신이 지은 집이 자칫 천혜의 절경을 해칠지도 모른다는 점이었을 것이다. 그 정도의 비경이라면 보다 많은 이들이 함께 즐겨야 할 공공의 자산인 줄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을 선비였으니 말이다. 대감은 ‘그 자리’를 소유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곳을 피하여 집을 짓는 것이 선비가 지켜야 할 겸양의 도리요 자연에 대한 예의라 여겼을 것이다.



“마침 폭포와 서로 마주쳐 밤낮으로 우레와 벼락이 쳐서 격투하는 사이에 놓이겠지만, 이제 폭포수가 굽이돌아 흘러 옆으로 한 조그만 산기슭을 끌어다가 스스로 가려서 마치 사람이 겹겹으로 두른 병풍 안에 앉아 있는 것 같으니, 이것이 마을의 남산이다. 그래서 폭포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남산 밖에 열 몇 개의 큰 봉우리들은 마치 거인이 칼을 짚고 선듯한데, 그 중 나지막한 곳에 이상한 기운이 엿보이니 곧 박연폭포에서 나오는 것이다. 내가 비록 폭포는 바로 볼 수는 없으나 폭포가 우레 치고 벼락치고 격투하는 정경은 하나도 나의 이목에서 달아나지 않고 언제나 나의 정신과 마음을 흠동시키는 것이다. 나는 기꺼워 잊을 수 없어 드디어 나의 거처를 남폭정이라 이름하였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폭포가 내다보이는 곳에 집을 짓고 그 이름을 남폭정이라 일컫는다면 이해가 가겠으나, 대감은 그 절경을 가린 채 궁벽 진 곳에 집을 지었으니, 기가 막힌 어느 객이 어찌 그랬느냐고 힐난하더란다. 누가 봐도 그럴만한 의문이 들었을 것이다. 보기 드문 절경을 지닌 대지를 구하기도 어렵거니와 그 풍광을 외면한 채 집을 지었으니 그 가치를 집안에서 향유하고 있지 못하다는 안타까운 깜냥이 들어서일 게다.

허긴 박연폭포를 보러 왔다가 그 웅장한 스펙타클에 흠뻑 취해있는 사람에게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올 리 없다. 산천을 뒤덮는 폭포수의 굉음, 쉴 새 없이 꿈틀대며 흐르는 물살, 그를 둘러싼 기암괴석의 절경에 둘러싸인 감동만으로도 일상의 성정으로 되돌아 나오기 힘들 지경일 터이다. 아! 이런 곳을 택하여 집을 짓고 산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누구든 야무지게 꿈을 꾸어 볼만한 형국이다. 하물며 천하가 숨겨온 비경을 이제 막 보았거늘, 그것을 포기하다니 말이 되는가? 하지만 대감은 객에게 이렇게 답했다 한다.



“나로 하여금 몸을 구부려 그 물을 떠 마시고 눈을 들어 남산 밖을 바라보아 상상을 통하여 우레와 벼락이 치고 격투하며 변하여 교룡어벌(蛟龍魚벌)이 되고 뿜어서 장강의 큰 몫이 되는 것을 이끌어다가 나의 정신과 마음을 웅장하게 하는 것이 어찌 거문고를 배우고 글을 읽는 것과 같지 않겠소? 그런데 당신은 도리어 천박하게 보이고 안보임을 가지고 논의를 벌여야 합니까?“ 하니, 객은 옷깃을 여미고 물러갔다 한다.



객의 추측과는 달리, 대감의 집은 폭포수를 향해 전면으로 바라다보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대감께서는 터를 둘러싼 남산의 한 봉우리에 서려있는 상서로운 기운을 통해 직접 마주하여 보지 않고도 상상력에 힘입어 늘 폭포수의 장관에 동참할 수 있으니 보고 안보고가 뭐 그리 대수로운 일이냐며 객의 단견에 일침을 놓았던 것이다. 눈앞에 펼쳐져 잘 보이는 전망보다, 마음속으로 보며 즐기는 전망의 가치가 어찌 미흡하다고 할 수 있겠느냐는 날카로운 지적이다.

예로부터 “큰 은혜는 은혜를 끊고, 큰 자비는 자비를 끊고, 큰 동정심은 동정심을 끊고, 큰 사랑은 사랑을 끊는 법”이라 하지 않던가. 더 커다란 즐김은 그 대상을 끊는 데서 온다는 깨달음을 새겨들어야 했던 객 또한 글 꾀나 읽던 선비였을 터인데, 대감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그만 절경에 빠져 판단력을 잃고 휘둘렸던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웠을까 싶다. 전망을 잃어야 전망을 얻을 수 있다는 전망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객이었으니, 우리네 식견도 그보다 나을 것이라는 보장이 있을 성 싶지가 않다.


p.s 이달 27일 독락당으로 떠나는 이들의 마음가짐, 눈가짐을 위해 한 말씀 드려보았습니다. 아직 2주나 남았는데도 벌써부터 마음이 설레이는 건 잦은 겨울 눈비 속으로 어느덧 가까이 들려오는 춘신때문만은 아닐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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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광준 2010.03.15 21:20
    이렇게 맛깔난 글을 접하니, 눈이 다 호강합니다.^^* 오직 소비해야 즐긴다는 경지에서 대의를 위해 굳이 소비하지 않고도 마음 속으로 즐기는 더 높은 경지에 대한 일침으로 읽혀집니다. 사유의 즐거움을 깊이 느낄 수 있는 글 선물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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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설 2010.03.15 21:20
    김택영선생님이야말로 진심의 집을 지으셨군요.. 보인다는 것이 주는 아름다운보다 아름다운 마음이 깃든 사람이 주는 자연에 대한 사랑이 그 주변을 더욱 따뜻하게 할 수 있음을 봅니다. 독락당을 기대해봅니다. 어느 분은 회재선생을 건축주가 아니라 건축가였다는 말씀을 자신의 책에 쓰셨던데 그 감각을 양동에서는 보았는데 옥산에서는 보지 못하였다가 이번 여행으로 접하게 됨을 설레이는 마음으로 기다려 봅니다. 이설레임은 겨울눈속의 꽃망울을 내미는 복수초나 노루귀의 의지만큼이나 크게 느껴집니다. 오후의 봄볕이 아름다운 날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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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영석 2010.03.15 21:20
    백북스와 창디를 통한 사이비 공간에서 이런 호사 그리고 독락당 봄여행은 우리 시대의 달콤한 행복 바로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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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은희 2010.03.15 21:20
    독락당...
    김억중 선생님의 <나는 문학에서 건축을 배웠다>를
    읽고 처음으로 그 의미를 새겨보게 되었습니다.

    자연 속에 지은 은신처가 삶의 공간에 연결되어 있는 것은
    참으로 멋진 방식입니다.
    세상을 떠난 것이라 하지만, 삶으로 통하는 열린 구조에서
    더 이상 은거의 공간이 아니라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기품 있는 삶의 형식을 느낍니다.

    조정권 시인이 말한 벼랑 꼭대기의 독락당이나
    비트겐슈타인이 노르웨이 송네피요르드 계곡 벼랑에 세운 오두막은
    삶으로 통하는 길을 끊어버리고
    오롯이 자신과의 대면을 견디기 위해 택한
    극단적인 고행의 방식인지도 모릅니다.

    비트겐슈타인의 오두막이 여전히 가슴을 뛰게 하지만
    현실적인 삶의 터전에 지을 수 있는 독락당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삶의 꿈을 열어주어
    더욱 매력적입니다.

    김억중 선생님의 독락당 이야기는
    어렸을 적 ‘다락방’ 처럼
    아니면 훌쩍 떠나고 싶을 때 만나는 바다처럼
    혹은 앞으로 찾고 싶은 자연속의 작은 집처럼
    참 많은 말을 걸어옵니다.

    독락당으로의 여행이 기다려집니다.
  • ?
    유승종 2010.03.15 21:20
    김교수님과의 독락당 여행. 기대가 됩니다. 독락당을 떠나, 김억중 교수님의 깊은 내공의 맛을 느끼게 하고자, 이번 여행에 대해 몇몇 직원들에게 소개를 했는데, 너무 가고싶어하는 눈치여서 - 자기들은 표를 제때 못구하고, 꼭 그런 애들이 있지요. ^^- 차라리 저는 교수님을 좀 안다고 할수있으니...그들에게 기회를 줄까 말까 심히 고민중입니다. 좋은건 내가 먹어야 하는데..못된상사가 되어야 하는지...으이구. 드디어 1주일뒤로 다가왔군요. 5주뒤의 제 순서도 기대해주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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