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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문장 쓰는 법

못 쓰는 사람에서 쓰는 사람으로


김정선 지음/ 유유



나는 주부다.
적어도 우리 집에서 끼니때마다 뭘 먹을지 고민하는 게 나 뿐인 거 보면 나는 주부가 분명하다. 인생의 반환점을 돌아선 지점에서 나를 대표하는 설명이 주부라는 건 서글프지만 말이다.   


“열 문장 쓰는 법”의 첫 제안대로 길게 이어지는 한 문장에 나를 담아봤다.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가 아니라 열 문장도 한 문장부터라던가. 말이 되거나 말거나 마침표를 찍지 않고 계속 쓰다 보니, 금세 인생 희로애락이 한 페이지에 담겼다. 서글프다가 씁쓸하다가 기쁘다가 화나다가 행복하다가, 롤러코스터라도 한바탕 타고 내린 기분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몇 줄 채우지 못하리라 예상했는데, 끊이지 않고 써진다는 사실이었다. 줄줄 쓰는 동안 머릿속의 엉킨 실타래가 풀리는 듯 했다. 다만, 실패에 다시 잘 감아서 정리만 하면 되는데, 신경 써서 감아도 모양새가 곱게 감기지 않았다.


비오는 토요일, 글쓰기 저자의 북토크는 얼마나 반가운 일인지! 삐뚤빼뚤 감긴 실패를 들고 저자의 강연에 참석했다. 교정교열을 하며 잔뼈가 굵은 편집자에서 이제는 저자로 돌아와 거울 앞에 선 김정선 작가. 한글의 소리감수성, 한국어를 사용하는 우리들의 현재 좌표, 고등학교 이후 오랜만에 들어보는 한국어 문장의 구성 성분인 5언 9품사까지. 짧은 시간에 굵은 줄기를 짚어가며 내가 또는 우리가 글쓰기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이유를 설명해줬다.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는 ‘나만의 언어’에서 ‘모두의 언어’로 번역해가는 과정이 쉽지 않기 때문이고, 우리는 지금 책이라는 형태가 아닐 뿐이지 가장 많이 한국어를 쓰고 읽는 시기를 통과하는 중이라고 위로해주었다. 모국어인 한국어를 당연히 잘 해야 하는 건 아니니 자책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쓰기 위해서 연습의 반복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다보면 표현감각도 생기고 시간감각도 생기고, 더 나아가 나만의 문체도 생긴다는 말에 ‘감히’ 힘이 났다. 글쓰기를 백 미터 달리기로 여기고 잔뜩 긴장하며 조바심 내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이제 반환점을 돌아선 나의 인생처럼, 글쓰기는 지치지 않고 꾸준히 계속 나아가야 하는 마라톤이었다. 강연장에 가져갔던 실패는 다시 가방에 잘 넣어왔다. 지금 당장 고쳐 감지 않아도 됐으니까.


별 다섯 개짜리 미슐랭 식당의 유명 셰프만 요리를 하는 건 아니다. 주부인 나도 요리를 한다. 다만 맛이 다를 뿐이다. 많이^^ 내가 셰프가 될 것도 아닌데, 오늘 저녁 요리가 별로였다고 스트레스 받을 일도 아니다. 내 입에 맛있고, 내 가족이 즐거이 먹고, 내 이웃에게도 대접할 수 있으면 됐다. 나의 요리와 나의 글쓰기는 거기까지면 됐다.


나의 요리가 점점 나아지길 바라며. 



2020-08-08



Special thanks to;

빗속을 뚫고 오셔서 올해 첫 북토크를 해주신 김정선 작가님.

강연에 목마른 때에 으쌰으쌰해준 방구석살롱 백정민 대표님 & 박순필 기획님ㅋ

어려운 시기에 기꺼이 공간을 내준 동네책방 지족동 '버찌책방'


20200808 김정선 강연 3.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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